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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트리온 15주년]자본금 5000만원에서 '시총 12조' 대기업으로…성장비결은 '기술력'

등록 2017-02-27 06:00:00   최종수정 2017-03-06 09:5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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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트리온
바이오 의약품 위탁생산서 바이오시밀러 개발까지
도전에 도전 이어가며 한국 바이오 산업 위상 제고
글로벌제약사들 "셀트리온, 불가능을 현실로 만들어"

【서울=뉴시스】류난영 기자 = 지난 2000년 인천 연수구청 벤처센터에 '넥솔'이라는 벤처기업이 문을 열었다.대우그룹에서 근무했던 서정진 회장이 임직원들과 회사를 그만두고 나와 창립한 회사였다.   

 당시만해도 뚜렷한 사업 계획조차 없었다. 서 회장이 지금의 셀트리온을 구상한 것은 창업 1년 후 쯤이었다. 2001년 세계 바이오산업의 중심지 미국 샌프란시스코 현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간염 백신 개발로 노벨 의학상을 수상한 석학들을 만나면서 부터다. 당시 머지 않아 블록버스터 바이오의약품의 특허가 만료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지금의 셀트리온을 구상한 것이다.

 서 회장은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 복제약)가 미래 먹거리로 부상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졌다고 한다. 곧바로 그는 본격적인 생명공학 사업을 시작했다.

 이렇게 2002년 벤처기업으로 설립한 셀트리온은 현재 국내 굴지의 기업으로 성장했다. 설립 당시 자본금 5000만원으로 시작했던 벤처가 시가총액이 12조원을 넘어섰다. 바이오의약품 위탁 생산(CMO)과 바이오시밀러라는 생소한 분야를 미래의 먹거리로 파악하고 이를 선점한 것이 현재의 셀트리온을 만들게 됐다.

 지금의 셀트리온으로 성장하기까지 평탄한 길만 걸어온 것은 아니다. 바이오의약품 위탁생산을 위한 공장을 설립하는 데 1200억원의 비용이 드는데, 당시만 해도 바이오산업에 대한 인식이 전무해 투자를 받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그러다 2002년 KT&G로부터 200억원의 등 1500억원의 투자금을 모아 2002년 셀트리온이 출범했다.

 우여곡절 끝에 2005년 완공된 공장 덕에 다시 기회를 얻었다. 미국 제약사 BMS(브리스톨마이어스스퀴브)는 2005년 6월 셀트리온과 20억달러 규모의 바이오의약품 위탁생산(CMO) 계약을 체결했다. 2008년에는 프랑스 제약사 사노피-아벤티스와 항체의약품 위탁생산을 체결했다.  

 셀트리온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았다. 셀트리온은 높은 수익을 내던 CMO 사업을 중단하고 항체 바이오시밀러 개발에 본격 돌입했다. 당시만 해도 바이오시밀러는 생소한 분야였다. 대부분의 국가에 바이오시밀러에 대한 허가 규정이 없었고, 분자구조가 복잡해 개발도 어려웠다.

 바이오시밀러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한 데다 세계적으로도 바이오시밀러 개발에 성공한 사례가 없었기 때문에 시장 개척이 쉽지는 않았다.

 셀트리온은 바이오시밀러라는 생소한 시장에 대한 의구심과 제품화에 대한 의혹 등 각종 난관에 부딪혀야 했다.

 셀트리온의 가치를 먼저 알아본 곳은 해외였다. 셀트리온의 미래를 확신한 싱가포르 국부펀드 테마섹은 2010년 셀트리온에 2080억원을 시작으로 총 3500억원을 투자했다.

 셀트리온은 자금이 확보되자 해외에서 바이오시밀러 '램시마' 임상을 진행했다. 하지만 글로벌 제약시장에서 낮은 국가 지명도와 기업 인지도 등으로 임상 참여 환자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의료인들의 의구심도 풀기 힘들었다. 전 세계를 대상으로 임상을 진행하다 보니 국가마다 다른 임상 환경도 문제였다. 난관에 부딪칠 때면 임상 시험 위탁회사도, 임직원들도 자신감을 잃었고 불가능한 일이라 생각하기도 했다.

 이런 난관에도 램시마와 허쥬마의 글로벌 임상 시험은 유럽, 브라질, 멕시코 등 전세계 19개 국가에서 856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진행됐다. 한국의 생명공학회사가 글로벌 임상을 완수한 것은 셀트리온이 처음이었다.

 국내 식품의약품안전처는 2012년 7월 세계 최초로 바이오시밀러 램시마의 판매 허가를 결정했다. 한국의 항체 바이오시밀러 판매 허가는 곧 세계 각국의 바이오시밀러 허가 확산의 도화선이 됐다.

 셀트리온은 2012년 8월 한국에서 램시마를 첫 출시했다. 셀트리온이 2012년 대한민국에서 꿈을 이뤘다면 2013년은 유럽에서 꿈을 이뤄낸 한 해였다. 셀트리온의 항체 바이오시밀러에 대한 인식 전환을 위한 노력도 결실을 맺었다.

 세계 바이오의약품 매출의 절반을 차지하는 거대 시장 미국에서 2014년 새로운 변화가 일어났다. 바이오시밀러 규제법안이 없었던 미국에 BPCIA(생물학적 제제 약가 경쟁 및 혁신법)가 발효되면서 한 생명공학회사가 첫 바이오시밀러 허가를 신청한 것이다. 비록 저분자 구조의 1세대 바이오시밀러였지만 미국에서도 바이오시밀러 시대가 열렸다는 신호탄이었다. 셀트리온은 바로 미국 FDA에 램시마 판매허가 승인 프로젝트에 돌입했다.

 램시마의 유럽진출에 이어 노르웨이, 캐나다, 일본, 터키 등 세계 각국에서 허가가 이어졌다. 2014년 1월 두번째 글로벌 임상 시험을 성공적으로 완료한 항체 바이오시밀러 허쥬마가 국내 식약처로부터 판매허가를 받았다.

 판매 허가 뒤에도 오리지널의약품과의 약효에 대한 의구심이 이어졌다. 하지만 곧 세계 곳곳에서 램시마를 인정하고 권장하는 의료인이 등장했고, 수많은 환자들이 램시마로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램시마 처방 환자는 갈수록  불어났고 유럽 시장을 흔들기 시작했다.

 시장 판도는 180도 바꼈다. 유럽 시장에서 오리지널의약품과 효능이 동등하면서 상대적으로 가격이 낮은 바이오시밀러가 정부와 환자에게 혜택을 줄 것이라는 기대감이 컸다. 램시마는 유럽에서 판매를 시작한 지 9개월 만에 처방 환자 수가 6만 명을 넘어섰고 시장점유율 30%를 돌파하는 기록을 세웠다.  

 글로벌 제약사들과 바이오산업 전문가 모두 "항체 바이오시밀러는 개발하기 어렵다"고 했으나 셀트리온이 불가능을 현실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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