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 돈이 없어요…중상층까지 ‘짠테크’

등록 2017-03-07 08:3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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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김정환 기자 = 서울 시내 모 예술학교 교수 Z(43)씨. 서울 송파구 잠실동 50평대 아파트, 수입 중형 승용차 등을 소유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차는 집에 거의 세워두고 주말에 가족과 본가를 갈 때 탈뿐 평소엔 지하철을 이용한다. 기름값, 주차비 등이 아까워서다. 하루 용돈도 교통비 포함 2만원이 채 안 된다.

 새 옷, 새 구두를 산 것이 언제인지 가물가물하다. 커피숍도 거의 가지 않는다. 집에서 캡슐 머신으로 직접 내린 커피를 텀블러에 담아 다니며 마신다. 학과장인 덕에 학교에 방이 있어 집에서 도시락을 준비해 가 점심을 눈치 안 보고 먹을 수 있는 것도 행운이다.

 약속도 최소화하고 만나는 사람도 친구나 후배가 아닌 선배, 특히 재력가 선배들이다. 만난 자리에서는 밥, 술, 커피를 얻어먹는 것은 물론 명품 브랜드 옷은 물론 신발까지 얻어다 입고 신으려고 ‘비서’를 자청한다.

 남들이 부러워할 수십억대 자산가인 그가 이처럼 ‘짠돌이’ 생활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돈 쓸 여력이 없어서’다. 아파트 대출 이자부터 초등학교 2학년생 아들이 다니는 각종 학원비까지 돈 들어갈 곳이 한둘이 아니라 가용 자금이 없다.

 자동차 할부금은 이율이 너무 높아 무리해서 목돈을 마련해 갚아버렸다. Z씨는 “하우스푸어인데 자칫 카푸어까지 될 뻔했다”며 허탈하게 웃는다.

 결혼 전까지 대학에서 시간강사 생활을 하다 10년 전 결혼한 뒤 전업주부가 된 동갑내기 아내가 다시 일을 시작해 아들 학원비라도 벌겠다고 나섰지만 자리가 좀처럼 나지 않아 아직은 허리띠를 졸라매야 할 형편이다. 최근에는 금리까지 들썩거려 좌불안석이다. 그는 “월급은 찔끔찔끔 오르는데 물가는 터무니없이 빠르고 높이 오른다”며 “방송 출연, 언론 매체 칼럼 기고 등 부업거리도 마다치 않는다”고 토로했다.

 ◇‘돈 쓰는 것이 미덕’ 다 옛말

 너나 할 것 없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 빈곤층은 말할 것도 없다. 중산층, 아니 Z씨 같은 중상층까지 가세하고 있다.

 경기 불황에 청탁금지법 시행, 국정농단 사태와 탄핵정국으로 이어지는 정정 불안까지 겹치면서 ‘돈 쓰는 것이 미덕’이 아니라 ‘돈 쓰는 것은 자살 행위’라는 인식이 확산하는 추세다.

 한국은행이 지난달 24일 발표한 ‘2017년 2월 소비자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2월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94.4로 집계됐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3월(75.0) 이후 7년 10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었던 1월의 93.3보다 1.1포인트 오른 것이다. 소비자심리지수가 전월보다 오른 것은 지난해 10월(102.0) 이후 4개월 만이다.

 그러나 지표일 뿐이다. 한국은행은 “수출 개선 등으로 경기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다소 줄어들면서 지수가 전월보다 올랐다”면서도 “상승 폭이 크지 않은 데다 지수 자체가 워낙 낮은 수준이어서 본격적인 소비심리의 개선 여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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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다가 CCSI는 기준값(2003∼2016년 장기평균치)인 100을 넘으면 소비자들의 심리가 장기평균보다 낙관적임을 뜻한다. 즉, 100에 미치지 않았으므로 아직 소비 심리 회복은 요원하다는 얘기다.

 통계청 가계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가구당 월평균 명목 소득은 439만9000원, 지출은 336만1000원으로 흑자액이 103만8000원을 기록했다. 그러나 이는 수입보다 지출이 더 크게 줄어 나타난 ‘불황형 흑자’다. 실질소득이 전년 대비 0.4% 감소한 데에 비해 소비지출은 1.5%나 줄었다.

 ◇냉장고 파먹고 화장품 뒤지고

 소비가 살아나지 않는 것과 대조적으로 열풍이 부는 것이 있다. 바로 ‘짠돌이 재테크’, 일명 ‘짠테크’다. 안 쓰고, 덜 써서 돈을 모으는 방법으로 인터넷,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서 회자하며 급속도로 퍼지고 있다. 

 짠테크 비결을 살펴보면 가장 눈에 띄는 것이 ‘냉파’다. ‘냉장고 파먹기’라는 것으로 냉장고에 있는 식재료를 다 먹을 때까지 새로 장을 보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누구나 자신의 집 냉장고를 열어 안에 있는 내용물을 꺼내다 보면 각양각색 식재료가 계속 나온다. 냉동 상태라 변질할 가능성이 현저히 낮지만, 그만큼 전력을 소비하는 것이 사실이다. 게다가 그런 식재료가 있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잊은 채 같은 식재료를 다시 사 오는 경우도 허다하다. 일단 냉파를 하게 되면 새로운 쇼핑을 하지 않는 것부터 불필요한 전력 소모까지 이런저런 이익을 볼 수 있다.

 냉파의 응용형으로 ‘화뒤’나 ‘옷뒤’가 있다. ‘화장대 뒤져 쓰기’ ‘옷장 뒤져 입기’다.

 화뒤는 화장대 위아래를 다 뒤져 쓰다 방치해둔 화장품이나 화장품 구매 시 받은 샘플, 호텔 투숙 시 가져온 어매니티(샴푸, 린스, 로션 등 증정품)까지 다 찾아낸 뒤, 이를 쓸 때까지 새로운 화장품을 사지 않는 것이다.

 옷뒤는 옷장을 다 뒤져 안 입고 둔 옷 찾아내고 입거나 수선해서 입는 것이다. 물론 그 옷을 버릴 때까지 새 옷을 절대 안 사는 것은 마찬가지다.

 직장인 김지언(31·여)씨는 “친구가 화뒤, 옷뒤를 했다고 하길래 한 번 따라 해봤다. 그랬더니 정말 많은 화장품이 화장대 서랍 안에서 잠들어 있고, 옷장 안에 유배돼 있더라. 예전 남자친구가 사준 향수와 남자친구에게 주려다 헤어져서 안 준 남성 속옷까지 발견했다”며 “화장품은 사용 기한이 있어서 반은 버려야 했지만, 옷은 조금 수선해서 입는다. 오래된 옷은 유행까지 다시 시작해 입을 만하다. 무엇보다 무분별한 쇼핑을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경각심을 갖게 된 것으로 만족한다”고 전했다.

 인기 짠테크 방법 중에는 ‘봉투 살림법’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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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투 30개를 준비한 뒤, 한 달 생활비를 미리 봉투 하나하나에 1만~2만원씩 넣어 두고 그날그날 봉투에 든 돈 액수만큼 쓰는 방법이다.

 물론 현금보다는 카드를 더 많이 쓴다. ‘한 달 뒤 결제’라는 기한이익과 포인트 누적 등 장점이 있어서다. 그러나 카드 사용액만큼 봉투에서 현금을 빼내 카드 결제용 봉투에 모아두고 쓴 것으로 간주한다. 쓰고 남은 돈은 모두 저축하고 모자라면 모자라는 대로 산다. 카드를 사용하면 영수증이 있다 해도 내가 얼마만큼 소비했는지를 명확히 알 수 없어 낭비하기 쉽지만 이렇게 하면 내 지출액을 한눈에 볼 수 있어 절약하게 되는 장점이 있다.

 정반대 방식이 ‘캘린더 강제 저축’이다.

 매월 1일 1000원을 시작으로 2일 2000원, 3일 3000원 등 매일 1000원식 저축액을 늘려가 30일 3만원 등 달력을 보고 날짜에 따라 저금을 하는 방식이다. 1개월이면 총 46만5000원을 모을 수 있고 1년이면 550만원 넘는 목돈을 만들 수 있다.

 ◇경조사는 ‘안 주고 안 받기’

 경조사 안 챙기기도 한 방법이다. 절친한 사이나 ‘되로 주고 말로 받을 수 있는’ 사이 아니면 경조사 소식 정도는 스팸 처리한다.

 물론 처음에는 ‘이러다 욕먹지 않을까’ ‘그러다 인간관계가 나빠지지 않을까’하며 두려워하기도 하지만, 오히려 ‘안 주고 안 받기’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다. 지난해 9월 청탁금지법(김영란법)까지 시행돼 마음의 짐을 한결 덜어줬다.

 그래서일까.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전국 2인 이상 가구의 월평균 가구 간 이전지출(경조사비, 부모 용돈 등 포함)은 17만946원에 그쳤다. 전년 같은 기간보다 7.2% 감소했다. 2010년 4분기(11.8% 감소) 이후 최대 감소폭이다.

 최근 자기 것은 자기가 내는 더치페이(각자 계산)나 혼밥(혼자 밥 먹기), 혼술(혼자 술 먹기), 혼자 여행하기(혼여), 혼자 영화 보기(혼영) 등 ‘1인 소비’도 짠테크 영향으로도 볼 수 있다.

 서울 H대 3학년 박지석씨는 “친구와 영화를 보면 보통 누가 영화를 보여주고 누가 밥이나 음료를 사기 마련인데, 이러면 셈법이 복잡해진다”며 “더치페이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아예 혼자 보면 밥은 집에서 먹고 가고 음료는 가게에서 저렴한 것을 사 가도 되니 더욱 저렴하게 영화를 즐길 수 있다. 사실 영화 티켓도 너무 비싸서 골라보는 처지에 다른 데 쓸 돈이 없다”고 고백했다.

 항공대 경영학부 이상학 교수는 “과거에는 소비절약을 통해 저축으로 집을 장만하는 등 뭔가 큰 데 쓸 수 있었지만 이제는 아끼지 않으면 아예 살 수 없는 시대가 됐다”며 “소비 위축은 경기 불황을 가속할 수 있으므로 악순환이 거듭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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