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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보 “경조사비, 10만원도 많다…더 낮춰야”

등록 2017-03-06 09:56:23   최종수정 2017-03-20 10: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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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을 주도한 이성보 전 국민권익위원장이 3일 오후 자신이 대표변호사로 있는 서울 서초동  법률사무소 형산에서 뉴시스와 인터뷰 하고 있다. 김영란법은 지난 2011년 6월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이 처음 제안했고 이성보 전 국민권익위원장이 법안을 만들어 국회에 제출했다. 2016.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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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신동립 기자 = 최순실 탓에 김영란법이 유명무실해졌다고들 한다. ‘최순실이 김영란을 이겼다’, ‘수십억 수백억이 뇌물로 오가는데 3-5-10 같은 사소한 비리를 잡는 법이 무슨 소용인가’라는 푸념이 나돈다.

 이성보 변호사는 최순실 사건과 김영란법에 두루 답할 수 있다. 서울중앙지방법원장과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판사 출신이다.

 ‘김영란법’, 정확히는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을 만든 이 변호사는 “이른바 최순실 사태가 블랙홀처럼 우리 사회의 많은 이슈들을 삼켜버린 것은 사실”이라고 인정한다. “청탁금지법이 좀 더 관심을 받을 수 있었는데 최순실 사태에 묻혀서 경제위축 이야기가 나올 때를 제외하고는 별로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판단이다.

 대형 비리를 앞세워 이 법의 실효성에 시비를 거는 것은 그러나 “논리의 비약”이라고 짚는다. “큰 뇌물은 기존의 형법 등으로 다스리면 된다. 형법으로 다스리지 못하는 경우, 예컨대 대가성이 인정되지 않아서 형법상 뇌물죄가 인정될 수 없는 경우 청탁금지법이 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검은 최순실 사건 관련자를 여럿 구속했다. 기각된 영장도 있다. 이 변호사는 기존의 구속영장 발부 시스템에 비판적이다. “어느 특정인에 대한 구속영장의 발부나 기각의 잘잘못을 논하자는 것은 아니다”고 전제하면서 “인신구속 문제는 당사자로 보나 그가 속한 기업이나 사회로 보나 너무나도 중요하므로 구속 여부를 경찰, 검찰이나 법원 그 어떤 기관의 재량에 맡기면 안 되고 누구라도 예측가능하게 제도가 설계되고 운영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특검 조사를 받고 구속영장이 청구된 대부분의 인물들에 대해 영장실질심사 후 상당히 긴 시간이 지난 후, 심지어는 다음날 새벽에 구속 여부에 관한 결정이 이뤄졌다. 결과를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채로 기다려야 했고, 사실 실제로 구속된 사람과 기각된 사람 사이에 뚜렷한 차이를 발견하기도 어렵다. 1차로 기각됐다가 재청구에 의해 구속된 분들도 몇 있다. 인신구속이 이런 식으로 결정돼서는 안 된다.”

 법 재정비가 선행돼야 하는 부분이기는 하지만, 흉악범이 아닌 한 불구속으로 수사와 재판을 받는다는 기대가 가능한 시스템으로 가야 한다고 본다. “내가 생각하는 구속제도 개선 내용을 아주 거칠게 이야기하면,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보이는 피의자가 있으면 일단 수사기관이 그를 체포해 24시간 내지 48시간 안에 법관 앞으로 데리고 와서 보석 여부를 심사받게 하고 살인 등 위험성이 있는 범죄가 아닌 한 일정한 보석보증금(보험증권 포함)을 내면 석방하고 불구속상태로 수사와 재판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대다수 국민은 물론 법조인 상당수도 수사 수단인 구속을 형벌과 혼동한다. “‘저런 나쁜 사람을 구속하지 않다니’하는 식의 생각과 말을 하고는 한다. 그러나 구속이 형벌이 아님을 인식하는 한 불구속 상태로 수사나 재판을 받는 것을 보장할 필요가 있다. 국민 어느 누구라도 그러한 상황에 처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불구속재판 결과 유죄가 인정되고 범죄의 중대성이 인정되면 실형을 선고, 형 집행을 위해 구속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청탁금지법이다. 국민권익위원장 시절 입법한 청탁금지법이 발효된 지 반년 가까이 됐다. “작년 9월28일부터 시행되고 있는 청탁금지법은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만, 한편으로는 경제 위축과 관련해 국회에서 법률개정이 검토되는 등 아직 안정적으로 시행되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면서도 “법의 적용대상자들인 공직자, 교수, 기자 등을 만나면서 느끼는 것은 청렴문화에 대한 인식과 분위기가 서서히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전에는 주로 접대를 받던 분들이 더치페이를 제안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정착을 낙관한다.

 “권익위에서 조사한 바에 의하면 법률이 통과될 당시 이 법의 시행에 찬성하는 국민이 58%였으나 지난해 12월 조사에서는 85%로 늘어났고, 국민 대부분이 이 법이 부조리 관행이나 부패 문제 개선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응답한 것을 보면 희망적이라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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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을 주도한 이성보 전 국민권익위원장이 3일 오후 자신이 대표변호사로 있는 서울 서초동  법률사무소 형산에서 뉴시스와 인터뷰 하고 있다. 김영란법은 지난 2011년 6월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이 처음 제안했고 이성보 전 국민권익위원장이 법안을 만들어 국회에 제출했다. 2016.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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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점, 농수축산업, 화훼업이 타격을 입었다. 법의 취지를 흔드는 악재일 수도 있다. “공직자 등에게 한우, 굴비 등 값비싼 선물을 할 수 없게 돼 소비가 위축될 것이라는 점과 음식물 접대의 제한으로 식당 매출에 영향이 있을 것이라는 점은 어느 정도 예상됐다. 그러나 청탁금지법은 적용대상자인 공직자, 기자, 교수 등에 대한 부정한 청탁과 향응 제공을 통제하는 것이어서 이들과 관계없는 친구, 친척, 지인들 사이에서는 아무런 제한 없이 선물을 주고받거나 식사 대접을 할 수 있다.”

 고가의 선물세트가 팔리지 않고, 음식점 매출이 줄었다는 사실은 곧 대가 부담이 있는 선물과 음식물 제공이 만연해 있었다는 반증일는지도 모른다. “이 법을 보다 강력하게 시행해야 할 근거가 되는 것이지 이를 이유로 법을 개정해 부패친화적인 행태를 허용하는 쪽으로 가서는 안 될 것이다. 명절을 맞아 가까운 친척이나 이웃이 정성 어린 선물을 주고받는 것은 미풍양속이라 할 수 있으나 이를 기화로 공직자 등에게 훗날의 반대급부를 기대하면서 값비싼 선물을 제공하는 것은 선진국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부패문화의 표출이라 할 것이다.”

 “소비와 경제를 위축시키는 주범이 청탁금지법인양 보도하는 일부 언론의 태도도 문제라고 생각되고, 부패를 밑천으로 경제발전을 이룬 선진국은 없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경제위축의 주된 책임을 청탁금지법에 뒤집어 씌워서 이 법을 느슨하게 개정하려고 할 것이 아니라 보다 근본적인 경제관련 정책을 수립해 이 문제에 대처해야 한다.”

 청탁금지법 시행령이 허용 기준으로 제시하는 음식물 3만원, 선물 5만원, 경조사비 10만원을 조정해야 한다는 소리도 나온다. “3-5-10이라는 기준은 재직 중 마음에 두고 있던 기준과는 조금 차이가 있다. 현행 기준이 적정한지를 직접 언급하는 것은 전임으로서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경조사비 10만원은 오히려 더 낮추면 어떨까 한다. 궁극적으로 경조사비를 주고받지 않는 문화를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오래 전부터 해 왔기 때문에 법이 허용하는 기준을 더 낮춤으로써 그런 문화로 바꾸어 가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한다.”

 처음에는 눈치를 살피며 조심하던 대상자들이 법의 실효성에 의문을 품으며 이전 분위기로 돌아간 듯한 감도 없잖다. “청탁금지법은 우리 역사상 어느 법률보다 가장 많은 국민들의 관심을 받으며 큰 논란을 벌인 끝에 통과된 법률인만큼 잘 정착되도록 모두가 노력해야 한다. 많은 국민들이 이 법의 시행에 찬성하면서 박수를 보내고 있는 현실을 고려하면 일부 법시행상 애매한 점이 있더라도 어떻게든 빠른 시일 내에 이 법을 강력히 시행함으로써 반부패문화를 정착시키려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법 시행을 앞두고 ‘란파라치’ 학원이 성행하는 등 무분별한 신고가 이어지거나 선별적 법집행으로 억울한 사연이 양산될 것이라 걱정하는 남녀가 적잖았다. 경찰 등 수사기관은 서면에 의한 정식신고만을 조사한다는 등 엄격한 태도로 수사권 행사를 자제하기도 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법적용을 극히 소극적으로 하는 결과를 낳게 된 것이 아닌가 한다. 실효성 있는 조기정착을 위해 수사기관은 더욱 의지를 가지고 사건 처리에 임할 필요가 있다. 과태료 부과기관인 법원도 전국적으로 전담법관을 두는 등 이 법의 본격적인 시행에 대비했음에도 작년에 겨우 4건만을 처리했다고 하더라.”

 “권익위원장 재임 3년 중 많은 시간을 이 법의 입법에 쏟아부었고, 그 과정에서 입법을 바라는 국민들의 기대와 열망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한 기대에 반해 이 법을 만들기 전 상태로 돌리려는 일부의 의도대로 법률의 무력화나 개정이 이뤄져서는 안 된다”고 거듭 강조한다. 

 이성보 변호사는 어려서부터 오로지 법관만을 꿈꿨다. 검사나 변호사 쪽으로는 눈길을 돌리지 않다시피 했다. 30년 가까이 법관으로 일한 뒤 행정부 장관급인 권익위원장이 됐고, 임기를 마친 다음 변호사 사무실을 냈다. “역할을 할 수 있고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직업이 법관뿐만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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