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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마 덮친 시장②]'검은 폐허' 소래포구 어시장…상인 '망연자실'

등록 2017-03-28 06: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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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뉴시스】전진환 기자 = 20일 오후 인천시 남동구 소래포구 어시장 화재현장에 철제 뼈대와 잿더미만 남아 있다.  지난 18일 발생한 화재로 332개 점포 중 220여 곳이 불에 타 소방당국 추산 6억5000만원의 피해가 났다. 영업을 하지 않은 새벽 시간대라 인명피해는 없었다. 2017.03.20.  [email protected]
새까맣게 그을린 팔뚝만한 농어, 잿빛 잔해와 뒤엉켜
매캐한 냄새 코 찔러…상인들 속도 까맣게 타들어 가
상인들 "잿더미 속 회 칼 한 자루도 못 건져"    

【인천=뉴시스】박성환 기자 =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데…."

 새까맣게 그을린 목재들 사이로 철재 뼈대만 앙상했다. 화마(火魔)가 집어삼킨 목조건물 잔해가 여전히 탄내를 풍겼다. 포구와 맞닿은 곳에 옹기종기 모인 좌판 220여 개와 인근 횟집 점포 20여 곳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시장 전체가 검게 그을린 채 잿빛으로 변했다.

 지난 20일 오전 인천 소래포구 어시장. 대형 화재가 발생한 지 사흘이 지나 열기는 가셨지만, 아직도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화재로 사망자는 없다지만, 상인들이 목숨만큼 소중히 여긴다는 좌판들은 한 줌의 재로 사라졌다. 

 짐승의 뼈처럼 삐죽삐죽 솟은 철제 기둥들이 한때 이곳이 왁자지껄했던 어시장 좌판이었다는 것을 웅변하는 듯했다. 얼기설기 나무와 천으로 엮은 천장 구조물은 폭격을 맞은 것처럼 화염에 녹아 폭삭 내려앉았고, 철제 기둥들은 엿가락처럼 휘어져 주저앉았다.

 기둥 사이로 타다만 구조물이 아슬아슬 매달려 있거나 산산조각이 난 채 나뒹굴고 있었다. 화마가 다닥다닥 붙어 있는 어시장 좌판을 무차별적으로 휩쓸었음을 짐작게 했다.

 새까맣게 그을리고 뒤틀린 집기와 이름 모를 수산물이 그날의 상흔을 증명이라도 하듯 뒤엉켰다. 종잇장처럼 구겨진 수조와 냉장고는 화마의 위력을 가늠케 했다. 전쟁터 폐허처럼 변한 어시장에는 팔뚝만 한 농어와 이름 모를 생선, 조개, 건어물들이 잔해와 뒤엉켜 있었다.

 잿더미가 수북이 쌓인 시장 입구에는 경찰통제선이 겹겹으로 쳐졌고, 일정한 간격을 두고 서 있는 앳된 얼굴의 의경들은 진입을 통제했다.

 경찰통제선 안쪽으로는 짙은 회색 옷을 입은 화재 조사반과 경찰들이 잿더미 사이를 돌며 현장감식을 벌이며 분주한 발걸음을 옮겼다. 또 어시장 곳곳에 배치된 포크레인이 어지럽게 널린 잿더미를 퍼담느라 연신 고개를 숙였다.

 사고 소식을 듣고 몰려온 인근 시민들과 관광객들은 스마트폰으로 잔해를 찍거나 한참 동안 사고 현장을 바라보며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회사원 강석구(55)씨는 "싱싱한 회를 맛 볼 수 있어 가족들과 가끔 외식했던 시장인데, 잿더미를 변해서 속상하다"며 "막상 와서 보니깐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아서 더욱 안타깝다"고 말했다.

 주부 고모(45)씨도 "10년 넘게 다니던 단골 가게에 있었는데, 지금은 형체조차 남아 있지 않을 정도로 다 타버렸다"며 "추억이 있던 장소인데 이렇게 다 타버리고 나니 아쉽고, 섭섭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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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뉴시스】전진환 기자 = 20일 오후 인천시 남동구 소래포구 어시장 화재현장을 한 시민이 바라보고 있다.  지난 18일 발생한 화재로 332개 점포 중 220여 곳이 불에 타 소방당국 추산 6억5000만원의 피해가 났다. 영업을 하지 않은 새벽 시간대라 인명피해는 없었다. 2017.03.20.  [email protected]
 또 피해 입은 상인들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는 시민들도 적지 않았다.

 주부 김영옥(57)씨는 "아무리 무허가라도 한 순간에 삶의 터전을 잃은 상인들에 대한 지원과 함께 다시는 이런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한 원인 규명이 필요하다"면서 "높으신 양반들이 사진 찍고만 갈게 아니라, 더 이상 이런 슬픔이 반복되지 않도록 힘을 써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어시장 상인들은 새카만 그을음만 남은 시장 내부를 둘러보며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일부 상인들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집기를 챙기러 간단한 절차를 밟고 경찰 통제선 안으로 들어가 자신의 가게를 살피느라 분주했다.

 10년 넘게 장사를 했다는 김모(57)씨는 "회 칼 한 자루나 도마 하나 제대로 건지지 못했다"며 "한 순간에 삶의 터전이 모두 불에 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막막하다"고 토로했다.

 20여 년 동안 장사를 했다는 권모(70)씨는 "주말 장사를 앞두고 싱싱한 횟감을 많이 들여놨는데, 모두 불에 타서 하나도 남지 않았다"며 "언제 복구될지도 모르겠고, 답답한 마음이 좀처럼 풀리지 않는다"고 전했다.

 예상치 못한 화마에 상인들의 마음도 시간이 갈수록 까맣게 타들어가고 있다.

 상인 김모(65)씨는 "불에 잘 타는 재질의 구조물이 곳곳에 있어 화재가 삽시간에 시장 전체로 번진 것 같다"며 "새카만 그을음과 재만 남은 시장을 볼 때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난다"며 울먹였다.

 또 다른 상인 박모(44)씨는 "어렵게 키운 삶의 터전을 하루아침에 잃어버렸다"며 "언제 복구가 될지 모르겠지만, 하루 빨리 복구돼 예전처럼 장사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고 말했다.

 화마가 아슬아슬하게 비켜간 시장 한편에는 다시 장사를 시작하려는 시장 상인들이 바쁜 손놀림으로 물건을 정리하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김모(44)씨는 "손님 맞을 채비를 끝냈지만,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나 다름없다"며 "하루 빨리 복구되는 바람으로 시장에 나와서 장사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예기지 못한 화마가 덮친 인천 소래포구 어시장에서는 한평생 일군 삶의 터전을 잃은 상인들은 끝이 보이지 않은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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