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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입양 작가 인숙 차펠 "16년 만의 방한, 한국이 따뜻해졌어요"

등록 2017-06-03 13:06:06   최종수정 2017-06-13 09: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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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인숙 차펠, 2세 때 영국으로 입양된 극작가. 2017.06.03. (사진 = 국립극단 제공)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여전히 제 정체성에 대해 헷갈리고 복잡한 문제를 갖고 있지만 제가 그렇다고 한국과 관련된 작품만 쓰는 것은 아니에요."

 2일 오후 서울 서계동 국립극단에서 만난 한국 태생의 영국 극작가 겸 영화제작자인 인숙 차펠(43)은 정체성으로 혼란스러웠다고 털어놓았던 지난 방한보다 여유로워보였다.

 16년 만에 한국을 찾은 그녀는 2세 때 영국으로 입양됐다. 지난 2001년 한국 정부가 주도한 '엄마의 땅' 투어 때 '한국인이 될 수 없는 외국인'이라는 것을 깨닫고 트라우마를 가져갔던 그녀다.

 "당시 소속감을 못 느꼈어요. 한국에 오면 소속감을 느낄 수 있다는 환상을 갖고 왔는데 그것이 깨졌거든요. 당시 주최 측에서 입양에 대한 정보를 제대로 파악해주시지 못하셔서 좋지 않은 기억으로 남아 있었죠."

 어린 딸, 영국인 남편과 함께 한 이번 방한에서는 하지만 한결 편안해진 미소를 지었다. "국립극단 관계자분들을 비롯해 모두 따뜻하고 친절하게 대해주셨죠"라고 웃었다. 

 런던에서 활동 중인 인숙 차펠은 미국 뉴욕 앨빈 에일리 스쿨에서 무용을 공부하다 연기로 전환했다. 연극배우로 활동하다 극작가로 보폭을 넓혔다. 

 그녀가 극작을 하게 된 까닭은 영국인이지만 아시아 여성의 겉모습으로 캐스팅의 장벽에 부딪혔기 때문이다. "간호사, 창녀 역할만 제안이 왔어요. 제 커리어를 위해서라도 극작을 생각하게 된 이유죠."

 두 번째 쓴 희곡이자 무대에 오른 자신의 첫 번째 작품인 '이건 로맨스가 아니야'(2009)로 영국의 권위 있는 '베리티 바게이트 어워드'를 받으며 단숨에 이름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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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인숙 차펠, 2세 때 영국으로 입양된 극작가. 2017.06.03. (사진 = 국립극단 제공) [email protected]
"학교에 들어가서 극작을 공부한 건 아니에요. 배우로서 연기를 해오면서 느낀 것이 극작에 도움이 됐어요. 하지만 작가로서 무엇부터 시작을 해야 되는지 몰라서 쓰는 시간이 오래 걸렸죠."

 이제 극작을 하고 싶어 하는 후배들을 위해 조언을 줄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다. "젊은 작가들이 극작을 어떻게 시작 하냐고 물어보면 우선 공부 대신 연기 수업을 들으러 가라고 해요. 실제 대사를 나눠본 뒤 캐릭터의 의도를 먼저 생각하라고 하죠."

 인숙 차펠은 영국 BBC 라디오 드라마로도 제작된 '이건 로맨스가 아니야'가 8년 만에 국립극단을 통해 한국에 소개되면서 방한하게 됐다. 

 국립극단은 이달 1일부터 7월23일까지 미국, 영국, 캐나다 등 해외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한인작가 5명의 대표작을 무대에 올리는 '한민족디아스포라전'을 펼친다. 

 '이건 로맨스가 아니야'는 한국을 넘어 세계에서 한국인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는 이번 프로그램에 부합하는 작품이다. 

 한국에서 태어나 어릴 적 헤어진 두 남매의 재회로 시작된다. 입양과 이별, 죄책감이라는 트라우마를 갖고 살아온 남매가 25년 만에 마주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주인공인 누나 미소 블레이크가 영국으로 입양된 한국 입양아라는 것과, 에섹스(Essex)에서 자랐다는 것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픽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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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인숙 차펠, 2세 때 영국으로 입양된 극작가. 2017.06.03. (사진 = 국립극단 제공) [email protected]
2일 국립극단 소극장 판에서 개막한 이 연극은 문학적 서사가 짙은 이 작품은 정체성과 혈연 그리고 자본에 대해 집요하게 톺아본다.

 미소 역의 정새별과 미소가 제주에서 부모를 잃고 부산 버려둔 동생인 한솜 역에 조재영 그리고 자본에 취한 현대의 이중성을 요약한 잭 캐쉬 역의 최광일 등 배우들의 호연이 돋보인다.   

 인숙 차펠이 앞서 국립극단에 이 작품을 "극단적인 연극이고, 극단적인 한국입양아의 견해이자, 외국인의 생각이고, 슬픔의 일부"라고 소개한 것에서 보듯 작품을 지배하는 전반적인 정서는 어둡다. '썬샤인의 전사들', '로풍찬 유랑극장'의 부새롬이 연출한다.

 "미소 블레이크라는 캐릭터는 기본적으로 정체성에 대한 혼란을 갖고 있어요. 그녀의 직업이 모델이라는 것 역시 그런 부분 중 하나의 연결고리죠. 이미지로 판단되는 직업인데 보여지는 이미지와 자신의 정체성이 딱 맞지 않은 거죠."

 그런 상황에서 오랜만에 만난 자기 동생의 얼굴에서 자신을 보게 되고 그에게 끌리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저 자신을 미소에 많이 투영했어요. 하지만 저는 친가족을 만난 적이 없죠. 저와는 다른 캐릭터입니다."

 자신의 감정에 특별한 변화가 찾아왔을 때 쓴 작품이기도 하다. "그 때 아이가 생기기도 했고, 감정적인 굴곡이 지나는 시기였죠. 극단적인 이야기이지만 절대로 잊지 말라고 강조하는 건 국제 입양이 큰 트라우마라는 거죠."

 정체성을 기반으로 한 그녀의 작품 스펙트럼은 점차 넓어지는 중이다. 10대 때 영국의 부모와 함께 비무장지대(DMZ)를 방문한 이후부터 관심을 갖게 된 북한에 대한 최신작인 '평양'이 대표적이다. 영국의 권위 있는 브런트우드 프라이즈 최종 후보로 선발되는 등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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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연극 '이건 로맨스가 아니야', 국립극단 '한민족디아스포라 전' 중. 2017.06.03. (사진 = 국립극단 제공) [email protected]
"친구 초대로 북한 인권을 다루는 영화를 봤고 그곳에서 북한을 탈출한 사람들을 만났어요. 그들과 친구가 됐고 그들에 대해 이야기를 쓰고 싶었죠. 하지만 인권이 소중하다는 정치적인 소명이나 감동과 눈물을 강조하는 식으로는 쓰고 싶지 않았죠. 북한 사람들도 정말 나와 같은 평범한 사람이라고 동일시 할 수 있는 캐릭터를 쓰고 싶었어요. 영국 사람들도 감정이입을 할 수 있게요"

 인숙 차펠은 최근 영국 사람이 바라본 북한 이야기인 단편영화 '꽃제비'를 만들기도 했다. 한국전쟁에 참전한 영국인과 북한에서 온 여자 아이가 사로에게 위안을 얻는 우정 이야기다. 최근 게이 커플이 아이를 얻기 위한 과정을 그린 작품, 중국에 관련한 작품도 작업 중인 그녀는 스펙트럼을 점차 넓혀가고 있다.  

 이번에 용산의 전쟁기념관을 찾아가 한국전쟁과 관련 리서치를 하고 싶다는 인숙 차펠은  "작가라는 것이 좋은 거 같아요. 무엇을 하든지 작품이라는 아웃풋으로 나오기 때문"이라고 웃었다.

 한편 '한민족디아스포라전'에서는 '이건 로맨스가 아니야' 외에 한국계 미국인인 영진 리의 '용비어천가', 로스앤젤에스(LA)에서 태어난 교포 2세 극작가 줄리아 조의 '가지', 한국계 미국인인 미아 정의 '널 위한 날 위한 너', 한국에서 태어나 캐나다에서 자란 인스 최의 '김씨네 편의점' 등 해외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한인작가 5명의 대표작을 선보인다.

 김윤철 예술감독은 "현재 학계에서는 원초적 디아스포라보다는 경제, 문화, 정치적인 영향이 나라마다 서로 침투한 상황에서 다중적 또는 복수적 정체성을 갖고 있는 디아스포라가 화두"라며 "포스트모던 디아스포라라고도 하는데 '한민족디아스포라전'은 큰 스펙트럼으로 새로운 의미, 기회, 위기를 들여다보면서 우리의 정체성과 그 너머를 조명해보자는 기획"이라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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