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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환의 스크리닝]'대립군' 속 광해를 보며 한 사람을 떠올리다

등록 2017-06-11 06:50:00   최종수정 2017-06-11 21:5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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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영화 ‘대립군’(감독 정윤철)의 한 장면.
【서울=뉴시스】김정환 기자 = 그는 왕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자신이 세자가, 그것도 친형 ‘임해’(오승윤)를 제치고 그 자리에 오르는 것이 싫었다.
 
 이정재, 여진구 주연 사극 ‘대립군’(감독 정윤철) 속 '선조'(박호산)의 둘째 왕자 '광해'(여진구) 얘기다.

 그런 광해였기에 자신이 후궁의 소생임을 내심, 아니 대놓고 못 마땅해하는 아버지가 자신을 세자로 책봉한 것도 모자라 이름만 거창한 ‘분조(分朝)’라는 왕의 책임마저 떠맡기는 것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총명한 그답게 아버지의 의도가 따로 있음을 너무 잘 알기에 더욱 그랬다. 1592년 4월14일 임진란이 개시하고 한 달도 안 된 5월3일 한양을 점령한 왜군이 평양까지 파죽지세로 치고 올라오자 명나라 턱밑 의주로 피했다 아예 국경 넘어 명나라로 피신할 때 조선 땅에서 누군가 왕 역할을 하게 하려는 계산이라는 것을.

 그러나 제아무리 세자가 됐다고 하나 여전히 ‘일인지하(一人之下)’였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는 세자 감투도 썼고, 분조도 맡았다.

 그리하여 '인조(공교롭게도 훗날 광해를 몰아내고 왕좌에 오른, 선조의 손자)'와 더불어 조선 역사상 최악의 임금인, 그러나 잔머리는 최고였을 아버지 선조를 대신해 권한은 하나도 없고, 책임만 가득한 '허수아비 왕' 역할을 하게 된다.
 
 이씨가 아직 조선의 지배자로서 건재하고, 군대를 막후에서 지휘하며 왜적에 맞서 싸운다고 백성이 믿게 해 충성을 유지할 뿐만 아니라 의병으로 끌어내려는 선조 연출 ‘사기극’의 주연이었다. 선조를 잡으려고 혈안이 된 고니시 유키나가, 가토 기요마사 등 왜군 맹장들의 시선을 분산하는 ‘미끼’였다.

 그러던 광해는 한 무리 백성을 만난다. '토우'(이정재), '곡수'(김무열) 등으로 남의 군역을 대신하는 사람들, 대립군(代立軍)들이다.
 
 분조를 지킬 병사가 한 명이라도 필요했던 '한 판서'(김명곤) 등 대신들은 그들에게 "대립은 군법 위반이라 벌을 내려야 한다"고 겁을 주면서도 "그러나 분조를 안전하게 지킨다면 무과에 응시할 기회를 주는 등 후한 상을 내리겠다"고 유혹해 대립군들을 '고용'한다.
 
 광해와 대립군, 신분이 하늘과 땅 차이였던 그들은 험준한 평안도, 함경도의 산을 넘고 계곡을 건너면서 서서히 마음을 열고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 자객과 싸우고, 왜군을 따돌리며, 틈틈이 전쟁에 지친 백성을 보듬으면서 광해와 대립군들은 '하나'가 된다.

 그런 과정을 통해 착하지만 나약했고, 이기고 싶었지만 싸우는 방법을 몰랐던 광해는 단단해졌고 강해졌다. 무엇보다 광해는 자신이 왜 왕위에 올라야 하는지, 왕이 돼 무엇을 해야 하는지 등을 '각성(覺醒)'하게 된다.

  영화에서 광해가 조금씩 변화하는 모습을 지켜보다 문득 우리 시대의 누군가를 떠올렸다,
 
  물론 영화가 100% 역사적 사실이 아닌, 팩션이긴 하나 세자도 되고 싶지 않았던 광해가 왕이 반드시 되고 싶다고 마음을 먹으며 성군의 재목으로 거듭나는 과정이 정치인이 되기를 그토록 거부하다 운명적으로 정치인이 된 한 사람의 사연과 어우러져 낯설지 않았다.

  역사로 되돌아가 보자.
 
  1608년 등극한 조선 제15대 왕 광해군(1575~1641)은 대동법을 시행해 전란에 시달린 백성의 부담을 덜어줬고, '동의보감' 등 수많은 서적을 편찬하도록 해 전후 복구의 기틀을 마련했다. 특히 명과 후금 사이에서 중립외교를 펼쳐 나라와 백성의 안전과 이익을 챙겼다.

  하지만 광해군은 당쟁을 끝내 극복하지 못 한 결과, 1623년 인조반정으로 폐위됐다. 그에게 남은 것은 명을 배신하고, 형제(임해군과 배다른 동생 영창대군)를 죽인 '폭군'이라는 오명뿐이었다.
 
  현대에 와서 그의 업적이 재조명된 덕에 그나마 '비운의 개혁 군주'라는 타이틀을 갖게 됐지만, 아쉬움은 크다.

  영화 '대립군'은 광해의 각성만 다룰 뿐이다. 성공도, 실패도 그리지 않는다.
 
  그러나 역사는 낱낱이 기록한다. 만일 영화가 광해의 훗날도 다뤘다면 어떻게 풀어갔을까.
 
  모르긴 몰라도 점점 초심을 잃어가는 모습을 그리지 않았을까.
 
  영화에서 자신과의 싱크로율을 느끼며 더욱 기대감을 높인 국민을 위해 역사에서 교훈을 얻어 끝까지 초심을 잃지 않는 모습을 '그분'에게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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