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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환의 스크리닝]천만 영화 '택시운전사'와 기자의 고해성사

등록 2017-08-21 06: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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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영화 '택시운전사'의 한 장면.

【서울=뉴시스】김정환 기자 = 대대로 서울 토박이인 기자가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TV에서 이런 뉴스가 나왔다.
 
수십 년 지난 일이어서 완벽하게 기억하지는 못 하지만 요지와 상황은 생생히 생각난다.
"지금 계엄군이 광주로 진격하고 있습니다. 무장 폭도들을 진압하고 있습니다."
기자와 친구들은 그 뉴스를 듣고 손뼉을 치며 외쳤다. "빨갱이들, 이제 다 죽었다."

우리를 기쁨에 들뜨게 만든 그 뉴스 속 사건은 다름 아닌 1980년 5월18일 일어난 '광주민주화운동'이다. 
 
전두환 군부의 총칼에 굴복한 TV 등 언론이 쏟아내던 '가짜 뉴스'에 당시 전남 광주시를 제외한 대한민국 전부가 감쪽같이 속으면서 벌어진 일이다.

당시 언론은 "북괴가 침투시킨 무장공비와 현지 좌익들이 전과자, 소매치기, 깡패 등 불평 불만자들을 부추겨 무장폭동을 일으켜 광주시가 극심한 혼란을 빚고 있다.
 
간첩들은 독침으로 선량한 시민들을 죽이고 계엄군이 시민을 학살한다는 유언비어를 퍼뜨리고 있다.
 
이에 계엄사령부는 광주에 공수부대를 비롯한 계엄군을 투입해 광주 탈환과 시민 구출에 나섰다"고 이른바 '광주사태'에 관해 보도했던 것으로 기억난다.

그러나 훗날 선지원·후시험 방식으로 대입 학력고사를 치르기 위해 찾은 대학에서 기자는 충격적인 진실을 마주하고 말았다.

"1980년 5월 광주에서는 전두환 군부 쿠데타 세력에 저항하기 위해 대학생, 시민이 평화 시위를 벌였다.
 
군부가 이를 폭력적으로 진압하면서 유혈사태가 빚어졌다. 당시 많은 학생과 시민이 희생됐다"는 내용의 글과 당시 처참했던 현장 사진들이었다.
 
기자가 어릴 적 접했던 뉴스와 정반대 이야기였다.
 
진실을 까맣게 몰랐던, 아니 불의에 항거한 분들을 폄훼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웠고 창피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어려서 내가 속은 것뿐이야"라고 애써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려고 했다.

다시 20여 년이 흐른, 지난 2일 기자는 한 극장에서 그날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노력한 사람들을 만났다. 
 
송강호와 독일 배우 토머스 크레취만 주연 영화 '택시운전사'(감독 장훈)다.
 
앞부분 줄거리는 이렇다.
 
"택시기사 '만섭'(송강호)은 광주에 갔다 통금 전에 돌아오면 거금 10만원을 주겠다는 말에  영문도 모른 채 독일인 기자 '피터'(토마스 크레취만)를 태우고 길을 나선다.
 
계엄군이 출입을 철저히 봉쇄하며 광주를 외부와 단절시킨 상황이었으나 만섭이 기지를 발휘한 덕에 두 사람은 간신히 광주에 들어선다.
 
그러나 눈앞에 펼쳐진 광주는 전쟁터나 다름없었다. "위험하니 서울로 돌아가자"는 만섭의 만류에도 피터는 대학생 '재식'(류준열)과 현지 택시기사 '황씨'(유해진)의 도움을 받아 취재를 시작한다.
 
그러나 상황은 점점 심각해지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외신 기자의 잠입을 알게 된 보안사는 그들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택시운전사'는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실을 생생하게 기록해 전 세계인에게 전한 독일 제1공영방송 일본 특파원 고(故) 위르겐 힌츠페터씨와 그를 도운 택시기사 김사복씨의 실제 이야기를 극화했다.
 
당시 광주의 참상을 생생하게 담은 힌츠페터의 필름은 '기로에 선 대한민국'이라는 다큐멘터리로 제작돼 독일은 물론 전 세계에 방송됐다.
 
목숨을 건 그의 노력은 당시 광주의 진실을 세계인에게 알렸고, 이는 아시아 동쪽 끝 작은 나라에 전 세계의 비판과 우려가 쏟아지는 계기가 됐다. 비록 큰 희생을 치렀지만, 광주가 '한국판 킬링필드'가 되는 일 만큼은 막을 수 있었다.

역사 앞에 진실이 드러난 지금은 그 역할이 끝났을까. 안타깝지만, 아니다. 그 노력의 가치는 여전히 살아있다.
 
단적으로 여태껏 광주의 진실을 외면한 채 여전히 당시 군부의 왜곡 그대로 '친북괴 좌익 폭동론'을 되뇌는 극소수 사람에게 되묻는 명분을 만들어준다.

"당시 분단 독일에서 공산국가인 동독도 아닌, 자유민주주의국가 서독 기자가 어째서 공산주의를 옹호하는 뉴스를 전했겠느냐?"
 
당연한 진실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고, 힌츠페터 기자·김사복 기사 등의 존재를 알게 해준 '택시운전사'.
 
정말 고맙다. 지난 20일 올해 첫 '1000만 영화' 등극을 진심으로 다시 한 번 축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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