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 사회일반

[김정환의 스크리닝]240번 버스와 부안 교사 그리고 '더 헌트'

등록 2017-09-21 12:00:00   최종수정 2017-11-15 13:58:53
  • 크게
  • 작게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이메일
  • 프린트
associate_pic
【서울=뉴시스】덴마크 영화 '더 헌트'의 한 장면.

【서울=뉴시스】김정환 기자 = 최근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군 '240번 버스' 사건은 결국 씁쓸한 해프닝으로 끝났다.

"버스 정류장에서 어린 딸은 하차했으나 어머니는 하차하지 못 한 상황에서 버스가 출발했고, 하차를 시켜달라는 어머니의 호소에도 버스 기사는 못 들은 채 다음 정류장으로 가 비로소 하차해줬다. 내리는 어머니에게 기사는 욕까지 했다"는 한 네티즌의 글이 사단이 됐다.

그러나 서울시 조사 결과 이 글은 사실과 엄청난 차이가 있었음이 밝혀졌다. 

"버스 기사는 해당 정류장에서 16초간 출입문을 열었고 그사이 아이가 다른 아이를 따라 내렸다. 버스가 문을 닫고 출발한 뒤 엄마가 하차를 요구했지만, 버스는 이미 2차로에 진입한 뒤여서 문을 열 수 없었다. 그래서 다음 정류장에 정차해 문을 열었고 엄마는 거기서 내렸다. 이때 기사는 욕도 하지 않았다."

'해임'을 넘어' 처벌' 요구가 빗발칠 정도로 네티즌의 엄청난 분노에 직면해야 했던 기사도, 그가 사실상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사실이 드러난 뒤 동정 대상에서 곧바로 성토 대상으로 전락한 아이 엄마도 결국 '피해자'였다.

이 사건은 고도로 발전한 우리 사회가 전혀 실체 없는 '소문' '괴담'에 얼마나 쉽게 무력해질 수 있는지를 여실히 드러낸다. 모두가 자신을 '정의의 히어로'로 자임하면서 모두가 지목한 '악인'을 향해 돌을 던진다. 합리적인 판단도, 객관적인 진실은 집단 분노에 묻혀 버린다. 

문제는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게 빚어진다는 사실이다. 과거 종업원이 임신부의 배를 걷어찼다던 '충남 천안 채선당 사건', 서울 광화문 한 푸드코트에서 아이 얼굴에 뜨거운 국물을 쏟아 화상을 입힌 뒤 사라졌다던 '된장 국물녀 사건 등은 인터넷에 자신이 '피해자'라고 주장한 측이 오히려 '가해자'였고, '가해자'로 여겨진 측이 사실은 '피해자'였던 것으로 결론 났다.

그러나 '아닌 밤중에 홍두깨' 격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은 진짜 피해자들은 사건 당시는 물론 진실이 드러난 뒤에도 고통에 시달려야 했다. '폭력 가게'로 낙인찍힌 해당 채선당 지점은 큰 손해를 입은 채 폐업하고 말았고, 졸지에 파렴치한 '국물녀'가 된 중년 여성은 한동안 신상털기 표적이 됐다.

지난달 5일에는 전북 부안군 모 중학교 C(55) 교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c교사는 지난 3월부터 다수 학생에 대한 성희롱 의혹을 받아왔으며, 사고 당시 교육청 감사를 앞두고 있었다. 경찰 수사 결과 단순한 신체 접촉은 있었으나 성추행은 아니었다. 성추행 주장 역시 그가 야간 자율학습을 빼주지 않은 것에 앙심을 품은 한 학생이 거짓말하면서 벌어졌다.

이 사건들을 접하며 앞서 2012년 '제65회 칸 국제영화제'가 열린 프랑스 남부 휴양도시 칸 현장에서 지켜본 마스 미켈센 주연 덴마크 영화 '더 헌트'(감독 토마스 빈터베르그)가 생각났다. 남우주연상을 미켈센에게 안겨준 작품이다. 국내에서는 2013년 1월 개봉해 약 3만6000명이 봤다.

줄거리는 이렇다. "이혼 후 고향에 내려온 유치원 교사 '루카스'(마스 미켈센)는 새로운 여자친구를 사귀며 아들 마커스와 함께하는 행복한 삶을 꿈꾼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 딸인 '클라라'(아니카 베데르코프)가 유치원 원장에게 뭔가를 고백하면서 사건이 시작한다. 평소 루카스는 클라라를 친딸처럼 여기며 살갑게 대하는데 조숙한 클라라는 루카스를 '남자'로 여기고 적극적으로 대시한다.

그러나 루카스가 분명히 선을 긋자 이를 못내 섭섭해한 클라라는 루카스가 자신을 성추행한 것처럼 원장에게 모함한다.

이를 그대로 믿은 원장이 원생 부모들에게 말을 옮기면서 거짓말은 사실처럼, 아니 침소봉대돼 전염병처럼 마을로 퍼진다. 누명을 쓰게 된 루카스는 마을 사람들의 불신과 집단적 폭력 속에서 자신의 삶을 지키기 위한 외로운 싸움을 시작한다."

루카스를 옭아맨 것은 그에게 섭섭했던 소녀의 거짓말이었지만, 그를 낭떠러지로 밀어버린 것은 주변 사람들의 억측과 불신이었고, 그로 인한 마녀사냥이었다.

가장 재미있는 것이 불구경이고, 가장 신나는 것이 남의 뒷담화(뒷말)라고 한다.

누군가는 그저 재미로 연못 안 개구리를 향해 돌멩이를 던질 뿐이지만, 자칫 돌에 맞으면 개구리는 자칫 죽을 수 있다. 문제는 비극은 개구리의 억울한 죽음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죽은 개구리가 썩으면서 악취가 풍기고 수질은 혼탁해지면서 그 연못은 더는 사람이 놀러 갈 곳이 되지 못 한다.

[email protected]
Copyright © NEWSIS.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이메일
  • 프린트
  • 리플
위클리뉴시스 정기구독 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