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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효령의 BOOK소리] 손정미 "'글 써봐라' 박경리 권유로 기자 접고 도전"

등록 2017-10-19 13:08:50   최종수정 2017-11-14 11:4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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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역사소설 '광개토태왕' 저자 손정미 작가. 2017.10.19. (사진=한영희 사진작가 제공) [email protected]
■20년간 '조선일보 기자'에서 역사소설가로 변신
고구려와 광개토태왕 담은 '광개토태왕' 1,2권 출간

【서울=뉴시스】신효령 기자 = 사람은 서로가 영향을 주고 받는 존재이다. 때로는 한 사람의 만남이 인생을 바꾸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역사소설가로 변신한 손정미 작가(50)가 그랬다. 조선일보 기자로 일할때다. '한국 문학의 대모' 박경리(1926~2008)를 만나면서 어릴적 꿈인 소설가를 떠올렸다.

 손 작가는 "대학교때도 틈틈이 습작을 했지만, 기자가 된 이후에는 그 꿈을 잘 생각하지 못했다. 박경리 선생님과 만남이 꿈에 도전하는 큰 기폭제가 됐다"고 말했다.

벌써 20년도 넘은 일이지만, 자신의 인생을 바꾼 소설가 박경리와의 만남은 여전히 생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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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1994년 8월 강원도 원주시 단구동에서 박경리 선생님(왼쪽)과 손정미 작가가 함께 찍은 사진. 2017.10.19. (사진=이기원씨 제공) [email protected]
"박경리 선생님께서 쓰신 '토지'를 읽고 너무나 존경스럽고 대단하다고 생각했어요. 1994년 당시 문학 담당 기자여서 '토지' 완간 기념 인터뷰를 하러 갔어요. 그 때 선생님으로부터 문학을 하는 자세, 치열함 등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저의 잠재되어 있던 꿈이 되살아났어요."

인터뷰를 하면서 글을 쓰고 싶다는 열망을 가지고 박경리와 인연을 소중히 간직해왔다.

한 명의 작가가 작가를 꿈꾸는 한 사람에게 미칠 수 있는 영향은 어마어마했다. 친분이 쌓인 뒤 조심스럽게 습작해놓은 단편을 용기 내어 보여줬다.

"원래 박경리 선생님이 다른 사람 작품을 잘 안 봐주시고, 덕담 수준에서 '글을 써보라'고 하시는 분도 아니에요. 박경리 선생님께서 '계속 기자를 하라'고 하시면 꿈을 접으려고 했어요. 그런데 읽어보시고 나서 선생님이 '글을 써도 좋겠다'고 말씀해주셔서 굉장히 큰 용기를 얻었죠."

박경리 선생으로부터 본격적으로 소설을 써보라는 권유를 받고 이후 고민하다 2012년 조선일보를 그만 뒀다. 어릴적부터 꿈꿔온 소설가가 되기 위해 20년간의 기자 생활을 뒤로하고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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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그녀의 시선이 머문 곳은 '고구려'와 '광개토태왕'이고, 결국 역사소설 '광개토태왕'(1·2권, 마음서재)을 냈다.

소설은 고구려 제19대 왕으로 18세에 즉위해 40세의 나이로 사망하기까지 불꽃같은 생애를 살았던 광개토태왕의 일생을 그린다.

광개토태왕은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용맹하고 지혜로운 왕으로 꼽힌다. 백제, 신라, 중국으로부터 공격당하던 고구려를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강력한 대제국으로 만든 장본인이다.

하지만 정작 우리 역사상 영토를 최대로 넓힌 왕이라는 사실 외에 그의 생애와 업적을 아는 이가 많지 않다. 기록도 희미하며, 서글프게도 관심마저 사라져가고 있는 현실이다.

손 작가는 고구려에 관한 빈약한 사료들을 찾아내고 폐허가 된 유적지를 답사하며 작가적 상상력과 직관으로 3년여에 걸쳐 이 소설을 완성했다. 이를 통해 우리 역사상 가장 찬란했던 시대, 위대한 지도자가 1600년 만에 깨어난다.

"1600년 전 일을 제가 재현해내야 하는데 잘해야 되잖아요. 광개토태왕과 관련된 직접적인 자료는 중국에 있는 광개토태왕비 하나고, 삼국사기에 있는 정도거든요. 삼국사기에 장수왕은 굉장히 자세히 나와있지만 광개토태왕은 그렇게 자세하지도 않아요. 한 줌도 되지 않는 자료, 여기저기 흩어져있는 것을 모으느라 품이 많이 들어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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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역사소설 '광개토태왕' 저자 손정미 작가. 2017.10.19. (사진=한영희 사진작가 제공) [email protected]
손 작가는 모래밭에서 사금을 찾는 심정으로 빈약한 사료를 하나씩 구해 찾고 전문가들을 만났다.

"역사소설이기는 하지만 팩트에 근거하지 않으면 허황될 수 있거든요. 그래서 논문, 학술 자료 등을 찾아 읽고 전문가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대략 1년 반 정도 집중 스터디를 하고 그 다음에는 글을 쓰면서 자료를 업데이트했어요."

또 광개토태왕의 흔적을 찾아 중국 집안과 심양, 백두산을 비롯해 만주 지역과 대흥안령을 거쳐 산해관, 갈석산 등을 답사했다. 상고사를 더 깊이 연구하기 위해 고구려와 교류가 활발했던 실크로드를 훑고 중앙아시아를 지나 이란의 이스파한까지 찾아갔다.

우리 역사에 원대한 지평을 열어준 광개토태왕과 고구려의 영광된 유산이 생생하게 펼쳐진다. "역사에 관심이 가지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작가의 의도가 풍부한 취재와 뛰어난 필력으로 빛을 발한다.

"사실 저도 역사소설을 쓰기 전에는 역사가 뭔가 어렵다고만 느껴졌어요. 알고보면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 많아요. 그래서 사람들이 기피하는 역사를 소설로 잘 녹여서 감동있게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저의 3년간의 작업을 2권으로 소화하실 수 있으니 얼마나 가성비가 높아요. 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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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역사소설 '광개토태왕' 저자 손정미 작가. 2017.10.19. (사진=한영희 사진작가 제공) [email protected]
"하늘의 뜻을 알면 세상의 이치를 관통해, 매사 시시하게 접근하지 않고 허투루 하는 일이 없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그 결과가 얼마나 빛나겠습니까. 그럴 때 은합 하나를 만들어도 마치 생명을 만들어내는 것 같이 우주의 순수한 기(氣)와 정(精)을 담을 것입니다. 그런 은합이야말로 오래오래 그 멋을 간직하니 즐기고 간직하고 싶어집니다. 우주의 순수한 기와 정을 담았는데 얼마나 멋지고 살아 생동하는 아름다움이 있겠습니까."(1권 180~181쪽)

손 작가는 광개토태왕에 대해 "인본주의를 바탕으로 공동체 운명을 생각한 멋진 리더였다"며 극찬했다.

문단의 거목이 왜 그녀를 소설가의 길로 인도했는지 알 수 있다. 그는 기자 생활이 소설을 쓰는 데 도움이 됐다고 했다.

"조선일보 기자로 일하면서 200자 원고지 기준으로 평균 5매를 매일 썼어요. 굉장한 글쓰기 연습이죠. 단문 형식이고 팩트를 근거로 하기 때문에 건조해보일 수 있지만, 나름의 매력이 있는 문체일 수 있어요. 기자생활을 하면서 제한된 시간에 핵심을 찾아내는 일,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어느 전문가한테 말해야 하는지 훈련을 계속 받잖아요. 이 경험이 작가로서 취재할 때도 도움이 많이 됐어요. 특종을 하기 위해서는 끈기와 노력이 필요하잖아요. 그런 것도 좋게 작용했어요."

손 작가는 "다음 작품으로 고조선을 생각하고 있다"고 전했다.

"고조선 하면 역사인지 신화인지 전설인지 모호하게 생각하고 있잖아요. 굉장히 중요한 우리의 역사였는데, 그것을 놓치고 있는 것 같아요. 고조선을 설득력있게 소설로서 풀어볼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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