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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한식에 죽으나 청명에 죽으나...금타 노조원들의 절규

등록 2018-03-15 15:01:58   최종수정 2018-03-19 09:4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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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뉴시스】김동현 기자 = '한식에 죽으나 청명에 죽으나'라는 옛 말이 있다. 동지 후 105일째 되는 날인 한식은 청명(4월 5~6일) 바로 전날이다. 업어치나 메치나, 이렇게 하나 저렇게 하나, 별반 차이가 없을 상황을 일컫을 때 쓰는 표현이다.

 이 말처럼 요즘 해외매각 결사반대를 외치는 금호타이어 노조원들의 심정을 잘 대변하는 언어도 드물 것 같다.

 노조가 회사측이 요구하는 '정상화 약정서' 합의를 해외매각 철회를 내세우며 끝내 거부할 경우 채권단은 법정관리행을 선택할 공산이 크다.

 이 경우 금호타이어는 존속 또는 청산에 대한 법원의 결정을 받게 되는데, 실사 결과 청산가치가 존속가치보다 두 배 이상 높게 나온 터여서 십중팔구 회사가 없어질 수 있다.  

 다시 말해 법정관리로 가게 되면 근로자들은 즉시 일자리를 잃고 거리로 나앉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보통의 상식이라면 회사 측의 '경영정상화 계획실행을 위한 노사약정서' 에 대해, 체결을 서둘러야 겠지만 노조는 정반대 행보를 보이고 있다.

 왜 그럴까?

 채권단이 회사에 대해 법정관리를 신청해 청산되든, 해외매각을 해서 근로자들을 서서히 자르는 사태가 오든 결과는 매한가지라는 게 이들의 생각이기 때문이다.

 그 만큼 회사를 이지경으로 만든 경영진이나 채권단에 대한 불신은 크고 깊다. 해외매각에 대한 트라우마는 거의 경기(驚氣)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제3자가 보기에 노조 행태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필사적인 이유다. 

 이달 초 금호타이어 노조 간부는 고공농성을 진행했다. 최근에는 노조원들과 함께 총파업에 나서고 있다. 이들은 한결같이 '채권단의 해외매각 공식 철회'를 외치고 있다.

 한 근로자의 말을 들어보자.

 "더블스타가 금호타이어를 인수할 경우 중국 공장 가동률을 높이기 위해 많은 물량을 중국에서 생산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국내 공장 가동률은 떨어질 수 밖에 없고 중국 근로자에 비해 높은 임금을 받는 국내 근로자는 서서히 회사를 떠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3년간 고용을 보장한다고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요?"  

 그 동안 외국계 기업에게 넘어간 회사 근로자들이 고용불안에 시달린 사례에서 비춰볼 때 이 근로자의 주장이 전혀 근거 없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없다. 

 해외 자본 유치에 적극 협력하더라도 일자리를 서서히 잃게 되는 상황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상하이차가 대표적이다. 상하이차는 쌍용차를 인수할 당시 연구개발은 물론 시설투자, 고용보장 등을 약속했지만 수많은 근로자들을 수렁에 몰아넣고 기술만 훔쳐 달아났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상하이차는 2004년 쌍용자동차를 인수한 이후 유동성 문제가 불거지자 즉각 우리나라 정부에 자금 지원을 요청하는 모습을 보였다. 정부가 이를 거부하자 2009년 상하이차는 법정관리를 신청하고 경영권을 내놨다.

 이 과정에서 근로자들의 피해는 막심했다. 불과 5년 사이에 쌍용자동차 근로자 2000여명이 해고를 당했으며 법정관리를 통해 2600명의 근로자가 회사를 떠나야했다. 목숨을 끊는 근로자도 상당수 있었다.

 모든 외국계 기업이 그런 건 아니지만 상당수가 이런 행태를 보이는 건 철저히 이익 중심 경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손해가 조금이라도 발생하면 근로자를 줄여서라도 손해를 막는다'는 게 이들의 원칙이다.  갑작스러운 해고로 근로자와 근로자 가족의 생계가 막막해지는 것은 이들의 고려사항이 아니다.

 금호타이어 노조가 외국계 기업으로의 인수를 결사 반대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동안 채권단과 정부가 보여왔던 행태도 문제다. 전혀 신뢰를 주지 못했다는 말이다.

 채권단은 부실 기업을 외국계 기업에 넘기면서 손해를 적게 보려고만 혈안이었다. 정부는 외국계 기업이 어려워졌을 대 근로자를 거리로 내쫓고 있는 것을 방관하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결국 꼬일대로 꼬여버린 금호타이어 사태를 풀기 위해서는 정부와 채권단은 근로자들에게 희생과 양보만을 외쳐선 안된다.

 물론 근로자들도 대승적 차원에서 임금삭감 등 고통을 감내하겠다는 각오를 해야 한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먼저 근로자들에게 외국계 기업에 회사를 넘기더라도 고용안정을 보장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는 것이다.

 철탑으로, 거리로 뛰쳐나가는 이들의 깊은 트라우마를 덜어줄 수 있는 '그 무엇'이 지금은 절실하다. 

 "지금 이대로 가면 회사가 망한다"는 위기감도, "해외매각 밖에 달리 살 길이 없다"는 호소도 왜 근로자들의 마음을 전혀 사로잡지 못하는 지 채권단과 정부는 곱씹어 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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