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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정의 寫讌] 시치미 떼고, 바람 맞고…'매(鷹)사냥' 이야기

등록 2018-03-18 06:00:00   최종수정 2018-03-19 09:3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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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천연기념물 323-1호 참매. 매는 언뜻 보기에 귀여운 새처럼 보이지만 토끼, 새 등을 잡아먹고 산다. '매섭다', '매몰차다' 라는 말은 어원을 매사냥에서 찾을 수 있다. 매의 성질을 나타내는 말에서 온 우리말이다.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파드득 파드득"

 아이들이 다가가자 새들은 힘껏 몸부림 칩니다. 눈매가 매섭고 발에는 줄이 묶여 있습니다. 어린이들의 반응은 각양각색입니다. 겁을 잔뜩 집어먹고 오들오들 떠는 아이들도 간혹 눈에 띕니다. 공간을 가로질러 순식간에 먹이를 낚아채는 이 새의 위용은 대단합니다. 어른들도 두렵게 할 만 합니다. 하지만 체험학습을 나온 또다른 어린이는 "귀엽다"며 해맑은 미소를 짓습니다.

 지난 10일 오후,  서울 남산골 한옥마을에서 열린 매사냥 체험행사 현장입니다. 어린이들과 엄마, 아빠가 한데 어울려 난생 처음 보는 맹금류 체험학습을 하는 등 이색적인 한때를 보냈습니다.  날카로운 부리에 매서운 눈초리를 지닌 매를 보며 "귀엽다"는 탄성을 지른 아이들은 이 새가 꿩, 토끼, 여우를  포획하는 타고난 사냥꾼이라는 점을 아마도 몰랐을 겁니다. 

 어린이들을 사로잡은 매는 훌륭한 사냥꾼입니다. 야생 상태에 있는 꿩, 토끼 등 먹잇감을 순식간에 포획합니다. 

 매사냥은 지난 2010년 11월 16일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됐습니다. 등재 당시 우리나라, 몽골, 벨기에, 오스트리아, 아랍에미리트, 카타르, 프랑스 등 세계 11개국이 관련국으로 지정됐고 현재 18개국으로 확장됐습니다. 이를 포함한 80여 개국이 수천 년 전부터 전통 매 사냥을 해 온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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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10일 서울 필동 남산골한옥마을에서 열린 매사냥 체험에서 한 어린이와 엄마가 천연기념물 323-1호 참매의 생태를 관찰하고 있다. 매의 꽁지에 달린  하얀 깃털은 '시치미'로 이름과 주소 등을 적어 주인을 찾을 수 있도록 하는 이름표다. 매사냥이 성행했던 고려 시대 남의 매를 손에 넣고 '시치미'를 떼어내버리던 모습에서 '시치미 떼다' 라는 우리말의 어원을 찾을 수 있다. [email protected]
우리나라에서는 기원 전후 고조선 시대 만주 동북지방에서 수렵생활을 하던 숙신족에게 배워 매사냥을 했다고 전해집니다. 서기 3년 고구려 유리왕 22년 안정복이 쓴 동사강목에 사냥매를 해동청(동쪽의 푸른 매)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매사냥을 직접 경험해보지 못했더라도 우리가 쓰는 많은 표현들이 매사냥과 연관돼 있습니다. ‘시치미 떼다’ ‘매달다’ ‘바람맞다’ ‘매섭다’ ‘매만지다’ ‘매끄럽다’ ‘매몰차다’ ‘옹골지다’... 많이 사용하는 우리말이지요. 이 표현들은 매사냥에서 어원을 찾을 수 있습니다.
 
 삼국시대부터 고구려를 중심으로 매사냥이 매우 성행했는데요 이때부터 선조들이 주인 잃은 매를 위해 매의 꽁지에 주소와 이름 등을 적은 이름표 ‘시치미’를 매달았습니다. 남의 매를 손에 넣고 내 매인 것처럼 시치미를 떼어버리는 경우도 있었는데 여기서 유래해 자기가 하고도 모르는 척 하거나 아닌 척 하는 모습을 ‘시치미 떼다’라고 표현하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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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10일 서울 필동 남산골한옥마을에서 열린 매사냥 체험에서 어린이들이 한국전통매사냥보전회 소속 회원들의 설명을 들으며 천연기념물 323-8호 황조롱이를 팔에 얹고 매만지고 있다. '매만지다' '매끄럽다'는 매사냥에서 어원을 찾을 수 있다. 매를 길들일 때 부드러운 매의 깃털을 쓰다듬는 모습을 매만지다, 부드러운 매의 깃털을 매끄럽다고 표현해온데서 유래한 우리말이다. [email protected]
또 매달다’, '매달리다‘ 도 매사냥에 어원을 두고 있습니다. 매를 길들일 때 줄을 발에 묶습니다. 매는 야생성이 강해  구속을 거부하고 날아가려고 발버둥을 칩니다. 이때 매가 줄에 묶여 거꾸로 퍼덕이는 모습을 이러한 표현에 담았습니다. ‘바람맞다’는 매가 먹잇감을 놓치면 맞바람을 안고 비행하는데서 비롯됐고요.

 ‘매의 눈빛처럼 날카롭다’에서 온 ‘매섭다(매스럽다)’, 매를 길들일 때 깃털을 보드랍게 쓰다듬는 모습을 표현한 ‘매만지다’, 매의 성질과는 다르게 매의 깃털은 정말 부드러운데 여기서 생겨난 ‘매끄럽다’, 쌀쌀맞다는 표현의 ‘매몰차다’, 고집이 센 매의 성질을 비유한 '옹고집(응(鷹)고집)', 속이 꽉 찼다 혹은 몸이 단단하고 부실함이 없다는 표현의 ‘옹골지다(응(鷹)골지다)’ 등도 매사냥에서 온 우리말입니다. 어원을 알고 나니 더 재미있습니다.

 매를 부리는 매사냥꾼은 응사(鷹師)라고 부릅니다. 고려 때 종2품 벼슬, 지금으로 따지면 교육감 정도의 고위 공무원이었습니다. 요즘 우리나라에서는 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로 등록된 전북 진안 박정오, 대전 박용순 두 명을 응사라고 칭합니다. 두 명의 응사와 19명의 이수자, 전수생, 보존회 등이 어렵게 명맥을 잇고 있습니다.

 체험에 함께한 참매와 황조롱이는 천연기념물 323-1, 황조롱이는 323-8호로 지정돼 문화재보호법상 누구도 소유할 수 없고 기를 수 없습니다. 대부분의 매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보호받고 있는데요. 두 명의 응사에게만 한시적으로 매의 포획권과 사육권이 허가되고 이수자에게는 사육권만 허가됩니다. 또 전수자들은 매를 포획할수도, 사육할수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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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10일 서울 필동 남산골한옥마을에서 어린이들이 한국전통매사냥보전회 소속 회원들에게 교육을 받으며 천연기념물 323-8호 황조롱이를 머리에 얹고 매사냥 체험을 하고 있다. 황조롱이는 언뜻 귀여운 새처럼 보이지만 토끼, 새 등을 잡아먹고 사는 맹금류다. [email protected]
응사가 되려면 근면성, 성실성 등을 판단하는 1년의 유예기간과 보유자에게 기능을 배우는 3년 이상의 전수과정이 필요합니다. 이 과정을 충분히 마친 뒤 보유자가 전수생을 이수심사를 받도록 신청하면 지자체와 문화재청 등에서 조류학자 등 전문가로 구성된 심사위원이 전수자를 심사합니다. 통과하면 지자체장 명의의 이수증을 받고 문화재청에 매의 사육권을 신청합니다. 그러면 문화재 위원이 다시 사육권 심사를 합니다.

위 두가지 심사에서 통과하면 사육권을 받습니다. 이를 천연기념물 현상변경 허가라고 합니다. 이 권한은 5년마다 재심사를 받아야 합니다. 취미로 매를 집에 두고 기르거나 혼자 꿩, 토끼를 잡는 것은 안됩니다. 전승과 문화 향유를 위한 활동을 해야 합니다.

 매는 맹금이기 때문에 길들이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지정문화재인 매를 보호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전수자들은 매가 없으니 매사냥을 전승하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매사냥 보유자는 지방문화재로 분류돼 월 70~80만원의 전승활동비를 지자체로부터 지급 받습니다. 수익구조를 가질 수 없는 매사냥의 특성상 생활비를 충당하기 어렵습니다. 이마저도 이수자에게는 지급되지 않습니다. 이수자와 전수자 대부분이 다른 직업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 현실에서 많은 전수교육생들은 일찌감치 이수과정을 마치지 못하고 중도 포기합니다.

 이수자인 한국전통매사냥보전회 황대인 사무총장은 “열정 없이는 못하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또 저변 확대의 중요성도 강조합니다. 전통 매사냥을 많은 사람들이 향유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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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천연기념물 323-1호 참매. 매는 언뜻 보기에 귀여운 새처럼 보이지만 토끼, 새 등을 잡아먹고 산다. '매달다' 라는 우리말은 매사냥에서 어원을 찾을 수 있다. 이 사진처럼 야생성이 짙은 사냥매가 다리에 줄이 묶인 채 날아가려고하다 거꾸로 뒤집어지는 모습에서 온 우리말이다. 2018.03.11. [email protected]
지난 해 매사냥은 지방문화재에서 중요무형문화재로 승격 실사를 거쳐 올해 가부 확정을 앞두고 있습니다.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면 발표공연비·제작지원비·전수교육비를 지급받고, 국가의 보호를 받게 됩니다. 지정되면 세계적으로도 인정받는 인류 문화유산을 잘 보전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것이라 기대합니다. 

 <조수정의 사연(寫讌)은 사진 '사(寫)', 이야기 '연(讌)', '사진기자 조수정이 사진으로 풀어놓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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