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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간 소식없던 손녀가 오자 부엌칼 든 할아버지

등록 2018-03-26 10:32:00   최종수정 2018-04-02 09: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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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신효령 기자 = 일본 소설가 모리사와 아키오가 쓴 '에밀리의 작은 부엌칼'이 국내 번역·출간됐다.

일본 지바 현에서 태어난 작가는 와세다대를 졸업했다. '당신에게'가 2012년 동명의 영화로 제작되면서 큰 성공을 거뒀으며, 베스트셀러 '무지개 곶의 찻집'은 영화 '이상한 곶 이야기'로 2014년 개봉했다.

'에밀리의 작은 부엌칼'은 사람의 온기로 상처받은 마음을 회복하는 이야기가 담긴 소설이다.

사랑에 속아 모든 것을 잃은 에밀리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해변 마을에 사는 할아버지 집으로 도망치듯 떠나온다. 온갖 상처로 마음이 삭막해진 에밀리는 매일 부엌칼을 갈고, 할아버지와 함께 요리를 준비하고 맛보면서 조금씩 변화해간다.

여유롭고 담담하게,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온 할아버지와 하루하루를 충실히 살아가는 마을 사람들 틈에서 인생의 가치를 깨닫고 삶의 의지를 되찾은 에밀리는 다시 힘을 내 도시로 향한다.

15년간 소식이 없던 손녀가 갑작스럽게 찾아왔지만 다이조 할아버지는 아무것도 묻지 않는다. 부엌에 서서 칼을 갈고 요리를 준비할 뿐이다. 작은 식탁에 마주 앉아 할아버지의 정성 가득한 요리를 먹은 에밀리는 알 수 없는 감정과 따뜻함을 느낀다.

"불쾌한 일이 좀 있으면 어떻습니까? 그런 건 그냥 평범한 거잖아요. 한 걸음 더 나아가 생각해보면 풀이 죽으면 또 어때요? 울어도 좋아요. 그러니까 나는 분명히 좋은 일도 일어난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달까요? 힘들 땐 우리 주변의 작은 행복을 바라보며 좋은 기분을 맛보면 되는 겁니다."(258쪽)

"자신의 존재 가치와 인생 가치를 남이 판단하게 해선 안 된다. 반드시 스스로 판단해라. 다른 사람의 의견은 참고 정도만 하면 돼. 생각해봐라. 사정도 잘 모르는 사람들이 에밀리와 에밀리의 인생을 제멋대로 판단했을 뿐인데, 그런 사람들이 판단한 결과에 따라 인생을 사는 건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고, 무엇보다 불쾌하지 않냐?"(289쪽)

묵묵히 기다려주고 지지해준 할아버지와 있는 그대로의 에밀리를 받아준 마을 사람들이 에밀리의 상처를 치유해줬다면, 할아버지와의 거리를 좁혀주고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음식이다.

할아버지 음식은 소박하지만 깊이가 있다. 할아버지만의 철학이 담겨 있다.

작가는 이 책을 쓸 때 가마쿠라 벨즈의 풍경직인 기쿠치 마코토씨를 취재하며 순동을 두드려 만드는 풍경 제조법 노하우를 배웠다고 밝혔다.

그는 "기쿠치 씨는 소리를 과학적으로 연구하고, 가마쿠라의 문화와 역사를 공부하며 풍경 소리와 가마쿠라를 융합하기 위해 힘쓰시는 아주 유쾌한 분이었다"며 "실제로 기쿠치 씨가 만드는 방법과 이 책에서 묘사한 내용에는 차이가 있었지만 큰 도움이 됐다"고 전했다.

이어 "'가마쿠라 벨즈'는 산책하면서 가마쿠라를 한껏 즐길 수 있는 '유이가하마 중앙 상점가' 부근에 있기 때문에, 취재 후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여러 가게를 구경할 수 있었다"며 "가마쿠라 산책은 매우 즐거웠고 음식도 맛있었다"고 했다. 문기업 옮김, 396쪽, 재승출판, 1만3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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