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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를 혐오한다⑤]불안한 개인들이 만든 공공의 적…"다 너희 탓"

등록 2018-09-11 07:50:00   최종수정 2018-10-01 09: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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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의 가장 큰 특징 '배제'…대화, 논쟁의 여지 없어

"그냥 한국서 꺼졌으면 좋겠다" "다 없어져버렸으면"

이면엔 빈부격차, 불평등 심화 등 구조적 불안 깔려

소속 집단서 안정감·정체성 획득…외부엔 '적' 만들어

각종 문제 책임 전가 '저들 때문에 내가 피해 입는다'

"다양한 집단들 한 데 묶어주는 사회 공통가치 부재"

"표현의 자유라는 미명 하에 혐오 표현도 거침없어"

'분노 동맹' 확장…한국 사회 혐오 현상 더 심화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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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안채원 기자 = "솔직히 난민들은 그냥 한국에서 꺼졌으면 좋겠어요." 대학생 김모(23)씨는 난민을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사람 중 한 명이다. 김씨는 "마주치기가 싫다. 안 보이면 괜히 불안해할 필요도 없다"고 했다.

 회사원 박모(26)씨는 주말 서울 광화문 광장을 가득 메운 '태극기 부대' 집회를 몇 번 목격한 후 노인 혐오자가 됐다. 그는 "심한 말인 줄은 알지만 '틀딱'(노인을 낮춰 부르는 인터넷 용어)들이 다 없어져버렸으면 좋겠다"며 "설득도 불가능해 보이고 말이 안 통하지 않느냐. 마주치면 괜한 피해만 커진다"고 짜증스런 반응을 보였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특정 대상을 완전히 배제하려는 마음이 바로 혐오의 정체라고 말한다. 법철학자 마사 누스바움은 저서 '혐오와 수치심'에서 혐오를 "자신을 오염시킬 수 있는 것에 대한 거부를 표현한다"고 설명했다. 꺼림칙한 상대에게 문제제기를 하지 않고 거부해버림으로써 대화 혹은 논쟁의 여지를 없애는 감정이 곧 혐오다.

 혐오에는 구조화한 '불안'이 자리하고 있다. 한국 사회는 둔화한 경제 성장, 악화하는 경제 지표, 높아진 청년실업률, 점점 더 벌어지는 빈부격차, 길어진 수명과는 반대로 짧아지기만 하는 경제활동기간 등 갖가지 문제들을 내포하고 있다.

 이런 상황은 사람들을 점점 불안 상태로 몰아가고, 이 스트레스를 견디고 안정감을 되찾기 위해 내가 속한 집단의 정체성을 더욱 강화해 나가는 경향으로 이어진다. 이 과정에서 내가 속하지 않은 집단에 각종 문제의 책임을 전가하면서 혐오가 시작된다. '저들만 없었으면 내게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을 수도 있었다'는 마음이 싹트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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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김선웅 기자 = 14일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열린 성소수자 최대 행사인 제19회 서울퀴어문화축제를 마친 참가자들이 도심을 행진하고 있다. 2018.07.14.  [email protected]
이택광 경희대학교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쉽게 말해 살림살이가 힘들어지면 개인은 불안해지고 자기 정체성을 확립하고 싶어 한다. 그런데 그 정체성은 대부분 집단에서 소속감을 느끼며 형성된다"며 "다른 집단과 구별 짓는 집단 내의 동일성을 계속해서 확인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집단의 정체성을 가장 확실하게 규정 짓는 방법은 내부 단결"이라며 "이를 위해 외부에 '적'을 만든다"고 했다.

 일단 적을 설정하면 혐오는 증폭된다. 논리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그들을 혐오해야 하는 논리는 만들면 그만이다. 이 교수는 "혐오는 구조를 살펴보지 않는다. 대신 특정 개인과 특정 계층, 특정 세대를 저격해 문제의 원인을 그들의 탓으로 돌린다. '난민 때문에' '동성애자 때문에' '장애인 때문에' 불편하다고 말하는 것이 대표적"이라고 했다. 혐오를 이야기할 때 가장 자주 언급되는 온라인 커뮤니티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의 공격 대상 또한 노무현·전라도·여성 등으로 특정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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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뉴시스】배상철 기자 = 이향 제주난민대책도민연대 사무국장이 11일 오후 제주시청 앞에서 열린 ‘제4차 난민반대 제주집회’에서 난민법 폐지를 촉구하고 있다. [email protected]
물론 삶이 불안하다고 해서 항상 '내가 아닌 그들'을 혐오하는 건 아니다. 상대를 이해하게 하는 사회 공통가치가 있으면 다양한 집단이 얼마든지 조화롭게,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현재 한국 사회에 개인이 느끼는 불안감을 긍정적으로 해소해줄 만한 공유 가치들이 제대로 자리잡지 못했다고 본다.

 윤상철 한신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사회·경제·문화 등 계층적으로 다른 집단들을 한 데 묶어주기 위해서는 공통가치가 필요하다. 평등주의, 공동체주의, 자유주의 등이 그러한 가치가 될 수 있다"며 "그 가치가 없으면 계층적으로 우위에 있는 집단이 차이와 차별을 정당화한다. 능력이 있으니까, 예쁘니까, 부지런하니까, 열심히 노력했으니까 지금 누리는 지위가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윤 교수는 "사회가 선순환하기 위해서는 '밑바탕'이 되는 가치들이 필요하다. 앞서 말한 자유주의, 평등주의, 공화주의, 공동체주의가 그런 가치들이다. 그 가치들이 잘 자리 잡았을 때 서로를 존중하면서 비로소 민주주의에 따라 자기 주장을 할 수 있다. 그런데 한국 사회는 이러한 가치가 부재한 상태에서 자기 주장만 한다. 혐오표현도 '내 주장'이라고 말한다. 이런 민주주의는 표현의 자유라는 미명 하에 오히려 혐오를 더 부추기게 된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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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김진아 기자 = 15일 보수 우익 단체가 개최한 문재인 대통령 탄핵 집회에 여성우월주의 성향 '워마드' 회원 60여명도 동참했다. 2018. 08.15 [email protected]
한국 사회 혐오 현상은 당분간 더 심화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이른바 '태극기 부대'가 난민 반대 집회에 참석해 난민을 받으면 공산화된다는 구호까지 외치고, 워마드를 비롯한 일부 페미니스트들도 난민 유입이 여성 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며 '잠재적 범죄자'로 간주하는 주장을 적극 펼치고 있다. 공통점이 없어 보이는 두 단체가 '안보' '안전'이라는 기치 하에 '분노 동맹'을 맺은 듯한 형국은 상징적이다. 혐오의 확장이자 이합집산으로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이택광 교수는 "혐오를 조장하는 이들의 논리는 시간이 갈수록 세련돼지고 공고해질 것"이라며 "현재 과도기적인 상태에 있는 한국 사회가 이를 어떻게 해결할지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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