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 문화일반

얼굴을 잃어버린 인간의 삶, 이정은 소설집 '피에타'

등록 2018-09-28 11:24:48   최종수정 2018-10-15 09:13:22
  • 크게
  • 작게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이메일
  • 프린트
associate_pic
【서울=뉴시스】 신효령 기자 = "신은 유독 어머니에게만 강요했던 것 같다. 삶의 마지막까지 따라다녔을 저 깊고 질긴 상처, 엄청난 고통과 슬픔, 바로 그 속에서 오순도순 살라고, 그리고 나처럼 부활하라고, 더 높이 올라 영원히 안식에 이르라고. 그런 터무니없는 신의 요구를 어머니는 어떻게 감당했을까? 어머니는 자식을 잃는 십자가 죽음을 체험했고, 자신을 버렸고, 이웃을 섬기며 돌보았고, 죽을 때까지 신에게 순종했다. 온전한 맡김이 이런 것이라고 보여 줬다. 어머니는 나에겐 종교가 되었다."('피에타' 중)

작가 이정은(79)씨가 여섯 번째 소설집 '피에타'를 냈다. 표제작을 비롯해 '왕이 귀환하다' '칠공주파' '지꾸 이야기' '칠공주파' '생태관찰' 등 7편이 담겼다.

'피에타'는 이타주의를 온몸으로 구현하는 어머니를 딸의 시선으로 그린 중편이다. 젊을 때부터 거지들에게 밥, 옷가지, 잠자리를 거의 무한으로 퍼주는 어머니는 딸보다도 그들을 먼저 살필 정도다. 세월이 흘러서도 마찬가지다. 노숙자, 독거노인, 행려병자 등을 보살핀다.

'왕이 귀환하다'는 지난해 제42회 한국소설문학상을 수상했다. 조폭 두목 오대봉의 쇠락한 말년을 사실감있게 묘사한 단편이다. '생태관찰'은 실패한 천재 의학자 최영석과 그를 사모한 후배 김희선의 사랑 이야기다. 최영석은 평범한 임상 의사의 길 대신에 사랑의 묘약인 페로몬 합성 연구에 몰두한다.'칠공주파'는 소녀들의 성장소설이다. 7공주파 '짱'이던 유경옥의 사망원인을 규명한다. '뷰티풀 마인드'는 감전으로 팔다리를 잃고 얼굴이 뭉개진 환자의 내면을 그린 작품이다.

서울 태생인 이씨는 중앙대 예술대학원 문예창작 전문가 과정을 졸업했다. 1991년 '월간문학' 신인상에 소설 '부화기'가 당선돼 프로 활동을 시작했다. 2011년 만우박영준문학상, 2012년 아시아황금사자문학상 우수상, 2012년 들소리문학상 대상 등을 받았다. 한국문인협회 문인권익옹호위원 등을 지냈으며, 한국소설가협회 부이사장으로 활동 중이다.

"사람은 누구나 밖으로 드러내지 못하는 또 다른 자아를 마음속에 품고 있는 법이다. 아 지금이라면, 안아 줘, 그렇게 말할 수 있을 텐데. 바보같이 후회해 보지만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한 번만 더 청했으면 따라가려고 마음먹었는데. 그는 여자의 부끄러움에 대해서 모를 것이다."('생태관찰' 중)

"아내가 그의 뜨거워진 얼굴에 입을 맞췄다. 혀에 작은 경련이 일었고 그것을 스위치 삼아 그의 몸속 전원들이 일제히 켜지고 있었다. 그는 세상에서 부러운 것이 없었다. 보다 정확히 말해 그는 또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왜냐하면 잃어버린 얼굴을 되찾았기 때문이다. 밖에는 달이 지고 태양이 떠오르기 직전이다. "('뷰티풀 마인드' 중)

문학평론가 임헌영씨는 "인간 존재의 본질과 한계, 착함과 올바름, 이기심과 베풂 등을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라며 "가톨릭 신자인 이정은 작가는 예상치 못한 반전과 치밀한 심리 묘사로 얼굴을 잃어버린 인간의 삶을 모티프로 한 철저한 문학의 세계를 만들어냈다"고 읽었다. 368쪽, 1만4800원, 나남

[email protected]
Copyright © NEWSIS.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이메일
  • 프린트
  • 리플
위클리뉴시스 정기구독 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