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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잔혹 '묻지마 살인'…외톨이 분노인가, 여성 혐오인가

등록 2018-11-02 16:50:39   최종수정 2018-11-12 09:3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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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되는 묻지마 범죄, 거제에서 다시금 발생

박탈감 등 분노 일거에 폭발, 극단적 폭력으로

"공감 능력 현저히 낮아 감정대로 행동 성향"

피해자 벗겨진 하의…여성 혐오 가능성도 제기

피의자 엄벌 촉구 靑청원 24만명↑ 분노 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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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 50대 여성 사망 사건 관련 현장. (사진=경남지방경찰청 제공)
【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지난달 4일 경남 거제시에서 20대 남성이 일면식도 없는 50대 여성을 아무 이유도 없이 무차별 폭행해 숨지게 한 사건이 알려지면서 일명 '묻지마 범죄'가 다시 한번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현재 이 남성에 대한 경찰 수사가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살해 동기 등 구체적인 배경을 단언할 수는 없지만, 전문가들은 대체로 이번 사건을 두 가지 측면에서 바라본다.



하나는 '낙오자' 혹은 '외톨이'의 분노 표출이다.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이들이 마음 속에 담아둔 화를 어떤 상황에서 특정 개인, 특히 약자를 향한 폭력으로 분출시킨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혐오다. 이런 종류의 폭력이 대개 불특정 다수를 향해서가 아니라 명백히 자신보다 약한 여성 혹은 노인을 주로 겨냥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증오 감정이 결합해 극단적으로 드러난 사례가 아니냐는 분석이다.

 ◇외톨이들의 분노→극단적 폭력으로

2012년 여의도 흉기 난동 사건, 2014년 울산 버스정류장 살인 사건, 2016년 강남역 화장실 살인 사건, 지난 7월 고속버스 흉기 난동 등 최근 발생한 일련의 '묻지마 범죄'는 대부분 사회 부적응자가 저질렀다는 공통점이 있다.

물론 범행 동기에 조금씩 차이가 있고 조울증이나 우울증 등 정신질환을 앓았던 이들도 있지만, 외톨이였고 사회생활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는 점은 똑같이 적용된다.

전문가들은 이런 유형의 사람들은 사회에서 느낀 상대적인 박탈감 등 각종 분노를 적절한 방식으로 해소하지 못하고 마음 속에 쌓아두게 되는데, 이 스트레스가 특정 순간 일거에 폭발하면서 극단적 폭력을 쓰게 된다고 지적한다.

일각에서는 이런 범죄를 갈수록 경쟁과 갈등이 심화하는 현대 사회의 그늘로 보기도 한다. 치열한 경쟁 구도에서 낙오되거나 살아남지 못한 이들이 보일 수 있는 최악의 행동이 '묻지마 범죄'의 형태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번 거제 사건 피의자 박모씨는 만 20세로 사회 경험이 많지는 않다. 다만 경찰 조사로 알려진 것처럼 이 남성이 고등학교 시절 학교 폭력 가해자였다는 점, 술에 취하면 지인에게도 폭력을 쓸 정도로 자기 통제가 전혀 안 됐다는 점에서 정상적인 사회 생활이 가능했다고 보기 힘든 측면이 있다.

박씨가 범행 전 인터넷을 통해 '사람이 죽었을 때' '사람이 죽었는지 안 죽었는지' '사람이 죽으면 목이 어떻게' 등을 검색했다는 사실도 파악됐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사회적 외톨이들은 대인관계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익숙하지 않다"며 "그래서 불편하면 폭력으로 응징하는 반응이 나오는 것"이라고 짚었다.

곽 교수는 "이런 유형의 사람들은 다른 사람과 공감하는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며 "의사소통과 공감이 중요한 게 아니라 자기의 감정 변화가 중요하기 때문에 폭력을 쓰는 상황이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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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보다 50㎝나 작은 여성, 벗겨진 하의…여성혐오 가능성도

박씨는 180㎝ 키에 건장한 체격이었다. 이에 반해 피해 여성은 키가 132㎝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왜소했다. 살해 당시 피해자의 하의가 벗져긴 상태였고 박씨는 의식을 잃은 여성을 끌고 도로로 나왔다.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이런 행태에 주목하는 시각도 있다.

자신보다 신체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상대를 고르고, 저항하지 못하는 상대의 하의를 벗겨 또 다른 모욕을 줬다는 건 이번 사건을 여성 혐오 범죄로 볼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여혐 논란을 불러온 강남역 살인 사건도 이번 거제 사건과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이 사건에서도 피의자는 힘으로 쉽게 제압이 가능한 여성을 범행 상대로 택했고, 이후 경찰 조사에서 "여자들이 항상 나를 무시했다"고 진술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하의를 벗긴다는 건) 여성 입장에서 가장 치욕적인 장면"이라며 "결국 일종의 성적 모욕일 가능성이 굉장히 큰데, 굳이 이런 행동을 보였다는 점에서 평소 박씨의 인터넷 활동을 면밀히 조사해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살해 동기에 혹시라도 여성에 대한 혐오 대목이 나왔다면 이건 심각한 사회적 양상"이라며 "조사를 좀 더 철저히 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엄벌하라, 청와대 청원 24만명 넘겨

이 사건에 대한 대중의 분노는 빠른 속도로 커지고 있다.

특히 박씨가 경찰 조사에서 "술에 취해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한 게 알려지면서 '강서구 PC방 살인 사건'을 통해 불거진 심신 미약 논란에 다시금 불이 붙고 있다. 박씨 측이 만취 상태를 이유로 같은 주장을 할 수도 있다는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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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씨를 엄벌해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의 글은 2일 오후 3시 기준 추천수 24만명을 넘어선 상태다. 청원인은 "어려운 형편에 좌절하지 않고 열심히 살아가던 선량한 사회적 약자가 영문도 모른 채 극심한 폭행을 당해 숨졌다"며 "술에 취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사람들을 감형 없이 제대로 강력하게 처벌해달라"고 했다.

한편 경찰은 박씨에 대해 상해치사 혐의를 적용했지만 검찰은 그를 살인 혐의로 기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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