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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시스 인터뷰]양인모, 영으로 통하는 경지 '파가니니 스페셜리스트'

등록 2018-11-05 14:43:39   최종수정 2018-11-12 09:4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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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이재훈 기자 =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23)가 올들어 급성장했다. 블루칩 연주자의 통과의례처럼 된 '금호아트홀 상주 음악가'의 올해 연주자가 바로 양인모다.

5일 유니버설뮤직그룹의 클래식 레이블 '도이치 그라모폰'을 통해 데뷔 앨범 '파가니니: 24개의 카프리스'를 발매하며 2018년 활동에 정점을 찍었다.

지난 5월 금호아트홀에서 연주한 이탈리아 바이올리니스트 겸 작곡가 니콜로 파가니니(1782~1804)의 '24개의 카프리스' 전곡 연주 실황을 담았다. 카프리스 전곡 스튜디오 녹음은 흔하지만 실황을 녹음하는 것은 드문 일이다.

파가니니는 화려한 기교와 강렬한 카리스마를 자랑하는 바이올린계의 전설이다. 양인모는 2015년 한국 국적자 최초로 파가니니를 기리는 세계경연대회인 '프레미오 파가니니 국제콩쿠르'에서 우승하며 세계적으로 주목받았다.

이 콩쿠르 결선에서 난곡으로 유명한 파가니니 협주곡 1번을 힘들이지 않고 완벽하게 연주해내는 그의 모습을 본 뒤 그를 '인모니니'라고 부르는 마니아층도 생겼다.

양인모는 광화문 문호아트홀에서 "파가니니는 제게 각별하고 희열을 안겨줍니다"면서 "기교보다 소통의 장을 마련해준 음악가예요. 앞으로 파가니니와 관계가 더 발전할 것"이라며 웃었다.

양인모는 올해만 '24개의 카프리스'를 무대에서 세 번 선보였다. 금호아트홀 연주에 앞서 4월 광주 유스퀘어문화관 금호아트홀 그리고 최근 파가니니의 고향인 제노바에서 연주했다.

"이제는 24개의 카프리스가 확실히 편해졌어요. 대신 어떻게 하면 연주가 더 새로워질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죠. 이번에 제노바에서 연할 때도 파가니니의 정기를 받았다고 할까요, 새로운 시도를 했죠. 음악적으로 연주할 가치가 있다는 것을 매번 느껴요."

무엇보다 '24개의 카프리스'가 점차 인간적으로 다가온다며 음악적 여유가 생겼다고 했다. 특히 "악보에 씌여져 있는 것만이 아니라 스스로 하는 음악적 결정에도 자신이 생겼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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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파가니니라서 가능한 것 같아요. 만약 베토벤이었으면 더 큰 구속이 있었겠죠. 작곡가가 의도한 것을 최대한 실현해야 하는 형식적 무게감이요. 카프리스는 왜 작곡된 지 몰라요. 제 생각이지만 파가니니가 자신을 위해서 작곡한 것 같아요. 청중 앞에서 연주한 기록도 없어요. 이런 점들 덕분에 접근할 때 악보에 매몰되지 않죠. 아이디어를 여러 가지 방식으로, 실행할 수도 있죠. 예를 들어 활을 사용하는 주법 스타일 역시 제가 결정할 권한이 있다고 생각해요."

양인모는 '24개의 카프리스' 연주가 매번 달라져야 한다고 분명히 했다. "그렇지 않으면 굳이 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이다. "이미 시중에는 24개의 카프리스 앨범이 많아요. 내 것은 뭐가 다를까 생각하죠. 매번 연주할 때마다 의미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이번에는 실황 녹음 앨범이라 청중 사이에서 팽팽한 긴장감이 있었고, 소통하고자 하는 태도도 있었죠. 추상적인 부분들이지만 스며들어 있다고 생각해요. 청중이 완성한 음반입니다. 스튜디오에서 혼자 녹음했으면 이렇게 연주를 하지 않았을 거예요."

시중에 나와 있는 '24개의 카프리스' 연주 앨범 중 양인모가 최고라고 생각하는 연주자의 음반은 러시아 바이올리니스트 슐로모 민츠(61)의 앨범이다. "어릴 때부터 들었고, 지금 들어도 손색이 없어요"라면서 "파가니니에 대한 존경을 만들어준 앨범"이라고 했다. 이와 함께 러시아계 미국 바이올리니스트로 역시 파가니니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에서 우승한 알렉산더 마르코프의 연주 영상물도 높게 평가했다.

양인모가 '24개의 카프리스' 중 가장 녹음이 힘들었던 곡은, 한 가운데 놓인 12번이다. "어려운 곡은 아니라 12번을 연주할 때 체력적으로 가장 힘들었어요. 9번, 10번, 11번이 힘든 곡이라 그 이어서 12번을 연주하려니까 힘들더라고요"라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파가니니와는 언제나 좋은 관계였다며 싱글벙글이다. 고난도의 파가니니는 학생들이 어려워하거나 기피하는 연주자로 통한다. 공부를 하면서, 경멸하거나 좌절한다.

"자랑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초반부터 호감으로 좋은 관계에서 시작했거든요. 연주를 의미 없이 반복하는 것이 싫어 새로운 것을 찾는데 파가니니는 그런 성향에 잘 맞습니다. 파가니니의 작품이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바이올린을 위해서 80개의 곡을 썼다고 해요. 바이올린 협주곡도 6번까지 있고요. 그런 곡들을 연주하면서 앞으로도 관계를 돈독하게 할 예정이에요. 하하."

양인모는 파가니니의 고향인 제노바를 다섯 번가량 방문했다. 그때마다 도시 구석구석을 살폈다. "파가니니의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 있어요. 어느 성당 앞에는 '파가니니가 이곳에 다녀가다'라고 적혀 있기도 하더라고요. 콩쿠르 때 알게 된 현지 청중에게 '파가니니가 당신들에게 어떤 의미냐'라고 물어봤는데 순진무구하게 대단한 자부심을 표하는 자세가 인상적이기도 했죠. 아마 그런 경험들이 무의식적으로 연주에 반영되는 것 같아요. 파가니니가 왜 이 작품을 썼고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죠."

'양인모'하면 꼬리표처럼 따라붙은 파가니니가 부담으로 작용하는 때도 있지 않을까. "다른 레퍼토리는 당연히 늘릴 것인데, '인모니니'는 부담스럽지 않고 감사해요. 제가 파가니니 콩쿠르에서 우승하면서 알려진 것은 사실이니까요"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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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 톺아볼 작곡가로는 독일 낭만파 음악의 대명사 로베르트 슈만(1810~1856)을 꼽았다. "음악을 들었을 때 저와 심리적으로 연관이 많은 것 같아요. 바이올린 작품이 많지 않은데 집중적으로 공부하고 싶어요."
 
잘 나가는 연주자답게 향후 스케줄도 빠듯하다. 금호아트홀 상주음악가로서 네 차례 공연한 양인모는 15일 금호아트홀에서 '상주음악가 시리즈' 마지막 무대를 펼친다. 바이올리니스트 일리야 그린골츠와 듀오 연주한다.

19일에는 대학로 예술가의집에서 열리는 '제671회 하우스콘서트'에서 피아니스트 박진형과 듀오 무대를 선보인다. 23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코리안 심포니 오케스트라 '러시안 나이트'에서 프로코피예프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을 협연한다. 올해 4월 스위스에서 차진 호흡을 과시한 프랑스 국립 오케스트라와 내년 1월 다시 연주한다.

양인모의 음악 스펙트럼에서 특기할 만한 것은 클래식 외 다른 장르에도 관심이 많다는 점이다. 최근에는 재즈, 일부러 거칠고 낡은 느낌의 사운드로 만든 장르인 '로파이(Lo-Fi)' 등을 많이 듣는다. 음악을 만드는 것에도 관심이 커 작곡도 배우고 있다.

"연주는 해석자의 입장이잖아요. 그러다 보니 저만의 것을 만들고 싶은 생각이 들어 작곡도 하죠. 물론 클래식을 집중적으로 하고 싶지만, 클래식만 하고 싶지는 않아요. 원하는 음악을 찾고 끝까지 유지하며 소신이 확고해지기 위해서는 클래식 외에도 원하는 곡들을 집중적으로 공부하고 싶죠. 대중음악도 할 거냐고요? 네 물론이죠."

올해 양인모의 금호아트홀 4차례 연주를 모두 들은 음악 칼럼니스트인 노승림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은 "매번 연주가 새롭고 그 만큼 노력하는 요즘 보기 드문 아티스트"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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