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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시스 인터뷰] 정성화, 결핍과 맞서다···이번엔 '팬텀'

등록 2018-12-26 07:00:00   최종수정 2018-12-31 09:2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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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K
【서울=뉴시스】 이재훈 기자 = "새로운 역이 얼마나 귀한지 몰라요. 제가 새 캐릭터를 소화할 수 있다고 믿어주시는 분들이 있어 가능한 것이죠."

뮤지컬배우 정성화(43)가 최근 새로 맡은 배역은 뮤지컬 '팬텀'의 주역 '에릭'이다.

내년 2월17일까지 서울 흥인동 충무아트센터 대극장에서 세 번째 시즌을 공연하는 '팬텀'은 프랑스 작가 가스통 르루(1868~1927)이 1910년 펴낸 소설이 원작이다. 영국 작곡가 앤드루 로이드 웨버(70)의 세계 4대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으로 유명한 이 원작을 다르게 해석했다.

에릭은 흉측한 얼굴을 가면으로 가린 채 오페라극장 지하에서 숨어 살아야 하는, 슬픈 운명을 지닌 인물이다. 지난 두 시즌 동안 박효신(37)·박은태(37)·카이(37)·전동석(30) 등 부드럽고 섬세한 성향의 배우가 이 캐릭터를 연기해왔다.
 
반면 정성화는 '영웅'의 '안중근', '레 미제라블'의 '장발장' 등 선이 굵은 캐릭터를 맡아왔고 풍모도 호방하다.

그 역시 "기존 에릭의 이미지는 유약하고, 패셔너블해요. 환상 속 사람 같죠"라고 봤다. "제가 맡은 에릭은 야수 분위기를 풍깁니다. 캐릭터 측면에서는 큰 전환점이죠. 제작사인 EMK뮤지컬컴퍼니가 제게 강력한 믿음이 있지 않았다면 힘든 캐스팅이었죠"라고 짚었다.

"에릭 역 제안이 왔을 때 머뭇거렸어요, 초연과 재연을 거쳐 유약하고, 건드리면 부러질 것 같은 모습으로 에릭이 인식됐는데 저는 덩치가 남산만 하고 건강한 이미지니까요."

하지만 그는 이제는 새로운 도전에 설레며 너스레를 떤다. "초연, 재연 당시 에릭 모습을 기대하고 오실 분들도 있겠죠. 그분들을 만족시키기보다 처음 보시는 분들에게 확실한 만족감을 드리는 것이 제 전략이랍니다. 하하."

정성화는 사실 항상 도전해왔다. 힘들게 구축한 캐릭터들만 맡아도 편하게 갈 법도 한데 쉬지 않았다. 1994년 SBS 공채 3기 개그맨으로 데뷔한 그는 2003년 '아이 러브 유'로 뮤지컬에 입문했다. 지금의 대세 뮤지컬배우가 되기까지 매번 편견에 맞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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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톱스타 조승우(38)와 함께 번갈아 가며 '돈키호테'를 연기한 '맨 오브 라만차'를 통해 '코믹 배우'가 아닌 '정극 배우'로서 입지를 다졌다. 이후 '안중근' '장발장'을 거쳐 '라카지'의 게이 '앨빈', '킹키부츠'의 드래그퀸 '롤라', '레베카'의 어두운 그림자를 안고 사는 귀족 '막심' 등 캐스팅 당시 의외라는 반응을 불식한 배역까지. 넓은 스펙트럼으로 매번 '물음표'를 '느낌표'로 만들어왔다. 그러다 보니 관객도 그가 무슨 역을 맡든 기대가 크다.

그런 정성화가 이번 '팬텀' 속 에릭을 연기하기 위해 중요하게 여긴 요소는 '결핍'이었다. "무엇을 해도 중간밖에 안 된다는 것이 제 결핍이었어요. 개그맨 생활을 할 때도 '넌 무엇을 해도 중간밖에 안 돼'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죠.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서 콤플렉스도 생겼고요. '왜 난 성공하지 못할까'라는 답답함이 있었습니다."
 
정성화는 그런 답답한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몸부림을 친다고 털어놓았다. 일상에서 서글서글하고, 종종 개구쟁이 같은 모습도 보이는 그가 연기를 위해 누구보다 섬세하고 철저하게 연구한다는 사실은 업계 사람이라면 다 안다.

'팬텀'의 에릭이 가면을 쓰고 있어 그의 구체적인 감정이 얼굴에 드러나지 않자 행동과 언어를 더 구체적으로 만든 것이 보기다. "에릭은 오페라에 미쳐 있는 사람이라 그런 태도를 표현하려고 애썼죠. 성악가처럼 항상 턱이 올라가고, 어깨를 쫙 펴서 바른 자세를 유지하려고 했습니다. 가면이나 달라진 얼굴로 자신의 본 모습을 감추고 다니는 캐릭터들을 연구하기도 했죠. '조커'나 '웃는남자' 등이요."

정성화는 이번 '팬텀'으로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지하 세계가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라고 강조했다. "사회적으로 괴물을 많이 만들어내는 것은 그의 마음을 키워주지 않아서죠. 마음이 삐뚤삐뚤하게 자라면 가지를 쳐줘야 하는데 사회적으로 이를 소홀하면 괴물을 만들어낼 가능성이 커지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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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연 때부터 '팬텀'의 헤로인 '크리스틴 다에' 역을 맡은 소프라노 김순영(38)을 '크리스틴 장인'으로 표현한 정성화는 '안중근 장인'으로 통한다. 내년 3월9일부터 4월21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공연하는 '영웅' 10주년 공연에서 다시 안중근을 맡는다. 이제 '영웅'은 정성화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작품이 됐다.

그러나 정성화는 새로운 인물에 도전하는 것보다 연기했던 캐릭터를 다시 맡는 것이 더 어렵다고 했다. "이미 했던 것을 새것처럼 보여주는 것이 훨씬 더 어려워요"라는 얘기다. "했던 캐릭터는 진부함을 극복해야 하거든요. 특히 이번 ‘영웅’은 안중근의 집합체 같은 것을 보여줘야 하죠. '했던 배역이니까 연습을 안 해도 되잖아?'라는 말을 싫어해요. 더 나은 것을 찾기 위해 더 연습해야죠."

뮤지컬배우로 데뷔한 지 어느덧 15주년. 지난해 말부터 '광화문연가'를 시작으로 '킹키부츠' '웃는남자' 이번에 '팬텀'까지 정성화는 쉬지 않고 달려왔다. 2014년 첫 딸을 얻은 정성화는 아내가 지난 9월 쌍둥이 남매를 낳아 다둥이 아빠가 됐다.

"올해 공연이 너무 많아 순식간에 지나갔어요. 쌍둥이를 얻는 등 가정사도 많았죠. 첫 아이가 유치원에 가서 아빠로서 할 일도 많고요. 이런 생활 속에서 관객에게 좀 더 좋은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건강이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또 하나 중요하게 여기게 된 것은 '정성화다움에 대한 고민'이다. "제가 자존심이 세거나 자존감이 높은 편이 아니에요. 아직도 중간이라는 것을 안 들키려고 애쓰죠. 에릭처럼 일종의 다른 가면을 쓰는 것이에요. 어렸을 때부터 만들어진 것(트라우마)은 극복하기 힘들더라고요. 이제 정말 만족할 만한 공연을 하고 싶어요. 지금까지 그런 공연을 안 해왔다는 얘기가 아니에요. '어떻게 남들에게 보일까'를 의식한 경우가 많았죠. 저 자신도 만족할 공연을 위해 한 걸음 한 걸음 더 나아가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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