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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째 금속 조각 엄태정 "쇠는 존경의 대상이었다"

등록 2019-01-21 16:47:00   최종수정 2019-01-28 10: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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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추상조각 1세대...인간과 물질 관계 성찰 작업

22일부터 아라리오갤러리 서울- 천안서 동시 개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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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한국 추상조각 거장 엄태정 작가가 아라리오갤러리 서울과 천안에서 동시에 개인전을 연다.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기자 = 이 조각은 요즘 유행어인 '낄끼빠빠(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져라)'의 완벽한 미학이다.
 
 한국 추상조각 1세대 엄태정(81)의 작품은 '단순한 것이 아름답다'는 것을 명료하게 보여준다. 더 이상의 말은 필요 없게 만든다.

형태의 본질을 추구하는 조각가로 50년째, 금속의 물질에 헌신했다. 1960년대와 70년대 철과 동을 사용한 금속 조각으로 한국 추상 조각 1세대로 입지를 굳혔다. 세상의 모든 사물들에 대한 경외감은 '일체의 조각적 수사'를 빼게 했다.

'현대조각의 아버지' 콘스탄틴 브랑쿠시에 영향 받았다.  '형이하(形而下)의 물질적 한계를 극복하고 싶었다. 화려하거나 시각적으로 매료될 만한 것들을 기꺼이 내려놓은 브랑쿠시처럼  고유한 물성을 파고들면서 인간과 물질의 관계를 성찰해왔다.

“나는 쇠의 물성에 대한 경외감을 갖고 있다. 집안이 쇠를 다루는 일을 했고 어려서부터 철사를 갖고 놀았다. 내가 쇠를 선택했다고 생각했는데 건방진 생각이었다. 돌아보니 쇠가 나를 불렀다. 쇠는 언제나 내게 극복의 대상이 아닌 존경의 대상이었다.”

서울대학교 재학 중이던 1960년대 초반 철의 물질성에 매료된 이후 지금까지도 금속 조각을 고수하며 재료와 물질을 탐구해오고 있다. 

1967년 그의 대표적 철 조각 '절규'로 국전에서 국무총리상을 수상하며 미술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후 1970년대 재료 내외부의 상반된 색과 질감을 두드러지게 보여주는 구리 조각들을 발표했다.

1980-90년대에는 '천지인' 연작과 같이 수직 구조가 강화된 구리 조각들의 추상적 형태 안에 하늘과 땅과 인간과 같은 동양 사상을, 1990년대 '청동-기-시대' 연작에는 우리나라 전통 목가구나 대들보 등의 형상들을 반영했다.

2000년대부터 작가는 알루미늄 판과 철 프레임을 주재료로 조형성에 더욱 집중한 작품들을 발표하였는데, 수직과 수평, 면과 선의 조형성과 은빛과 검정의 색채 조화를 통해 음과 양, 시간과 공간 등 서로 다른 요소들 간의 공존과 어울림을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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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엄태정,대지의 침묵 A Silence of the Earth, 2004, aluminum, steel, 130x100x120cm

“내 작업은 물질이다. 조각은 물질이다. 예술이 형성되려면 물질이 있어야 하기에, 예술이 바로 물질이라 할 수 있다… 어찌 보면 나는 물질 찬양주의자라고까지 할 수 있다.” 
  
그가 지난 50여년간 철, 구리, 알루미늄과 같은 금속 재료와 대면하며 '조각이란 무엇인가'로 치열하게 대결했던 작품들을 서울과 천안에서 동시에 선보인다.

아라리오갤러리는 오는 22일부터 '두 개의 날개와 낯선 자'를 타이틀로 한 엄태정 개인전을 펼친다.

2017~2018년 제작된 대규모 알루미늄 신작과 지난 50여년 간 추상 조각가로서 천착해 온 다양한 금속 조각부터 평면회화까지 50여 점을 전시한다. 

서울과 천안에서 동시에 선보여 금속의 물성을 경외하며 초대하는 수행적 작업 과정을 통해 치유의 공간을 추구해온 그의 작업세계를 다각도에서 살피는 계기를 제공한다.

아라리오갤러리는 50여 년을 아우르는 작가의 작품세계를 조망하기 위해 천안에 조각 작품들을, 서울I삼청에 평면 작품들을 중점적으로 나누어 배치하고, 이들간의 긴밀한 관계성을 조명한다.

아라리오갤러리 천안 4층 전시장에서는 '기-69-1'(1969), '청동-기-시대'(1997) 연작과, 철과 구리 등을 이용해 1969년부터 2010년 사이 제작된 주요 작품들이 전시됐다.  3층 전시장에서는 작가가 2000년대 이후 천착해온, 알루미늄 대형 신작들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알루미늄은 중성적인 재료이자 물질로서, 작가가 작업을 통해 다다르고자 하는 통합의 세계, 즉 만다라(Mandala)에 맞닿아 있는 재료기도 하다.

각기 4계절을 나타내는 이 네 개의 작품들은 전시장을 모든 계절을 품은 하나의 조각 정원으로 변모시킨다. ‘대상(낯선 자)로서의 벽체와 나’와의 관계를 상정하고 있는 '고요한 벽체와 나'(2018)는 정갈하게 연마된 알루미늄 패널의 은빛 면, 사각 철 기둥의 검정색 선, 즉 서로 다른 것들이 결합된 구조를 통해 타자와 내가 공존하며 치유 받는 시공간을 이야기한다.

전시의 제목이기도 한 신작 '두 개의 날개와 낯선 자'(2018)는 서 있는 두 장의 대칭된 알루미늄 패널을 검은 선형 철 파이프가 붙들고 있는 작품으로, 이 역시 소외된 낯선 자를 포용하고자 하는 그의 철학을 보여준다.

이외에도 '어느 평화로운 공간'(2018), '엄숙한 장소'(2018)까지 주변과 소통하는 엄태정의 조각들은 관람객들을 작가가 마련해놓은 시공간 속으로 끌어들이며 새로운 우주를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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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모퉁이집 No.17_A The House on the Corner No.17_A, 1999, copper, 22x22x22(h)cm

아라리오갤러러 서울I삼청에서는 작가가 2000년대부터 꾸준히 지속해 온 평면 작품들이 전시된다. 문자나 사람의 손짓과 몸짓을 연상시키는 유쾌한 모습을 하고 있지만, 흰 종이 위에 잉크 펜을 이용해 무수히 선을 수행적으로 반복해 그려 완성된 잉크 페인팅 '틈'(2000-2005) 연작이 1층에 소개됐다.

 지하 전시장에서는 '천·지·인'(2018), '무한주-만다라'(2018), '하늘도 둥글고, 땅도 둥글고, 사람도 둥글고'(2018)등 색 띠 평면 작업을 만날 수 있다.

드로잉들과 마찬가지로 무수한 잉크 선들을 겹겹이 쌓고, 1cm간격으로 색 띠들을 교차시키고, 또 칠 하는 방식은 금속을 두드리고 용접하고 연마하는 제작 기법과도 닮아 있다.

그는 "조각이야말로 우주며 하늘이며 땅이며 산이며 인간이고 강일 수도 있고 꽃이 피고 새가 우는 일로 모두에 열려 있는 것이어야 한다"는 신념이다. 

 '조각이 초대하고 쇠가 부른 초대객'으로 자신을 겸허하게 낮추는 작가를 향해 미술평론가 심상용은 "이는 미학적이라기보다는 윤리적인 태도와 무관하지 않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의 조각론은 세계를 향해 열려 있는 것을 넘어 계시의 초대로까지 성큼 나아간다"며 "물질과 물질의 근원인 비물질적 본질 사이에 놓여 있는, 어떤 형이상학적 도약의 필요성에 바쳐진 진지한 헌신의 한 형식임이 분명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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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엄태정, 두 개의 날개와 낯선 자 A Stranger Holding Two Wings, 2018, aluminum, steel, 92x168x240(h)cm


엄태정 작가는 1938년 경북 문경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를 졸업하고 영국 세인트 마틴스에서 수학했다. 독일 베를린 예술대학 연구교수를 거쳐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 교수를 역임했다.

1967년 국전 국무총리상, 1971년 한국미술대상전 최우수상, 2012년 이미륵 상 등을 수상했다. 광주 상공회의소 화랑 개인전을 시작으로 상파울로 비엔날레, 런던 우드스탁 갤러리, 베를린 게오르그 콜베 뮤지엄, 서울 성곡미술관 개인전 외 다수의 국내외 전시에 참여하였다. 2004년부터 현재까지 서울대학교 명예교수이며 2013년부터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서울 전시는 2월 24일까지. 천안 전시는 5월 12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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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엄태정 개인전 <두 개의 날개와 낯선자> Installation view at Arario Gallery Cheonan,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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