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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종 문화소통]우리 조상국, 어느나라인가···은력 발자취 ‘섣달’

등록 2019-01-29 06:01:00   최종수정 2019-01-29 09: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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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우리말에 남아있는 은력(殷曆)의 자취. 두시언해와 표준국어대사전 등에선 ‘설의 달’인 ‘섣달’ 납월을 음력 1월이 아닌 12월로 기재함.
【서울=뉴시스】 박대종의 ‘문화소통’

“해가 가고 달이 가고”라는 말이 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2019년 1월29일 현재, 분명 2018년 한 해는 지나갔고 새해가 시작한 지도 어느덧 4주가 지난 시점이다. 그런데 음력으로는 새해가 아직 오지 않았다. 신정에 상대하여 구정이라 부르는, 60갑자로 기해년 황금돼지해 진짜 설날 1월 1일은 2월 5일이다. 이런 의식의 차이는 역법이 다른 때문이다.

민족 최대의 명절 ‘설날’을 1481년 간행 ‘두시언해’ 권20에서도 똑같이 ‘설날’이라 했다. 다만, ‘~의’를 뜻하는 사이시옷을 중간에 넣어 ‘섨날←설ㅅ날’이라 적시했다. 이처럼 ‘설의 날’인 섨날, 곧 설날은 다른 말로 정월 초하루다. 정월은 당연히 음력 1월이고.

우리말에는 ‘설의 날’인 ‘설날’ 뿐 아니라 ‘설의 달’인 ‘섨달’도 존재한다. 그런데 ‘섨달’의 발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밟다’를 발음할 때 ‘ㄹ’을 탈락시키고 ‘밥따’로 소리하듯, ‘섨달’ 또한 ‘ㄹ’을 탈락시키고 ‘섯딸’이라 발음할 수 있다. 오늘의 한글맞춤법과 달리 속칭 ‘아래아(•)’를 썼고 소리 나는 대로 표기했던 옛날에는 두시언해, 구급방언해(1466), 구급간이방(1489), 역어유해(1690) 등에서처럼 ‘섨달’을 ‘섯ㄷ•ㄹ(→섯달)’로 기재했다.

그러다가 받침 ㅅ은 ㄷ과 같은 발음이어서 동국신속삼강행실도(1617)에서는 ‘섯달’을 ‘섣ㄷ•ㄹ’로 기록했다. 그 후 일제 치하 때 ‘하늘아(•)’자가 삭제된 이래 지금은 ‘섣달’이란 표기로 굳어졌다. <사진>의 표준국어대사전 ‘섣달’ 항목에선 그 변천과정을 간략히 정리해놓았다.

그런데 표준국어대사전의 설명에 매우 이상한 점이 있다. 설의 달인 ‘섣달’은 설(음력 1월 1일)이 들어있는 달이기 때문에 음력 1월이어야 사리에 맞다. 하지만 사전에서는 ‘설의 달’을 뜻하는 ‘섣달’을 음력 1월이 아닌 ‘음력 12월’로 정의하고 있다. 이는 우리의 현실 상황과 맞지 않는 대목이라 혼동이 온다. 표준국어대사전의 그러한 정의는 오기가 아니며 조상들의 옛 기록에서 근거한 것이다. 섣달은 ‘납월(臘月)’이라고도 하는데, <사진>의 두시언해 권10, 45장 앞면에서도 분명히 음력 12월 납월을 ‘섯달’이라 기록하였다. 섨달이 음력 1월이 아니라 12월이라는 이러한 기록들은 우리에게 음력 1월의 구정(舊正) 이전에 음력 12월을 정월로 삼았던 우리 민족만의 구구정(舊舊正), 곧 본정(本正)이 있었음을 알려준다. 고대 은력(殷曆) 사용의 명확한 자취인 것이다.

진시황의 진나라 이전, 고대에는 여섯 역법이 있었다. 전욱력, 황제력, 하력, 은력, 주력, 노력(魯曆)이 그것이다. 그런데 이들 역법은 1년의 시작 달인 정월이 달랐다. 하나라의 하력은 오늘날처럼 음력 1월을 정월로 삼았지만, 은나라는 음력 12월을 정월이라 정했고, 주나라의 주력과 황제력 및 노력에서는 음력 11월을 정월로 삼았다. BC222년 진나라의 공식 역법으로 지정돼 BC104년 한나라 무제 이전까지 사용된 전욱력은 음력 10월을 정월로 하였다.

이 여섯 중에서 음력 12월을 한 해의 첫 달이자 설이 있는 달인 정월로 정한 것은 오직 은력뿐이다. 이와 같은 은력을 조상들이 오랫동안 사용했기 때문에, 한 무제의 태초력 공포 이후 그걸 좇아 음력 1월 1일을 새로운 설날로 지내왔음에도 여전히 후손들의 무의식 속에 남아 사전에서 ‘섣달’을 음력 12월이라 기재하고 있는 것이다. 은력이야말로 우리 민족만의 독특한 달력 문화였다. 은나라의 후예인 독립국 기자조선과 부여에서의 은력 사용 관련 이야기는 2018년 12월 25일자 뉴시스 “세종대왕, 은나라가 각별했을 것이다···왜?”와 2019년 1월 8일자 “기자(箕子)가 동북으로 간 까닭은, 뿌리로의 복귀” 기사를 참고하기 바란다.

믿음은 인간의 의식을 통제한다. 믿음의 차이는 의식의 차이를 낳고, 의식의 차이는 곧 문화의 차이이다. 조상들과 현대의 우리들 간에 벌어진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고 소통하기 위해선 조상들의 믿음과 의식 관념에 대한 이해와 아울러 바른 역사 정립이 필요하다. 

대종언어연구소 소장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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