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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종 문화소통]잊지 말으쇼서···용비어천가와 현조(玄鳥)의 송시

등록 2019-02-12 06:01:00   최종수정 2019-02-18 10: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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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왼쪽은 은대 말기 ‘玄鳥婦壺(현조부호)’ 명문, 오른쪽은 ‘용비어천가’ 최항의 발문에 나오는 “玄鳥之頌(현조지송)”
【서울=뉴시스】 박대종의 ‘문화소통’

조상국에 대해 우리가 잊은 기억들이 있다. 1880년대에 발견된 길림성 집안현의 광개토호태왕 비문은 그 기억들에 대한 중요한 단서이다. “아! 옛적 시조 추모(주몽)왕은... 북부여에서 나왔으며, 천제(天帝)의 아들이고 어머니는 하백의 따님이시다. 알을 가르고 세상에 내려오시니, 태어나면서부터 성스러움이 있었다.”

그 거대한 비석을 세운 고구려 제20대 장수왕은 자기가 천제=천자의 자손임을 알고 있었다. 이는 고구려의 조상국인 부여가 천자국이었음을 의미한다. 주몽의 아버지는 BC58년 오룡거를 타고 내려와 부여를 다스린 해모수였다. 부여는 BC 2세기경부터 494년까지 북만주지역에 존속했던 우리 민족의 나라로, 삼국지 동이전에 의하면, 당시 부여인들은 스스로를 옛적에 다른 곳에서 옮겨온 유이민의 후예라 하였다.

부여는 갑골점의 왕국 은나라처럼 소의 발굽으로 길흉을 점쳤다. 그리고 은나라의 풍습대로 왕이 죽으면 많은 사람들을 함께 묻는 순장을 했으며, 주(周)·진(秦)·한(漢)나라와는 달리 독립적으로 음력 12월을 정월로 삼는 은력(殷曆: 은나라 역법)을 고수했다. 이는 부여가 은나라의 후예인 독립국 기자조선의 뒤를 이은 나라임을 증명한다.

천자국 은나라의 제31대 제신(帝辛) 왕은 자기 제후국이었던 주나라의 무왕에게 BC1018년 2월 22일 목야대전에서 패해 천자국의 자리를 내준다. 하지만 제신의 숙부이자 제29대 천자인 ‘문정(文丁)’의 아들이었던 기자(箕子)는 생각이 달랐다. “나는 결코 주나라의 신하가 되지 않겠다”는 굳은 결심과 또 무왕에게 하늘의 도인 ‘홍범구주’를 가르쳐준 스승의 자격으로, 천자국 은나라와 단군조선의 뒤를 이은 독립국 ‘후조선’을 건국한다. 

그러한 기자조선의 천제국 정신과 예법은 부여인들에게도 계속 이어졌다. BC194년 제41대 기준(箕準) 왕 때 위만에게 패하여, 준왕을 따라 마한 지역으로 남하하지 못한 일부 왕족과 백성들은 분루를 삼키고 동쪽으로 이주하여 ‘부여’를 건국한 뒤에도, 은나라의 정월(음력12월)에 천자가 치르는 제천행사 ‘영고(迎鼓: 북맞이)’를 거행했다. 정월에 부여가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의식을 거행했음은 매우 의미심장한 일이다. ‘예기집설대전(禮記集說大全)’의 기록처럼 동아시아의 지엄한 옛 법에서는 오직 천자만이 하늘에 제사지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제후들은 경내 산천에만 제사할 수 있을 뿐 하늘에는 제사할 수 없었다.

이와 같은 역사를 세종과 그 신하들도 잘 알고 있었다. 세종대왕은 기자조선과 그 조상국인 은나라=은상을 각별히 여겼다. 나아가 은상의 시조에 대해서도 각별했을 것임은 물론이다. “뿌리 깊은 나무, 바람에 아니뮐쌔”로 유명한 ‘용비어천가’는 조선왕조를 있게 한 세종 이전 육룡(여섯 조상, 곧 목조·익조·도조·환조·태조·태종)들의 수고하신 행적을 잊지 않기 위해 지은 시가이다. <사진>에서처럼 용비어천가 맨 끝 ‘발문’ 말미에서 훈민정음 8학사 중 한 명인 최항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며 마침표를 찍는다. “그런즉 이 용비어천가의 제작은 진실로 당연히 하늘이 지은 ‘현조(玄鳥)의 송시’와 함께 전해져 민멸되지 않을 것입니다.”

이는 조선이 있게 된 것은 육룡의 덕분이요, 더 거슬러 올라가면 ‘기자조선’을 있게 한 은상의 시조 ‘설(契)’을 낳은 ‘현조’ 때문이니, 그와 관련 “하늘이 현조에게 세상에 내려가 상나라 조상을 낳으라고 명하였다(天命玄鳥, 降而生商)”로 시작하는 시경 상송(商頌)의 ‘현조’ 편 또한 용비어천가와 더불어 영원히 잊지 말으쇼서라는 뜻이다.

<사진>의 은대 말기 ‘玄鳥婦壺(현조부호)’ 명문은 시경의 현조 송시를 실물로써 뒷받침하는 출토문헌 기록으로, 고구려 시조의 탄생 신화와 직통하는 은상 민족의 ‘새(鳥) 토템 문화’를 보여준다. 갑골문의 대가 곽말약과 호후선은 현조를 제비에서 나아가 봉황으로 보았다.

대종언어연구소 소장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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