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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의 숨은 영웅, 미 軍馬 ‘레클리스’를 아시나요

등록 2019-03-17 05: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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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사 계급장 단 유일한 미국 영웅말

‘퍼플하트’ 훈장 대통령 표창 등 수여

‘말의 도시’ 켄터키주 렉싱턴서 기념 동상 건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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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렉싱턴=뉴시스] 우은식 기자 = 미국 켄터키주 렉싱턴 '호스파크'에 있는 한국전 참전 영웅말 레클리스의 동상의 모습. 2019.03.14

 
【서울=뉴시스】우은식 기자 = 지난해 5월12일 미국 동부지역 켄터키주 렉싱턴에 위치한 호스 파크에서는 ‘레클리스’라는 이름의 말 동상 제막식이 열렸다.

렉싱턴 호스 파크에는 영화로도 잘 알려진 1973년 3대 경마대회를 석권해 ‘대삼관’을 차지한 전설적인 경주마 ‘세크리테리엇’과 1920년대 활약한 20세기 최고의 경주마 ‘맨오워’의 동상이 있다.

그런데 레클리스는 어떤 업적으로 세계적인 경마대회로 유명한 ‘켄터키 더비’의 고장인 이곳 호스파크에 전설적인 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을까.

레클리스는 놀랍게도 1950년대 초반에 지금은 없어진 서울 성수동 서울경마장에서 활약하던 제주산 ‘아침해’라는 말이었다.

이 말은 1950년대와 60년대만 해도 미국에서는 꽤나 유명한 말이었다. 레클리스는 미 해병대 소속으로 한국전에 참전해 미 역사상 유일하게 정식으로 하사 진급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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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렉싱턴=뉴시스] 우은식 기자 = 미국 켄터키주 렉싱턴 '호스파크'에 있는 한국전 참전 영웅말 레클리스의 동상의 모습. 2019.03.14
이날 행사는 이 말이 숨을 거둔지 50주년을 맞아 거행됐으며, 한국전 참전용사 4명이 함께 자리해 이 말의 업적을 기렸다. 

당시 CNN과 켄터키 지역언론 보도에 따르면 제주에서 태어나 경주용으로 서울경마장에서 활약하던 ‘아침해’는 1952년 한국 전쟁 당시 미 해병대 에릭 피더슨 중위에게 250달러(현재 가치로 400만원)에 팔렸다. 당시 이 말을 판 한국인은 전쟁속에 지뢰를 밟아 다리를 잃은 여동생에게 의족을 해주기 위해 돈이 필요했던 젊은 청년이었다.

‘아침해’는 미 해병 1사단 5연대 대전차 부대에 탄약수송병으로 훈련받았다. 미 해병들이 그의 친구가 돼 주었다. 친근감이 깊어지면서 ‘아침해’는 동료 해병들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갔고,동료들은 그의 용감함을 빗대 ‘레클리스(Reckless)'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기동성이 뛰어난 레클리스는 산악지형에 통신선을 설치하는 임무에 있어서 일반 병사 12명의 몫을 해내기도 했다. 

전장에 투입된 레클리스는 한국전 막바지인 1953년 3월 미군과 중공군의 마지막 전투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1000명의 미군이 사망하고, 2000명의 중공군이 전사하는 등 치열했던 이 전투에서 레클리스는 하루 동안 51개의 전장을 다니며 대전차 무반동포의 포탄를 실어 나르며 맹활약했다.

‘베가스 고지 전투(Battle for outout Vegas)’로 알려진 5일간의 이 전투에서 레클리스는 4000kg이 넘는 탄약을 386회나 실어 날랐다. 총 56km에 이르는 가파른 산길을 오르내린 것이다.

레클리스는 전장에서 포탄 파편에 왼쪽 눈 위를 다치고, 왼쪽 옆구리에 찢어지는 등 2차례 부상을 입었지만 치료를 받고 다시 임무에 복귀해 오히려 부상당한 병사들을 안전지대로 후송하는 임무를 수행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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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한국전 당시인 1952년 미 해병대 소속 탄약 운송말 '레클리스'에 대한 병장 진급식이 열렸다. 사진은 CNN이 지난 2018년5월15일 보도한 내용을 캡쳐한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레클리스는 이같은 모든 임무를 포탄이 쏟아지는 가운데 진행했고 말을 조정하는 기수 없이 스스로 움직였다는 점이다.

레클리스는 철조망 같은 장애물을 피하고, 포탄이 터지면 바닥에 엎드리도록 훈련 받아왔다. 해병들은 레클리스를 지켜주기 위해 자신의 방탄복을 사용해 보호해주기도 했다.

그의 업적은 2014년 발간된 ‘미국 전쟁영웅 말, 레클리스 하사’라는 책에서 자세히 소개됐다. 이 책은 레클리스 하사 기념재단 이사장인 로빈 허턴이 펴냈다.

한국전 참전용사인 하워드 E. 워들리는 “레클리스는 우리의 탄약을 지원해주는 생명선이었다”며 “엄청난 소음과 진동이 요동치는 전장에서 그는 놀라지 않고 견뎌냈다. 그러면서도 무사했던 것을 보면 나는 수호천사가 레클레스를 타고 있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허턴 이사장은 저서에서 “레클리스는 식탐이 대단했다. 레클리스는 모닝 커피와 함께 계란 스크램블과 팬 케이크를 즐겼고, 초콜릿 바, 사탕, 코카콜라도 마셨다. 심지어 맥주도 마셨다”며 “저녁에는 군인들 숙소 텐트 안에서 잠을 자는 등 동료들의 사랑을 받았다”고 술회했다.

1954년 한국전이 끝난 후 레클리스는 미국으로 이송이 추진됐고 수백명의 환영 인파속에 샌프란시스코로 들어왔다. 이 말은 한국전 당시 병장으로 진급한 이래 1959년 미 해병대 하사로 정식 진급했다.

당시 미 해병대 1700명이 도열해 기념 행진을 진행했고, 예포 발사를 진행하는 등 진급식이 성대하게 치러졌다. 미 해군 1사단은 이날 ‘레클리스에게 앞으로는 담요 외에 어떤 것도 등에 싣지 않도록 한다‘는 명령을 내리며 업적을 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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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한국전 참전 영웅말 '레클리스'가 미군 병사들에게 탄포를 운반해 전달하고 있다.  사진은 한국전 당시 레클리스의 모습을 담은 기록 사진으로 전쟁역사사이트 '워 히스토리'가 지난해 3월22일 트위터에 공개한 것을 캡쳐한 것이다.
레클리스는 한국과 미국 대통령 표창을 비롯해 전사자나 부상자에게 수여되는 미 ‘퍼플하트’ 훈장 2개, 미 국방부 종군기장, 미 해병대 모범근무장, 미 해군 사령관 표창 2개, 한국전 참전 유엔 훈장, 한국전 참전훈장 4개 등 여러개의 수훈 표창을 받았다. 2016년7월 영국도 전쟁이나 국가안보에 기여한 동물에게 수여하는 ‘디킨 메달’을 레클리스에게 수여했다.

레클리스는 1960년 11월 명예 전역을 하고 캘리포니아주 펜들턴 해군기지에서 여생을 보냈으며, 1마리의 암망아지와 3마리의 수망아지를 낳았으며 1968년 5월 20세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레클리스의 죽음은 당시 미국의 주요 언론에 크게 보도되는 등 전국적 관심을 불러모았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점차 대중들의 관심에서 멀어져갔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전쟁 영웅마 레클리스의 전설이 재조명됐다.

한국전 정전 60주년인 지난 2013년 버지니아주 해병대박물관에 동상이 세워졌고, 2016년 팬들턴 해병기지에도 동상이 제막됐다.

그리고 지난해에는 켄터키주 렉싱턴에서 레클리스 사망 50주년을 맞아 켄터키주 렉싱턴에 있는 호스파크에 3번째 동상이 세워진 것이다. 한국에는 경기도 연천 물 문화 전시관에 레클리스의 업적을 기리는 '군마 아침해 전시코너'가 마련돼 있다.

이날 행사 참석자는 "한국전에 참전하지 않았다면 레클리스는 경주마로 생을 마감했을 것"이라며 "경주마 명예의 전당인 켄터키 호스파크에 동상이 세워진 것은 참전 이전 경주마로서의 자신의 꿈을 이루는 것이 될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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