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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적 퀴어 시점으로 읽기, 보배 '우리는 무지개를 타고'

등록 2019-08-17 06:04:00   최종수정 2019-09-02 09:4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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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남정현 기자 = "한번은 애인과 커플 잠옷을 맞춰 입고서 사진을 찍었다. 이성애자 친구들에게 그 사진을 보여줬더니 눈이 휘둥그래져서는 '보배가 하늘색이네?'라고 물었다. 아무 생각 없이 '응' 하고 대답했는데, 나중에 가서야 그 질문의 뜻을 이해했다. 친구는 내가 하늘색, 애인이 핑크색인 것을 보고 '보배가 남자 역할이네?'라고 물은 것이었다. 문득 그림 하나가 생각난다. 젓가락과 젓가락이 연애를 하는데, 포크와 숟가락 커플이 '너희 중 어느 쪽이 포크야?'라고 묻는 그림이다. 황당해하는 젓가락의 표정이 일품이다. 젓가락 입장에서는 함부로 포크와 동일시하는 게 이상하기도, 기분이 상하기도 할 것이다. 나의 입장에서 타인과 같고 다름을 이야기하는 것은 위험하다. 같다고 보면 다 같고, 다르다고 보면 다 다르다. 그러니 기왕이면 후자 쪽을 중요시해야 하지 않을까."

성소수자 인권 신장에 문학으로의 접근을 택한 단체가 있다. '무지개책갈피'는 국내외 퀴어문학 작품을 아카이빙하고, 리뷰하는 활동을 한다. 퀴어 작가를 위한 창작강좌도 운영하고, '퀴어문학상'을 시상하며, 소설창작모임을 통한 작품집 출간도 돕는다. 퀴어문화축제 참여 등 퀴어문학을 알리고, 퀴어 작가들의 창작을 독려하기 위한 모든 전방위적인 활동을 한다. 비온뒤무지개재단의 기금으로 2015년 창립해 올해로 5년째 퀴어문학과 관련된 다양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이 비영리단체를 만든 사람은 자칭 '퀴어문학 마니아' 보배다.

 보배의 저서 '우리는 무지개를 타고'는 여성이자 퀴어인, 한국 사회에서 소수일 수밖에 없는 정체성을 가진 저자의 한없이 개인적인 고백이다. 그러나 사적인 그 고백을 따라 읽다 보면 어느새 나 역시 그와 비슷한 방식으로 세상을 감각해왔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결국에는, 세상에 고통을 딛고 일어서기 위해 글을 쓰고 읽는 사람이 나뿐만은 아니라는 사실에 위안을 얻게 된다. 소설가 박상영은 "소수자들에게 한없이 가혹한 '연민과 혐오의 세계'를 넘어, 사랑과 연대의 길로 나아가게 만들어줄 마법 같은 책"이라고 정의한다.

1주 중 적게는 10시간, 많게는 60시간까지 무지개책갈피 활동에 쏟아붓는 저자가 생각하는 활동가란 무엇일까. '노동 시간=황금'이라는 등가성을 거부하는 일, 황금으로 환산되지 않는 노동을 '그래도 조금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일을 위해 기꺼이 감수하는 일이다. 연대의 방법까진 모른다고 하더라도, 나 하나의 행동을 고민하는 사람들의 힘으로 사회는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동성애가 좋으면 집에서 해라, 내 눈에만 띄지 않으면 된다"라고 말하는 걸 부끄러워하지 않는 사회에서 성소수자의 인권 신장이 과연 시간만 좀 흐른다고 저절로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일까. 편견과 혐오 때문에 오히려 광장으로 나서게 되는 사람이 없다면, 자신의 존재가 오랫동안 지워져왔다는 사실에 분노하며 찾아 읽거나 쓰는 사람이 없다면, 다시 그 이야기에 감응하고 그 감응을 주변에 나누는 사람이 없다면 변화는 찾아오지 않는다.

 보배는 퀴어(성소수자) 당사자이자 문학을 좋아하는 독자다. 그저 읽고 싶고 알고 싶어서 퀴어문학 정보를 찾고 모으던 대학생 시절의 취미를 계기로 비영리단체까지 만들었다. 보배는 웬만한 이야기는 다 '퀴어하게' 읽을 수 있다고 한다. '전지적 퀴어 시점'을 취하면 어떤 작품이든 '퀴어하게' 읽을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무지개를 타고'에서는 시대와 장르를 가로지르는 전지적 퀴어 시점의 책 이야기가 펼쳐진다. 164쪽, 1만3000원, 아토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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