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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령사회가 온다]젊은층 더내고 은퇴자 덜받는 日…연금 고통분담

등록 2019-09-04 08:00:00   최종수정 2019-09-16 10:4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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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액 감소 가속화 발표에 日고령자 불만 증폭

2004년 제도개혁…보험료율 2017년부터 18.3%

사회적 합의 충분했는지엔 의문…"이해 낮을 것"

고령자에 더오래 일하고 더늦은 연금 수령 요구

연금제도 개선도 늦춰…연금가입연령 연장 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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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뉴시스】임재희 기자= 지난달 28일 일본의 한 텔레비전 뉴스에서 전날 이뤄진 연금 재정 검증 결과에 따라 연령별로 얼마나 연금을 받게 될지 보여주고 있다. 2019.09.04.  [email protected]
【도쿄=뉴시스】임재희 기자 = 뉴시스 창사 18주년 특집 취재를 위해 일본을 찾았던 지난달 27일. 저녁부터 텔레비전 뉴스는 온통 연금 얘기뿐이었다. 후생노동성이 향후 물가와 임금상승률 가정에 따라 연금 수준을 언제까지, 지금보다 얼마나 더 낮춰야 할지 재정 검증 결과를 발표했기 때문이다.

5년마다 이뤄지는 검증이지만 특히 이번엔 노후자금으로 최대 2000만엔(약 2억2736만원)이 더 필요하다는 내용의 일본 금융청 '고령사회의 자산 형성·관리' 보고서가 나온 뒤 첫 결과라 더 관심을 모았다.

발표 내용을 보면 경제가 고성장을 기록하고 고령자가 노동에 참여할 경우 소득대체율은 올해 61.7%에서 2046~2047년까진 정부가 약속한 50% 이상(50.8~51.9%) 수준을 유지하게 된다. 28년 뒤면 연금액이 17% 이상 줄어드는 셈이다.

그런데 한국과 달리 연금 재정을 논하는데 현역 세대가 부담할 보험료 얘기가 안 나왔다. 이는 2004년 연금 개혁으로 현역 세대가 부담할 보험료율을 2017년까지 18.30%로 올리고 이후부턴 고정했기 때문이다.

보험료를 어느 정도까지 인상하되 저출산·고령화 속도에 따라 연금액도 줄여나간다. 한마디로 '현역 세대가 더 낼 테니은퇴 세대도 덜 받으라'는 게 일본 공적연금의 현주소다.

◇日연금 '2층구조'…국민연금 6.5만엔·후생연금 22만엔

일본의 공적연금 제도는 크게 국민연금과 후생연금 2층 구조로 운영된다.

1층엔 20세 이상 전 국민이 60세가 될 때까지 매월 정액 보험료를 내고 정액 급여를 받는 국민연금이 있다. 노후소득보장 체계 기반이란 점에서 우리나라 기초연금과 비교할 수 있지만 보험료를 낸다는 점이 우리와는 다르다. 1942년 노동자 연금보호제도에서 시작한 일본 공적연금에서 국민연금을 이처럼 기초연금화한 건 1985년 일이다.

또 직장인과 공무원 등이 가입해 매월 급여 소득에 따라 보험료를 내는 후생연금이 있다. 연금액 계산법이 다르고 지급 개시 연령이 55세로 빨라 상대적으로 유리했던 공무원연금은 2015년부터 후생연금에 통합됐다.

이 외에 회사원과 공무원 등은 별도로 보험료를 내는 기업연금(3층)에도 가입할 수 있다.

보험료를 내는 가입자 종류는 3가지로 나뉜다.

우선 자영업자 등 국민연금 정액 보험료만 내는 제1호 피보험자가 있다. 현재 이들은 월 1만6900엔(약 19만2000원)을 낸다. 가입기간이 40년이라고 가정하면 65세 이후부터 월 6만5000엔(약 73만9000원)을 돌려받는다.

후생연금에 가입하는 직장인과 공무원 등을 제2호 피보험자라고 부른다. 매월 급여에 정해진 보험료율을 곱한 보험료를 우리나라 국민연금 직장가입자처럼 회사와 절반씩 나눠 부담한다. 40년 가입한 홑벌이 직장인 부부가 후생연금에서 받는 액수는 22만엔(약 251만8000원) 수준이다.

◇보험료 18.3% 고정하고 저출산·고령화 따라 급여액 삭감

한국 국민연금이 지금 세대가 낸 보험료를 국민연금공단에 맡겼다가 은퇴 후 돌려받는 '적립방식'인데 반해, 일본 공적연금은 현역 세대가 낸 보험료로 은퇴 세대에 지급할 연금액을 충당하는 '부과방식'이다. 즉, 연금을 받을 고령자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보험료를 낼 젊은층과 중년층의 부담은 늘어난다는 얘기다.

이에 1985년 국민연금 제도 개정 이후 저출산과 고령화에 대비하기 위해 급여수준을 축소해 온 일본 정부는 재정안정을 목표로 소득대체율을 인하하는 내용으로 연금제도를 개정했다.

고민 끝에 나온 게 2004년 연금 개혁이다.

당시 정부는 일할 때 소득의 50%를 받으려면 후생연금 기준 13.58%(본인·사업주 각 6.79%)였던 보험료율을 25.9%까지 올릴 필요가 있다고 예측했다. 하지만 아무리 단계적으로 올리더라도 12%포인트 이상 인상하는 건 국민이나 기업 모두 불만일 수밖에 없다.

결국 타협점은 그해 10월부터 매년 0.354%씩 올려 2017년 18.30%(본인·사업주 각 9.15%씩)에 고정시켜 보험료를 내는 현역 세대 부담을 일정 수준까지만 늘리기로 했다.

대신 재정 안정화를 꾀하는 차원에서 '거시경제 슬라이드'를 도입했다. 연금액을 물가와 임금 상승분에 따라 지급하되 기대수명 연장으로 연금을 받는 사람이 증가하고 출산율 감소로 보험료를 낼 사람이 줄어들면 그만큼 연금액을 자동 삭감하는 장치다.

보험료율 인상과 거시경제 슬라이드 도입은 재정 안정화를 위해 젊은 세대도 보험료 부담을 늘려갈 테니, 고령 세대도 받는 금액을 줄여달라는 얘기다. 일종의 '고통 분담'인 셈이다.

아울러 기초연금 국고부담 비율을 3분의 1에서 2009년부터 2분의 1로 상향 조정해 정부 부담을 늘려 국가 책임을 강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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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내고 덜 받는' 연금개혁 성공요인은 정치스캔들?

'더 내고 덜 받는' 2004년 연금 개혁 성공 요인을 묻는 말에 나카시마 쿠니오 일본 닛세이기초연구소 주임연구원은 "2004년 연금을 둘러싼 정치권 스캔들이 있었기 때문에 국민들이 연금 개혁 내용에 대해선 많이 이해하지 못한 상태였다"고 떠올렸다.

개혁을 주도했던 당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 총리가 부동산 회사 사원으로 한동안 위장 가입했던 사실이 드러났는가 하면 국민연금 보험료 미납 등 당시 정치권을 둘러싼 연금 스캔들이 도미노처럼 벌어졌다.

나카시마 연구원은 "국민들이 보험료율 인상과 거시경제 슬라이드 도입 등을 이해하는 데 적어도 10년은 걸렸다"며 "일본은 2004년 이전에도 보험료율을 매년 올려왔기 때문에 이를 인지하지 못한 사람도 많았을 텐데 나중에 연금 급부가 줄어들 거란 얘기를 들었다면 굉장히 화를 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제도 개혁 당시 재정 안정화를 위한 보험료율(25.9%)보다 낮은 수준의 인상 방침에도 고이즈미 총리가 이끌던 자민당은 그 해 참의원 선거에서 참패했다.

2004년 연금 개혁은 당시 시점으론 보험료를 더 올리는 방안이었지만 2017년 이후부턴 보험료 동결이란 결과로 이어졌다. 여기에 홑벌이 부부가구 소득대체율이 50% 이하로 내려가기 전까지 일본은 급여나 보험료 부담 방식에 손을 대지 않기로 해 당분간 보험료 개정은 어려운 상태다.

 또 재정이 어려우면 연금액을 줄이자던 '거시경제 슬라이드'는 물가가 오를 때만 적용한다. 이 제도를 도입하고 연금액이 삭감된 건 두 번 밖에 없다. 저출산·고령화는 갈수록 심해지는데 정책 차원에선 소득대체율이 뚝 떨어져 추가로 연금제도를 개혁하거나 물가가 떨어지기만을 바라야 하는 셈이다.

연금액이 지금보다 더 줄어들 거란 이번 정부 발표에 일본 내 반응은 싸늘하다.

나카시마 쿠니오(中嶋邦夫) 닛세이 기초연구소 주임연구원은 "한마디로 경제성장률을 더 높이거나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많은 연금을 받을 수 없다는 얘기"라며 "따라서 고령자가 더 일하고 보험료를 내야 한다는 의미로 사람들이 받아들일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후생노동성은 공적연금 수급 시작 시기를 본인 선택에 따라 70세 이상으로 늦추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령자에겐 일을 더 하고 연금은 늦게 받으라는 얘기다. 수급자 입장에선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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