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 사회일반

[박대종 문화소통]훈민정음 ‘ㆁ(꼭지 이응)’ 소리, 아직 살아있다

등록 2019-09-03 06:02:00   최종수정 2019-09-16 11:00:35
  • 크게
  • 작게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이메일
  • 프린트

박대종의 ‘문화소통’

associate_pic
<사진> 훈민정음 ㆁ(속칭 ‘꼭지이응’) 소리도 아직 살아있다. 해례본의 ‘서ㆁㅔ’는 표기법만 다를 뿐 지금의 ‘성에’와 발음이 같다.

【서울=뉴시스】 세종대왕께서 훈민정음 28자를 창제한 각각의 순간들은 말로 표현키 힘든 감격이자 빛의 순간들이었을 것이다. 그 때는 꼭지 있는 동그라미(ㆁ)와 꼭지 없는 동그라미(ㅇ)가 서로 구별됐다. 세종은 둥근 목구멍을 본떠 목구멍소리의 기본자인 ‘ㅇ’을 만든 후, 혀뿌리가 목구멍(ㅇ)을 막음을 나타내는 짧은 수직선(지사부호)을 더해 어금닛소리 ‘ㆁ’자를 만들었다.

그리고는 ‘어제훈민정음’ 편에서 아음 ‘ㆁ’을 ‘業자의 초성’이라 천명하고, 君虯快業(ㄱㄲㅋㆁ: 군뀨쾌업)이라 노래했다. 지금은 음이 변해 ‘業’을 꼭지 없는 동그라미 초성 ‘업’으로 읽지만, 세종 때의 ‘業’자 발음은 그 초성이 ㆁ(ng)으로 ‘업’과는 달랐다. <사진>에서 보듯, 훈민정음 언해본에 기재된 ‘어제훈민정음’의 ‘ㆁㅓ(御)’자 또한 그 초성이 요즘과 달리 꼭지 있는 동그라미인 ‘ㆁ’이었다. 그 정확한 음가는 무엇이고 아직도 우리말에 살아있을까?

2018년 10월 6일자 뉴시스 “훈민정음 ‘부국정신’ 최초규명”에서 언급한 것처럼, 비록 최세진의 ‘훈몽자회’ 이후 ‘ㅇ’과 ‘ㆁ’의 구분이 교란돼 지금은 ‘ㆁ’ 표기를 하지 않고 있지만 그 음가는 여전히 우리 말소리에 생생히 살아있다. 이는 많은 국어학자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다. 다만 지금의 공교육에서 제대로 알려주지 않고 있을 뿐이다.

‘훈민정음해례’ 3장 뒷면에서는 “어금닛소리의 ‘ㆁ’은 혀뿌리가 목구멍을 막아 소리와 기운이 코로 나온다(牙之ㆁ, 雖舌根閉喉聲氣出鼻)”고 설명했다. 혀뿌리가 목구멍, 즉 입천장 뒤쪽의 연한 부분인 연구개를 막으면 공기는 코로 나오니, ㆁ은 국제음성기호 [ŋ]과 완전 동일한 ‘연구개 비음(velar nasal)’이다. 이 점에서 ‘ㆁ’은 같은 비음이라도 치경구개 비음 ‘ㄴ’ 또는 양순 비음 ‘ㅁ’과는 구별된다. 

지금의 우리들 또한 종성에서의 ‘ㆁ’ 소리는 익숙하고도 명료하다. king[kiŋ]의 ng 소리가 곧 ‘ㆁ’ 소리이기 때문이다. 단지 한글맞춤법에서 king을 우리글로 표기할 때 종성을 ‘ㆁ’이 아닌 꼭지 없는 ‘ㅇ’의 ‘킹’으로 표기하는 바람에 후손들과 세종대왕 간에 의사소통이 명료하게 이루어지지 않고 있을 뿐이다. <사진>의 훈민정음 언해본에서 종성 ‘ㅇ’은 거의 묵음으로 ‘ㆁ’ 소리와는 달랐다. ‘世(솅)’ 밑의 ‘ㅇ’은 묵음이나, ‘宗(조ㆁ)’ 밑의 ‘ㆁ’은 연구개 콧소리다. 당시 ‘世宗’이란 말의 음가는 지금의 표기로 할 때 ‘셰종’과 똑같았다.

세종께서는 깊은 관찰 끝에 훈민정음해례 18장에서 “ㅇ 소리는 경미하고 텅 비어서 종성에 반드시 쓰지 않아도 된다(ㅇ聲淡而虛, 不必用於終)”고 설명하신 후, 훈민정음 언해본에선 한자음에만 종성에 쓰고 ‘월인천강지곡’에선 한자어 토박이어를 막론하고 모두 종성 ‘ㅇ’은 생략했다. 물론, ‘ㆁ[ŋ]’의 경우는 한자어와 비한자어 모두 종성에서 생략치 않았다. 

그렇더라도 초성에서 ‘ㅇ’과 ‘ㆁ’을 생략하는 법은 없었다. 종성 ‘ㆁ’의 음가는 비록 표기를 ‘ㅇ’으로 바꿨을 뿐이지 현대한국어에 당연히 살아있다. 그러면 초성의 경우도 꼭지 ‘ㆁ’의 음가가 현대한국어에 살아있을까? 물론이다. “성에가 낀다”할 때의 ‘성에’ 발음은 세종 때나 지금이나 일절 변함없이 똑같은데, 단지 그 표기법만 다르다.

<사진>에서처럼, 훈민정음해례 24장 ‘用字例(용자례)’ 초성 편에선 지금 우리가 ‘성에’로 적는 것을 ‘서ㆁㅔ’라 표기했다. 그 때의 ‘서’는 어원상 ‘서리’의 ‘서’이다. 문제는 발음할 때 ‘ㆁㅔ’의 초성 ‘ㆁ’이 마치 ‘서’의 종성처럼 들려 우리로 하여금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는 것이다. 후에 표기법마저 ‘성에’로 바뀌어 우리말에 초성 ‘ㆁ’이 사라진 것처럼 보일 뿐이다. 이와 유사한 예로 ‘붕어’가 있다. 그 어원은 鮒魚(부어)인데 ‘붕어’로 발음하는 것은 ‘魚(물고기 어)’의 정음이 ‘御’와 같은 ‘ㆁㅓ’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제명칭시가에서 세종은 ‘君虯快業(ㄱㄲㅋㆁ)’을 요즘 표기법으로 할 때 ‘군규~쾡업’으로 읽었음을 알 수 있다.

대종언어연구소 소장 [email protected]
Copyright © NEWSIS.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이메일
  • 프린트
  • 리플
위클리뉴시스 정기구독 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