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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국악과 현대무용의 새로운 얼굴 '검은 돌: 모래의 기억'

등록 2019-11-03 14:08:08   최종수정 2019-11-11 10: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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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전악-장미의 잔상'(2017)이은 안성수·라예송의 조합 성공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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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무용단 '검은 돌 : 모래의 기억' (사진 = 황승택 제공)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태초에 빛 그리고 움직임이 있으라.

1~3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펼쳐진 국립현대무용단 '검은 돌: 모래의 기억'은 이 명령을 망설임 없이 풀어냈다.

깊고 검은 밤의 용액에 흰색 물감만 떨어뜨린 듯한 무대는 검정과 흰색으로만 갈릴 뿐이었다. 그 안에서 무용수들의 춤사위가 부드럽게 또는 맹렬하게 풀렸다. 

가야금·피리·대금·해금·장구·꽹과리·정주 등 국악기의 음표 무더기에 몸을 실은 무용수들의 동작은 '그림 같다'는 게으른 표현에 '시각적 저항'이었다.

몸통은 강물이 굽이치듯 웨이브를 탔다. 손의 부드러운 곡선은 안성수 국립현대무용단 예술감독의 인장과도 같은 그것이었다.

두 무용수씩 짝을 지어 각자 종과 횡으로 동시에 움직일 때는 무대의 축이 흔들리는 듯한 시각적 착시 현상도 안겼다. 소용돌이치듯 무용수 10여명이 얽히는 장면이 압권이었다. 그러다 한명쯤은 바람에 휩쓸려 가는 것이 아닐까라는 조바심도 들었으니까. 

무용수들의 몸짓을 가만히 거리를 둬서 보니 유장하게 흘러가는 강물의 물살을 탄 돌 또는 모래처럼 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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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마법이 빚어진다. 순간 관객의 마음이 움직인다.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흘러가는가. '검은 돌 : 모래의 기억'의 라예송 작곡가 겸 음악감독은 말했다. "과거로부터 축적된 시간들이 작은 모래에 깊게 담겨 있다. '모래의 기억'은 과거의 시간이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준다"고.

모래는 커다란 돌이 깎이고 깎여서 생긴 자유를 상징하기도 한다. 모래가 더 깎이고 깎이면, 정말 바람을 타고 자유롭게 날아갈 수 있을까. 과거의 기억은 미래의 바람이다.

국악기가 빚어내는 타격감, 율동감에 연주자들이 직접 목소리를 내는 구음까지 더해진다. 그러니까 일종의 제(祭)의 음악처럼 들린다. 넋에게 음식을 바치어 정성을 나타내는 제사처럼, 누군가에게 우리의 마음을 달래달라고 이 음악을 바치고 싶다.

안성수·라예송 조합은 전작 '제전악-장미의 잔상'(2017)에 이어 이번에도 통했다. 두 사람의 작업이 본격화되기 전까지 현대무용에 국악은 사용할 수 없는 음악처럼 느껴졌다. 국악과 현대무용의 새로운 얼굴을 또 봤다. 덕분에 무용에 반응하는 우리의 새로운 마음도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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