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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종 문화소통]‘ㅇ’은 음가가 없다? 최대의 착각

등록 2019-12-11 06:00:00   최종수정 2019-12-11 09:2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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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종의 ‘문화소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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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지난 글들에서 밝힌 것처럼, 훈민정음 ‘ㆁ, ㅿ, ㆆ, ᆞ’ 네 글자의 소리는 아직 우리 말소리에 생생히 살아있다. 그럼에도 그 음운이 17세기 전후로 소멸됐다는 오해와 일제의 ‘언문철자법(1930)’ 이래로 더 이상 쓰이지 않고 있다. 그런데 글자로 쓰이긴 쓰이되, ‘소리’로 인정받지 못하고 홀대받고 있는 글자가 있으니 목구멍소리 ‘ㅇ’이 바로 그것이다.

북한의 ‘조선말대사전(1992)’에서는 초성 ‘ㅇ’을 자음으로 쳐주질 않는다. 그래서 ‘ㅇ’으로 시작하는 ‘어미’라는 말은, 사전 앞쪽에 배열된 18개 자음(ㄱㄴㄷㄹㅁㅂㅅㅈㅊㅋㅌㅍㅎㄲㄸㅃㅆㅉ) 중에는 ‘ㅇ’이 없기 때문에, 뒤쪽에 배열된 21개 모음(ㅏㅑㅓㅕㅗㅛㅜㅠㅡㅣㅐㅒㅔㅖㅚㅟㅢㅘㅝㅙㅞ) 중 ‘ㅓ’ 항목에서 찾아야 한다.

훈민정음학회장인 연규동 연세대학교 교수는 tbs의 한글날 특집 방송 ‘훈민정음 어디까지 아니?’의 5편(2019년 10월11일)에서, “왜 북한사전엔 ‘ㅇ’이 없을까?”라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변했다. “이응은, 사실은 ‘아버지·어머니’ 할 때 ‘ㅇ’은 음가가 없지 않습니까? 우리는 문자가 있으니까 ‘ㅅ’ 다음에 ‘ㅇ’을 넣지만 북한에서는 ‘아버지·어머니’의 ‘ㅇ’은 소리가 없으니까 자음 다 맨 뒤에 ‘ㅇ’이 들어갑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받침의 ‘ㅇ’만 자음이고 ‘아버지·어머니·오빠·언니’할 때의 ‘ㅇ’은 자음이 아닙니다. 근데 이제 관습적으로 써왔던 표기이죠.”

세종께서는 분명히 목구멍에서 나는 소리로 인식하고 동그란 목구멍을 본떠 ‘ㅇ’자를 만들었는데, ‘ㅇ’은 음가가 없고 심지어 자음이 아니라니 이 어찌된 일인가? ‘훈민정음해례’ 편 2장 앞면에선, 오행으로 ‘물’에 해당하는 ‘후음(ㅇ, ㆆ, ㅎ)’에 대해 텅 빈 대나무관에서 나는 피리 소리처럼, “(목구멍이) 텅 비어서 막힘없이 나는 소리로, 마치 물이 맑고 밝아서 막힘없이 통하는 것과 같다(聲虛而通, 如水之虛明而流通也.)”고 밝혔다.

이를 의식해서인지 세종대왕기념사업회 발간 ‘한글글꼴용어사전’(2000)에선 ‘목구멍소리’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ㅇ, ㆆ, ㅎ으로 그 가운데 ㅇ글자를 먼저 만들었다. ㅇ은 소리 없는 글자이다. 제자해에서는 ㅇ소리도 ㆆ, ㅎ과 같이 소리가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목구멍에서 나는 것으로 해석하여 ‘목구멍의 꼴을 본떴다’고 설명하였다.”

이는 사실 ‘ㅇ’은 소리 없는 글자인데 세종대왕이 목구멍에서 나는 소리 있는 것으로 착각했다고 본 정의이다.

하지만 착각은 세종이 아니라 세종대왕기념사업회 등에서 하고 있다. ‘고려대한국어대사전’에서는 목구멍소리를 “목청에서 나오는 소리. 주로 ‘ㅎ’을 말한다.”고 정의했다. ‘ㅎ[h]’ 외엔 목구멍소리 초성 ‘ㅇ’과 ‘ㆆ’에 대한 인식이 전혀 없는 서구 언어학의 영향을 받은 때문이다.

국제음성기호에는 우리말 초성 ‘ㅇ’과 ‘ㆆ’에 해당하는 자음 글자가 없다. 국제음성학회에선 로마자 ‘u’와 ‘o’를 자음이 아닌 모음으로 분류하고 [nu]와 [bo]를 ‘누’와 ‘보’로 읽는다. 그러나 앞에 다른 자음이 붙지 않은 [u]와 [o]는 ‘우’와 ‘오’로 읽는다. 훈민정음은 국제음성기호보다 한 차원 더 높은 음성기호인지라, 우리나라 사람들은 [u]를 ‘ㅇ+ㅜ’, 곧 자음 ‘ㅇ’과 모음 ‘ㅜ’의 결합 소리임을 능히 간파한다.   

영명하신 세종대왕 덕분에 우리 눈에는 [u]가 ‘자음+모음’임이 보이는데, 서구인들은 [u]를 오직 모음으로만 인식한다. 그래서 그들은 ‘우[u]’라는 한글을 보고 모음 ‘ㅜ’에 덧붙은 초성자음 ‘ㅇ’자에 대해 이해를 못한다. 자기들 시각에선 불필요한 글자로 간주하고 ‘null initial(아무 가치=음가 없는 첫글자)’ 또는 ‘zero consonant(零聲母)’라는 잘못된 이름까지 붙였다. 고도의 표음문자를 쓰는 우리가 훈민정음보다 차원 낮은 서양 언어학을 선도하지는 못할망정 그걸 추종하면서 세종을 음운학에 무지한 이로 만들어야 되겠는가? <계속>

대종언어연구소 소장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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