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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종 문화소통]훈민정음 중성 ‘ㅏ’는 ‘아’와 다르다

등록 2019-12-25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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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종의 ‘문화소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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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훈민정음에 사용된 두 가지 방식의 초성 읽기. 해례본(右)에선 ‘ㄱ’을 세종이 정한 정식 명칭 ‘君’으로 표기하고 ‘군’으로 읽었고, 언해본(左)에선 ‘ㄱ’으로 표기하되 편의상 중성 ‘•’를 붙여 ‘ㄱ•’로 읽었다.

[서울=뉴시스]  고래로 우리는 훈민정음 중성 ‘ㅏ’를 읽을 때 초성 ‘ㅇ’을 붙여 ‘아’로 읽어오고 있다. 그렇더라도 엄밀히 말해, 훈민정음 체계에서 중성 ‘ㅏ’는 ‘아’와 다르다.

어떤 점이 다른가? ‘아’는 ‘초성+중성’의 완전한 음(音)이지만, 초성 없는 중성 ‘ㅏ’만으론 입으로 발음할 수도 귀로 들을 수도 없는 아직 음을 이루지 못한 하나의 음소로써의 성(聲)일 뿐이다.

비유해서 말하자면, 단소를 가지고 ‘중(仲: 솔)’ 음을 내기 위해 손가락으로 1공~4공을 막고 입을 취구에 갖다 대되 아직 입김을 불지 않아 소리가 나지 않는 준비 상태가 바로 ‘ㅇ’ 없는 중성 ‘ㅏ’이다. 그 상태에서 김을 불어 넣어 속이 빈 단소에서 나오는 ‘소리’가 바로 ‘ㅇ’이 붙은 ‘아’이다. 텅 빈 피리에서 나는 진동 소리처럼, 텅 빈 목구멍에서 다른 조음기관에 의한 막힘이 없이 나는 소리가 바로 목구멍소리 진동음 ‘ㅇ’이다. 

훈민정음 해례본 맨 앞 ‘어제훈민정음’ 편에서 세종대왕은 초성·중성·종성을 언급한 뒤 표음문자인 훈민정음에서의 ‘음의 법칙’에 대해 다음과 같이 천명했다. “무릇 훈민정음 글자는 반드시 초성·중성·종성을 합쳐 써야만 하나의 음을 이룬다(凡字必合而成音。)”

이 법칙에 의하면, 초성 없는 중성만으로는 하나의 음을 이룰 수 없으며, 그 역도 성립하니, ‘성(聲)’은 ‘음(音)’을 이루는 ‘음소’이다.

‘초성’, ‘중성’, ‘종성’은 세종대왕이 지은 용어이다. 이 중 ‘초성’은 <사진>의 어제훈민정음 편 “ㄱ。牙音。如君字初發聲(ㄱ은 아음이니, 君자 처음 펴나는 소리 같으니라)”에서 증명되듯, ‘초발성(初發聲)’의 준말이다. ‘중성’과 ‘종성’은 준말이 아니다. ‘초발성’처럼 ‘發(필 발)’자가 들어가지 않는다. 초성에만 ‘발’자가 들어가는 이유는, ‘발생(發生)’이란 것이 처음(初)으로 생기는 것이고 또 해례본의 설명처럼 초성은 ‘발동(發動)’의 뜻이 있기 때문이다. 중성은 초성의 발생을 이어받아 종성에 이어 붙여 음을 완성시키는 기능을 한다.

우리가 ‘ㅏ·ㅑ·ㅓ·ㅕ’ 등 중성자를 읽을 때 편의상 목구멍소리 초성 ‘ㅇ’자를 붙여 읽는 것은 모든 중성이 열린 목구멍 상태이기 때문이다. ‘ㅇ’은 뻥 뚫린 동그란 목구멍의 모습을 상형한 글자로(목구멍을 막은 것은 아음 ‘ㆁ[ŋ]’), 우리말에서 모든 후음은 성문개방음이다. 모든 중성은 비록 목구멍의 열림 정도에 차이가 있고 그 자체만으론 소리를 못 낼지라도 성문이 열려 있다는 점에서 목구멍소리와 같고, 여러 초성 중에서 ‘ㅇ·ㆆ’과 서로 긴밀하다.

이처럼 중성은 물론, 초성 글자만으로써는 사람들이 그 글자를 읽기가 곤란하다. 그래서 세종께서는 중국의 36자모처럼 훈민정음 23개 초성자에 대해 정식 명칭을 부여했다. 이에 대해선 2018년 10월6일자 ‘세종대왕, 자주·애민뿐 아니다…훈민정음 부국정신 최초규명’과 2019년 10월8일자 ‘훈민정음 초성 노랫말에 담긴 깊은 뜻’ 편을 참고하기 바란다.

<사진>의 오른쪽에서처럼 ‘훈민정음해례’ 편 11-1에 쓰인 ‘君(군)·斗(두)·彆(별)·即(즉)·戌(슐)’ 등은 초성에 붙인 정식 명칭으로써 ‘ㄱ·ㄷ·ㅂ·ㅈ·ㅅ’자를 나타내고 읽은 예이다. 반면, <사진>의 왼쪽에서처럼 훈민정음 언해본에 쓰인 ‘ㄱ·ㄷ·ㅂ·ㅈ·ㅅ’ 등의 모든 초성은 주격조사로 일괄 ‘난’이 쓰인 것으로 보아, 편의상 제1번 중성자인 ‘•’를 붙여 읽은 음성기호적 독음 예이다. 중성 ‘ㅣ’를 붙일 경우엔, 당시 ‘ㅣ’도 주격조사였으므로 ‘난’과 중복돼 곤란하다.

성명 외에 호(號)도 있듯, 이처럼 초성에 대한 정식 명칭 외에 편의상 중성 ‘•’를 붙여 읽은 두 가지 독음 방식은, 로마자에서도 마찬가지다. ‘l·m·n’은 ‘엘·엠·엔’으로도 읽지만, 국제음성기호에선 [l]은 ‘르’, [m]은 ‘므’, [n]은 ‘느’로 읽는다. 언해본에서 중성을 붙여 읽은 방식은 오늘날 ‘가나다라’ 식 독음교육의 시초이다. 다만, 입을 크게 벌리는 ‘가나다라’ 보다 ‘•’자를 써 입을 더 작게 벌려 발음한 것과 초성의 배열순서가 달랐을 뿐이다.

대종언어연구소 소장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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