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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당·불출마' 유승민의 배수진…보수통합 견인+대권 승부수

등록 2020-02-09 15:55:21   최종수정 2020-02-17 09: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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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민, 합당 대신 연대 고수하다 벼랑 끝 승부수

통합준비위 내에서도 유 의원 태도에 불만 적잖아

합당 선언으로 우려 해소…황교안과 '담판' 무의미

한국, '신설합당' 대신 흡수통합 요구시 판 깨질 수도

황 대표 종로 출마하자 유승민도 총선 불출마 '강수'

정치인생 종지부 아닌 2년 후 대권가도 준비 관측

유승민 "숨고르는 시간 갖고 보수 재건 소명 다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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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김명원 기자 = 유승민 새로운보수당 보수재건위원장이 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보수 통합 및 총선 불출마 선언 기자회견을 마친 후 나서고 있다. 2020.02.09.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박준호 기자 = 유승민 새로운보수당 의원이 9일 자유한국당에 신설합당을 추진하자고 전격 제안하면서 지지부진하던 보수통합이 총선 정국에서 급물살을 타게 됐다. 이 뿐만 아니라 21대 총선 불출마를 전격 선언하면서 유 의원이 자신의 정치 인생을 걸고 벼랑 끝에서 승부수를 띄운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유 의원이 합당 대신 느슨한 선거연대를 선택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던 만큼, 이날 합당 수용은 전격적인 결단으로 볼 수 있다. 실제 유 의원은 이 같은 결정을 내리기까지 주변에 있는 최측근 의원들과도 상의하지 않았다고 한다. 유 의원 혼자 장고 끝에 연대가 아닌 합당을 받아들인 배경을 놓고 해석이 분분하다.

그간 유 의원은 자유한국당 황교안 당대표와 보수통합을 놓고 담판을 계속 미뤄오면서 통합의 진정성마저 의심받는 처지에 이르렀다. 황 대표 측에서 제안한 것으로 알려진 설 연휴 전 회동을 공개적으로 거절했고, 지난 4일 혹은 5일 회동설도 유력하게 거론됐으나 끝내 담판은 불발됐다. 일각에선 주말 사이에 비공개 회동설이 불거지기도 했으나 실제 만남은 이뤄지지 않았다.

이를 두고 유 의원이 황 대표와 기싸움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신경전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지만, 물밑 협상이 장기화되면서 보수통합에 대한 피로감이 쌓여갔고 통합 효과는 반감되는 것 아니냐는 불만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정치권 일각에선 유 의원이 보수통합에 따라 본인 입지가 축소될 것을 염두에 두고 한국당과 합당 대신 느슨한 연대를 원하는 것 아니냐는 말이 흘러나왔다. 실제 새보수당 내에서도 유 의원의 선거연대 추진을 두고 일부 의원들이 설전을 벌이며 강력 반발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유 의원은 '탄핵의 강을 넘자'는 보수재건 원칙에 대한 한국당의 진정성을 계속 의심해온 것으로 보인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유 의원이 "보수는 합치라는 국민의 명령을 따르겠다"면서도 "자유한국당은 변한 게 없는데 합당으로 과연 국민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까. 합당 결심을 말씀드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솔직히 이 고민이 제 마음을 짓누르고 있음을 고백한다"고 언급한 것도 맥락을 같이 한다.

보수통합의 양대 축인 새보수당과 한국당의 통합 작업이 지지부진한 채로 시간만 계속 흘러가자, 비난의 화살은 황 대표에 비해 상대적으로 양당 합당에 소극적이었던 유 의원에게 돌아갔다.

통합신당준비위원회의 이언주 공동위원장은 지난 7일 "유승민 새로운보수당 보수재건위원장이 통합과 관련해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다소 오락가락하는 것 같아서 상당히 유감스럽다"며 공개적으로 직격탄을 날렸다.

이 의원은 "저희는 항상 문이 열려 있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와 있기 때문에 더 이상 기다리기 힘들다"며 "새보수당 소속 의원들은 통합에 상당히 많이 공감하는데 (유승민 위원장이) 혼자 의견을 주장하기보다는 당 구성원들의 의사들을 존중해 함께 해주길 바란다"고 압박했다.

유 위원은 지난 5일 늦은 밤 통합신당준비위원회의 위원장 5명과 모처에서 심야 비공개 회동을 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이 자리에서 유 의원은 통준위원장들에게 보수통합 방향과 목표를 제시했으나 설득하지 못했다는 후문이다.

통합신당 협상과 관련해 내부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통합신당준비위원장들이 '담판'이 계속 늦어지자 유 의원을 만나 황 대표와의 물밑 협상을 설명해줄 것을 요구했고, 유 의원은 그 자리에서 본인은 한국당과 합당보다는 선거연대하는 쪽으로 통합을 생각하고 있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유 의원의 말에 위원장들은 굉장히 놀랬고 일부는 불편한 심기를 보였다"며 "유 의원 면전 앞에서 화를 냈는지는 모르지만 '유 의원이 그동안 우리를 갖고 논 거 아니냐'는 거친 말도 나온 것으로 전해들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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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김명원 기자 = 유승민 새로운보수당 보수재건위원장이 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보수 통합 및 총선 불출마 선언 기자회견을 마친 후 나서며 차량에 탑승하고 있다. 2020.02.09. [email protected]
결국 유 의원은 당 안팎에서 통 큰 결단을 요구하는 압박을 줄곧 받아오자 황 대표에게 회동을 제안하는 문자 메시지를 지난 6일 보냈지만, 이 마저도 긍정적인 답장은 받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한국당 모 의원은 "황교안 대표가 유 의원의 답장을 '씹은' 게 아니다. 그 전에도 황 대표는 유 의원에게 문자를 보내거나 전화도 했지만 유 의원이 답장을 안 하거나 뒤늦게 황 대표에게 연락해온 경우도 있었다"며 "황 대표는 이미 통합신당준비위원회가 구성되고 통합열차가 출발한 이 시점에 양당 합당이 아닌 선거연대를 논하는 것은 수용할 수 없어 담판 회동을 사실상 거부한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이 의원은 "황 대표가 직접 언급하지 않았지만 유 의원의 선거연대 제안에 상당히 불쾌감을 가졌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황 대표 입장에선 유 의원과 만나면 사진도 찍고 화기애애한 모습을 연출하며 회동 효과를 볼 수 있지만 협상 결과로 합당이 아닌 연대를 내놓게 되면 당 안팎에서 비판에 직면할 수 밖에 없지 않겠나"라며 "특히 황 대표가 선거연대 제안을 수용하더라도 총선에서 한국당과 새보수당이 후보를 단일화하면 정치권에서 당장 야합이라고 비판할텐데 그렇게 되면 황 대표도 상당히 부담스럽지 않겠나. 그렇기 때문에 이 시점에 (선거연대를 요구하는) 유 의원과는 담판 회동이 무의미하다고 본 것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결국 갈수록 벼랑 끝으로 몰려 운신 폭이 제한된 유 의원으로서는 보수야권의 바람대로 시대적 요구인 통합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했고, 한국당과의 신설합당을 전격 선언한 것으로 분석된다. 유 의원은 이같은 선언으로 통합의 걸림돌에서 꽉 막힌 협상의 물꼬를 트는 견인차 역할을 하는 주역이 됐다.

유 의원이 한국당과 신설합당을 수용하면서 총선 불출마까지 선언한 배경에도 관심이 쏠린다. 황 대표가 험지 중 험지인 서울 종로 출마로 자기희생을 보인 만큼 유 의원도 총선 불출마는 물론 공천 지분이나 당직을 요구하지 않겠다고 자신이 가진 권한을 내려놓으며 나름 강수를 둔 것으로 보인다.

그는 "개혁보수의 희망을 살리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지금 이 순간 제가 할 수 있는 건 저 자신을 내려놓는 것뿐이다"라며 "보수가 힘을 합치라는 국민의 뜻에 따르겠지만, 그와 동시에 개혁보수를 향한 저의 진심을 남기기 위해 오늘 저는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다"고 밝혔다.

유 의원은 "보수가 힘을 합쳐서 개혁보수를 향해 나아가는 데 저의 불출마가 조금이라도 힘이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며 "보수재건 3원칙을 처음 말했을 때 약속드렸던 대로 저는 공천권, 지분, 당직에 대한 요구를 일절 하지 않겠다. 3원칙만 지켜라, 제가 원하는 건 이것뿐이다"라고 요구했다.

정치권에서는 유 의원이 총선 불출마 선언을 했지만 20년 정치인생에 종지부를 찍기보다는 2년 후 차기 대권을 겨냥, 장기적 관점에서 대권가도의 길을 차근차근 준비하지 않겠댜는 관측이 많다.

실제 유 의원은 이날 모든 걸 내려놓겠다는 결연한 자세를 보이면서도 '대구의 아들'로 남길 바랐다. 

유 의원은 "저는 대구가 낡은 보수의 온상이 아니라 나라의 미래를 당당하게 개척하는 개혁의 심장이 되길 진심으로 바랐다"며 "사림(士林)의 피를 이어받아, 권력자가 아니라 국민과 나라에 충성하는 기개와 품격을 지닌 '대구의 아들'로 기억될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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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김명원 기자 = 유승민 새로운보수당 보수재건위원장이 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보수 통합 및 총선 불출마 선언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0.02.09. [email protected]
대구는 보수의 심장이자 한국당의 텃밭인 TK(대구·경북) 요충지이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사태를 겪으면서 유 의원은 대구 민심을 상당부분 잃었다. 유 의원이 보수진영을 대표하는 차기 대권주자로 인정받기 위해선 대구를 비롯한 영남에서 떨어진 지지율을 다시 끌어올리는 게 관건이다. 유 의원이 이날 총선 불출마 선언을 한 후 대구로 내려간 것도 이러한 사정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유 의원의 이날 선언으로 앞으로 황 대표와 유 의원 간 '담판'은 무의미해지게 됐다. 종전에는 합당과 연대 문제를 논의하는 데 방점을 두고 담판 회동이 추진됐지만, 유 의원이 이미 합당 선언을 한 마당에 회동에서 더 큰 결과물을 내놓긴 힘들어 보인다.

이 때문에 통합신당의 공천이나 지도부 구성 등에 관한 현안은 통합신당준비위원회를 중심으로 심층적인 논의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한국당이 총선까지 남은 기간이 촉박한 사정을 들어 자당 최고위원회와 공천관리위원회에 새보수당 몫의 위원을 참여시키는 방식으로, 사실상 흡수통합을 제안할 경우 새보수당과의 합당에 제동이 걸릴 수도 있다.

새보수당의 한 의원은 "유 대표가 신설합당을 제안했기 때문에 황 대표와 굳이 회동을 할 필요성을 못 느낀다"며 "만약 한국당이 양당이 모여 신설합당을 창당하지 않고 기존 한국당에 흡수 통합하는 방식을 요구하면 우리는 수용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는 한국당과 동등한 관계가 아닌 한국당을 중심으로 한 흡수통합은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것으로, 통합 방식을 둘러싸고 새보수당과 한국당이 접점을 찾지 못한다면 자칫 지금까지 진행해온 보수통합 논의가 물거품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만약 새보수당이 한국당과의 신설합당이 불발돼 총선에서 독자 노선을 걷는다면 유 의원의 도움이나 역할 없이는 불가능한 만큼 만일의 경우 유 의원이 총선 불출마 선언을 재고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없진 않다.

유 의원은 "이제는 제가 달려온 길을, 저의 부족함을 되돌아보고 '나는 왜 정치를 하는가' 라는 저의 오래된 질문을 다시 생각해보며 숨을 고르는 시간을 갖겠다"며 "어디에 있든 저는 20년 전 정치를 처음 시작하던 마음으로 보수재건의 소명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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