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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감원 논란①] 검사와 제재 동시에 '셀프 제재'

등록 2020-02-11 09:14:24   최종수정 2020-02-24 10: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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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재심, 수사와 기소 같이하는 검찰과 같은 구조

금감원이 뽑은 민간위원이 금감원이 만든 제재안 심의...'셀프 제재'

의사록 비공개로 사후적 제3 검증 통한 공정성 담보 어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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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박은비 조현아 기자 = ※최근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 관련 최고경영자(CEO) 징계를 둘러싼 논쟁이 진행 중이다. 한쪽에선 이번 사안이 명백한 불완전 판매인 만큼 CEO를 중징계하는 것은 시장 계도 차원에서 불가피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반대편에선 잘못을 인정한다해도 징계가 과도했다고 반발하고 있다. 이런 논란은 나아가 과연 금융당국이 공정하게 제재를 한 것인지에 대한 의구심으로 이어지고 있다. 실제로 법 적용과 범위 등에서 당국이 다소 무리했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금감원의 공정성에 대한 논쟁이 불붙고 있다. 이런 가운데 감독기관인 금융위원회가 제재를 전후해 금감원에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면서 이번 징계의 본질이 부원장 인사를 둘러싼 금융위와 금감원간 이견에 있고, 그 피해를 금융회사가 보고 있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무엇이 진실일까. 제도적으로 문제는 없는 것일까. 3월 초 금융위원회의 최종 판단에 앞서 양 극단에서 칼끝 대립하고 있는 이해 당사자들과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했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금융회사의 위법 행위에 대해 사실관계를 조사하고 심의에 회부하는 '검찰' 역할과 제재 양형을 판단하는 '법원' 역할을 같이 하고 있다. 여기에서 양형을 정하는 금감원 제재심의원회만 떼놓고 보면 수사(검사)와 기소(금융위에 제재 건의)를 함께 하는 구조다. 물론 제재심에는 전문성이 필요하다는 명목으로 학계, 법조계 인사를 중심으로 소비자보호, 정보기술(IT) 등 전문가가 민간위원으로 참여한다.

언뜻 보면 외부 인사를 통해 공정성을 담보한 것처럼 보이지만 세부 구성을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 어느 민간위원이 참여하느냐에 따라 징계 수위가 달라질 수 있는데, 이 때 민간위원 선정과 개별 제재심에 투입되는 민간위원은 사실상 금감원이 모두 결정하기 때문이다. 

금감원 제재심은 당연직 위원 4명과 민간위원 17명으로 구성된다. 이 중에서 중징계를 논의하는 '대회의'는 당연직 위원(금감원 수석부원장, 금감원 제재심의담당 부원장보, 금감원 법률자문관, 금융위 안건담당 국장) 4명과 민간위원 5명이 참여하고, '소회의'는 당연직 위원(제재심의담당 부원장보, 법률자문관) 2명과 민간위원 1명 이상으로 운영된다.

매 회의마다 민간위원 누가 참여할 지는 제재심 위원장인 금감원 수석부원장이 사안 특성과 일정을 고려해 지명한다. 특히 민간위원 임기는 2년으로 각 위원마다 임기 시작일이 다르다. 어떤 성향의 금융당국 수장일 때 민간위원으로 선정되느냐에 따라 위원들의 면면이 다를 수 있는 이유다.

금융권 관계자는 "현업이 따로 있는 민간위원이 검사 과정을 지켜본 당연직 위원보다 사안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고 할 수 없다"며 "제재심 차수가 늘어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사안에 따라 금융위원회가 법원 상급심 역할을 하지만 큰 틀에서 금감원 결정을 벗어나지 않는다. 금감원이 심의안을 올린 대로 징계를 하되 양형을 일부 조정하는 수준이다. 그렇기 때문에 징계대상자 입장에서는 최대한 금감원에 잘 보이려고 노력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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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되는 제재심 공정성 논란

지금과 같은 제재심 문제는 금융위와 금감원을 분리할 때부터 예견된 일이었다. 당시 제재심을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에 대해 여러 안건을 논의했지만 결론은 금융위가 금융정책과 감독정책을 담당하면서 감독 기능 일부를 금감원에 위탁하는 방식이었다. 이런 구조는 대형 사건, 사고가 터질 때마다 잡음을 키웠다.

지난 2015년 KB금융 사태가 대표적이다. 당시 KB금융은 주전산기 교체 문제로 임영록 KB금융지주 회장과 이건호 국민은행장 갈등 상황이 불거졌고, 제재심 징계 수위에 따라 경영진 문책도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결과적으로는 경징계에 그쳤지만 단계별로 달라진 양형이 외부에 고스란히 노출돼 혼란을 키웠다. 이 때문에 금감원은 제재심 개편 전담 태스크포스(TF)를 만들고 개편안을 논의했다.

하지만 대대적인 개편은 없었다. ▲제재심 자문기구 성격 명확화 ▲민간위원 풀(pool)제 운영 ▲민간위원 경력요건 강화 ▲비밀 유지의무 강화 ▲금융위 의결권 행사 제한 등 정도 개선안이 나왔다.

조치예정 내용이 사전에 누설되는 걸 방지하기 위해 내부통제를 강화하고 비밀 엄수 의무를 지키지 않은 민간위원은 해촉할 수 있도록 규정을 만들었지만, 실제로 해촉된 위원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제재심은 지난 2018년 소폭 개편됐다. 제재 심의 안건수는 해마다 증가하는데, 효율적인 대응이 어렵다는 이유로 금감원은 대심제를 시행하면서 중징계 건을 처리하는 대회의와 경징계 건을 처리하는 소회의로 나눠 수시 개최하고 있다.

실제로 이번 제재심이 끝나고 논쟁은 끊이지 않고 있다. 불완전판매의 근거가 되는 자본시장법이 적용되지 않은데 대해 어떤 민간위원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은 것일까. 결과론적으로 보면 금융위원회 의결 사안인 자본시장법 위반이 명확하지 않은 이유로 빠지면서 금융위 패싱 논란이 일어난 것이다. 금감원이 금융위 없이 은행장을 제재하기 위해 꼼수를 부렸다는 것이다. 담당 부행장을 '관리자'에서 '행위자'로 바꿔 은행장에게 제재가 집중될수 있도록 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를 민간위원은 만장일치로 동의한 것일까.

◇속기록 공개 못하나, 안하나

 이런 의구심은 이해관계가 첨예하기 얽힐수록 커질수 밖에 없다. 제재심에서 어떤 논의가 오갔는지 제대로 알길이 없다보니 공정성에 의문이 제기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금감원이 제재 통보 이후 2개월 이내에 제재심 의사록을 공개하고 있지만 간략한 응답이 담긴 요약본 형태로만 제공할 뿐 세세한 제재심 논의 내용이나 개별 심의 위원들의 발언은 공개하지 않고 있어서다.

금감원이 속기록 수준의 의사록 공개를 고려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지난 2014년 KB사태로 제재심 공정성 논란이 도마에 올랐던 당시 속기록 수준의 의사록 공개를 검토했으나 이듬해 발표한 개편안에는 최종적으로 담지 않았다. 속기록 공개를 개편안에서 배제한 이유로 제재 당사자나 기관의 민감한 정보가 노출될 수 있고, 심의위원들의 발언권을 위축시킬 수 있는 점 등을 내세웠다.

 그러나 제재심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속기록 수준의 의사록을 공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다. 제재심의위 자체가 금감원장의 자문기구인데다, 금감원장이 제재심에 참여하는 민간위원을 위촉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태생적으로 독립성을 확보하는 데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제재심 구조가 뒤바뀌지 않는한 제재심 결정이 어떻게 나오게 됐는지 그 배경과 이유를 구체적으로 공개하는 것이야 말로 시장의 신뢰와 권위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유일한 조치일 수 있다.

한국은행의 경우에는 금융통화위원회가 개최되면 2주 후 속기록 수준의 의사록을 공개한다. 한은은 1996년부터 책자를 통해 금통위 의사록을 게재해오다 1999년부터 홈페이지에 이를 공개했다. 지금처럼 금통위 2주후 의사록이 공개되기 시작한건 2012년 9월부터다. 위원들의 발언을 모두 공개해 통화정책 결정의 투명성을 높이는 대신, 익명으로 처리해 논의에 자율성을 보장하는 방식을 취했다.

금감원 제재심도 금통위 의사록처럼 실명을 공개하진 않더라도 논의 내용과 위원들의 개별 발언들을 구체적으로 공개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는 "위원들의 반발이 심하겠지만 의사록 공개는 필요하다"며 "의사록을 공개하되 독자적 판단을 보장하기 위해 일정 시점이 지난 다음에 공개하도록 하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제재심과는 의결 내용이 다소 다르긴 하지만 금융당국 의사 진행과정의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는 논리는 윤석헌 금감원장이 대학 교수 시절 꾸준히 주장한 것이기도 하다. 윤 원장은 지난 2017년 12월 금융행정혁신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던 당시 "금융위와 증권선물위원회의 의사록을 자세히 공개해야 한다"는 내용의 권고안을 금융위원장에 제시한 바 있다.

의사록이 공개되면 심의의 투명성뿐만 아니라 위원들의 참여도도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기존 원안대로 의결되는 경우 또한 줄어들 수 있다. 제재심에서 원안이 뒤집히는 경우는 극히 일부다보니 '거수기', '유명무실' 논란은 끊이질 않고 있는 상황이다. 고동원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아무래도 속기록이 공개되면 심의위원들이 더 신경을 쓸 수 밖에 없다"며 "위원장을 외부 위원으로 정하고, 속기록 공개를 자세히 하는 등 제재심을 투명하기 위한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금감원 제재심 과연 필요한가...폐지 의견도

전문가들은 제재심 구성과 진행의 투명성을 확보하는 동시에 금감원과 금융위의 역할을 명확히 나눌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금융위, 금감원 힘겨루기로 징계 본연의 취지가 퇴색하지 않게 금감원이 검사만 전담하고 금융위가 제재 수위를 정하자는 취지다.

시민단체 관계자는 "외국 사례를 보더라도 성격이 다른 두 역할을 금감원 한 곳에서 담당한다는 게 말이 안 된다"며 조직 개편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반면 금융당국 관계자는 "금감원이 두 역할을 모두 하고 있기 때문에 금융회사를 상대로 영향력이 있는 것"이라며 "분리하면 실효성 있는 규제를 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민간위원들이 사안의 배경 등을 고려해 판단하는 건 아니고 법규정, 사실관계, 입증자료, 양쪽 설명자료를 듣고 재판처럼 하기 때문에 감정을 갖고 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명예를 가지고 평생 열심히 살아온 분들인데 원칙대로 했다고 보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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