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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종 문화소통]로마자 ‘모음’은 ‘중성’이 결합된 목소리다

등록 2020-02-26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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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종의 ‘문화소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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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훈민정음은 원칙적으로 ‘초성+중성+종성’의 3성 체계. ‘초성+중성’으로 쓰는 모든 글자들은 묵음에 가까운 미약한 종성 ‘ㅇ’이 생략된 약자체임.
[서울=뉴시스]  로마자 모음 a와 u는 훈민정음으로 표현하면 ‘ㅏ’와 ‘ㅜ’가 아니라 ‘아’와 ‘우’ 소리에 해당한다. 로마자 모음은 훈민정음 ‘중성(中聲)’이 포함된 초성(初聲) 목구멍소리 ‘ㅇ, ㆆ’이다. 고로 모음을 오직 훈민정음 중성과만 같게 보고 초성 ‘ㅇ’을 배제하는 시각은 잘못이다.

로마자 a와 한글 ‘아’는 구조가 다르다. a는 더 이상 분리할 수 없는 일체형이나, ‘아’는 ‘ㅇ’과 ‘ㅏ’로 분해할 수 있는 분리형이다. 이는 마치 존 돌턴이 원자는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입자라 한 것을, 후대의 물리학자들이 원자를 ‘전자’와 ‘양성자+중성자’의 ‘원자핵’으로 쪼개버린 것과 같다. 심지어 세종은 <사진>의 훈민정음 언해본에서처럼 영문자 ‘i’에 해당하는 ‘이(異)’를 ‘잉’라 하여 ‘ㅇ+ㅣ+ㅇ’의 셋으로 분해한다. ‘이’는 ‘잉’의 약자이다.

2019년 12월25일자 <훈민정음 중성 ‘ㅏ’는 ‘아’와 다르다> 편에서 밝힌 것처럼, 훈민정음 중성은 ‘목구멍 열림’ 정도를 나타내고 초성 ‘ㅇ’은 ‘목구멍 열림 소리’를 나타낸다. ‘목구멍 열림 소리’ 중에서 ‘소리’가 빠진 것이 ‘중성’이다. 세종께서 중성에 ‘聲(소리 성)’자를 쓰신 이유는 음을 이루는 요소를 ‘성’이라고 규정하였기 때문이다.

어원인 라틴어 vocalis(목소리)가 증명하듯, 영어 vowel(모음)은 원칙적으로 ‘목소리’다. 그래서 세계 각국 사전에서의 ‘모음’에 대한 정의는 사실 목소리 ‘ㅇ’에 대한 정의이다. 훈민정음에선 ‘목소리’를 초성 자음으로 보는 반면, 로마자에선 ‘목소리(vowel)’를 모음으로 보는 것이 다를 뿐이다. 서구 언어학에선 vowel이 ‘초성 목소리(ㅇ, ㆆ)’와 ‘중성’으로 분리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아직 모르기 때문이다.

주시경 또한 이 사실을 간파 못하고 “훈민정음 ‘ㅇ’은 소리가 없는 것”이라 하였는데, 만약 그 말이 옳다면 로마자 목소리 ‘vowels(모음)’ 또한 소리가 없는 것이 된다. 어불성설이다. ‘ㅇ’이 소리가 없는 것이 아니라 ‘중성’이 소리가 없는 것이다. 발음기관을 본떠 만든 초성과는 달리, 중성 글자들은 발음기관이 아닌 천지인을 본떠 만들었다. 중성은 ‘소리’가 아니라 ‘소리를 내기 위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훈민정음해례’ 편 4장에서 중성 ‘•’와 ‘ㅡ’를 설명할 때 ‘開(열 개)’자와 ‘闢(열 벽)’자를 써서 “天開於子(천개어자), 地闢於丑(지벽어축)”이라 한 것은 중성이 ‘입·목구멍의 열림 정도’를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서구인들은 [k]를 ‘그’로 읽고 [a]를 ‘아’로 발음한다. [ka]는 ‘그아’의 합침인 ‘가’로 읽는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들의 [k] 발음에 중성 ‘ㅡ’ 소리가 있음을 인식하지만 그들은 ‘ㅡ’ 소리에 대한 의식이 없다. 그러니 [ka]에 대한 그들의 인식을 구분동작 식으로 한글로써 나타내면 ‘ㄱ아’가 된다. [ka]에서 k는 ‘ㄱ’에, a는 ‘아’에 해당하니, 그들 시각에선 한글 ‘ㄱ아’는 ‘가’와 같아서 ‘ㅇ’은 불필요한 것 또는 소리가 없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다. 

그러나 훈민정음에서 ‘가(←‘강’의 생략형)’ 음을 바라보는 시각과 기준은 다르다. 세종께서는 중성 ‘ㅏ’를 중심으로 한 상태에서 그 전후로 초성 ‘ㄱ’과 미약한 종성 ‘ㅇ’이 발음되는 것으로 관찰했다. ‘낭’의 생략형인 ‘나(那)’ 소리의 경우, 입 밖에선 혀의 모습(ㄴ)이 보이지 않고 입 벌림 정도(ㅏ)만 보인다. 그 벌림이 유지된 상태에서 입 안에선 ‘ㄴ’ 소리가 먼저 나고 혀끝이 윗잇몸에서 떨어지며, 즉 목구멍이 열리며 ‘목구멍소리(ㅇ)’가 살짝 난다. ‘목구멍’을 입과 혀로써 조정하여 원하는 음만큼 열고(‘중성’) 그 앞뒤로 ‘초성’과 ‘종성’이 덧붙어 이루어지는 것이 바로 훈민정음의 ‘음’이다.

음에 대한 이러한 세종의 관찰은 서양언어학의 그것과는 차원을 달리 하는 것이다. 서양인들은 ‘자음·모음’의 2분법적 사고와 또 ‘ㅇ’ 소리가 ‘모음’ 속에 고착돼있어, 운영 체계가 다른 ‘초+중+종성’의 3분법적 훈민정음의 ‘중성’과 미약한 종성 ‘ㅇ’을 상상하기 어렵다.

대종언어연구소 소장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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