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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종 문화소통]용비어천가를 통한 해례본의 두 ‘便(편)’자 풀이

등록 2020-04-22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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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종의 ‘문화소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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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훈민정음 해례본의 두 ‘便(편)’자는 서로 성조와 뜻이 다르다. 어제훈민정음의 ‘便’자는 ‘편안하다’, 훈민정음해례 16장의 ‘便’자는 ‘알맞다’를 뜻한다. 4성권점의 유무로써 그 뜻을 구별토록 돼있다.
[서울=뉴시스]  훈민정음 해례본 안에는 ‘便(편)’자가 총 2회 쓰였다.

하나는 ‘어제훈민정음’ 편 1장 앞면의 “便於日用(편어일용)”에 쓰였고, 다른 하나는 ‘훈민정음해례’ 편 중성해 16장 뒷면의 “便於開口(편어개구)”에 쓰였다. 그런데 이 두 ‘便’자는 뜻이 서로 다르다.

“便於日用(편어일용)”은 훈민정음 언해본에서 증명되듯, “일용에 편안하다”, 곧 “날로 씀에 편안하다”라는 뜻이다. 고로 이 ‘便’자가 ‘편안하다’를 뜻한다는 사실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지만, 훈민정음 중성을 설명하는 ‘중성해’ 부분에 들어 있는 “便於開口(편어개구)”의 ‘便’자는 ‘편안하다·편하다’의 뜻이 아니다.

2018년 8월 25일자 “훈민정음 해례본 구두점, 이렇게 바로잡았다” 편에서 밝힌 것처럼, “便於開口”에서의 ‘便’자는 ‘편안하다’가 아니라 ‘짝맞다→알맞다, 마땅하다’를 뜻한다. 따라서 ‘중성해’에서 다른 중성들과 잘 어울리는 ‘ㅣ(이)’ 중성을 설명하는 “ㅣ於深淺闔闢之聲◦並能相隨者◦以其舌展聲淺而便於開口也” 문장은 다음과 같이 해석해야 한다. “ㅣ 중성이 혀의 수축 정도가 심하고 약한 중성들, 발음 시 입을 벌리는 정도가 크고 작은 중성들 모두에 함께 서로 따를 수 있는 것은, (ㅣ는) 그 혀가 펴져 수축도가 약해서 (다른 중성들과 어울려) 입을 함께 여는 데 알맞기(짝이 맞기) 때문이다.”

중성해의 위 문장에서 ‘深淺(심천)’은 단순히 ‘깊고 얕다’가 아니라, 혀의 수축 정도가 심하고 약함을 뜻한다. 그에 대한 보다 상세한 사항은 2019년 6월18일자 <‘ㆆ’ 소리도 살아있다···후설모음의 목구멍소리②> 편을 참고하기 바란다.

한자는 이처럼 하나의 글자가 여러 뜻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방심하면 전문가라도 오해하기 십상이다. 실제로 1940년 훈민정음 간송본 발견 이후 지금까지 국어학계에선 “便於開口(편어개구)”의 4성 권점 없는 ‘便’자를 오해했다. 한글학회에서 발간한 ‘훈민정음 옮김과 해설’(1997)에서는 “입을 여는데 편하다”로, 국립국어원 편 ‘알기 쉽게 풀어 쓴 훈민정음’(2008)에서도 “입을 열기에 편하다”로 오역했다.

1444년 1월 세종대왕으로부터 ‘훈민정음 예의(例義) 간본’을 보다 상세히 해석하라는 명을 받은 집현전의 ‘정인지’ 이하 최항·박팽년·신숙주·성삼문·강희안·이개·이선로 8명은 ‘훈민정음 예의 번본’인 해례본을 작성함에 있어 신중에 신중을 기했다. 어떤 글자가 성조에 따라 뜻이 달라지는 경우, 4성 권점의 유무로써 그 정확한 뜻을 분별토록 조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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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훈민정음 해례본(1446) 작업에 참여한 8학자들은 모두 용비어천가(1447) 작업에도 참여했다. ‘便’자의 경우 거성일 땐 4성 권점을 찍지 않고, 평성일 땐 글자 왼쪽 밑에 권점을 찍어 평성임을 표시했다.
便(편)자의 경우, 최세진이 지은 아동용 한자 학습서인 ‘훈몽자회’(1527)에서처럼 가장 기본적인 의미는, 평성으로써 ‘오줌(소변)’ 및 ‘편안하다(安)’와 거성으로써 ‘마땅하다(宜)’와 부사 ‘곧(即)’이다. 세종의 명에 따라 8학자들은 “便於日用(편어일용)”의 평성 ‘便(편안할 편)’자에는 글자의 왼쪽 아랫부분에 동그란 4성 권점을 찍었다. 그에 비해 “便於開口(편어개구)”의 거성 ‘便(알맞을 편)’자에는 4성 권점을 찍지 않았다.

4성 권점의 유무로써 ‘便’자의 다른 의미들을 변별케 한 이러한 조치는 ‘용비어천가’(1447)에서도 그대로 확인된다. 훈민정음 해례본(1446) 작업에 참여한 8학자들은 모두 용비어천가 작업에도 참여했다.“근일 편안치 않은 일을 조목조목 장계로 올렸다”의 제1, 40장 뒷면의 ‘便(편안할 편)’자에는 왼쪽 아래에 4성 권점을 찍었다. 반면 “곧바로 돌아갔다”를 뜻하는 제1, 53장의 ‘便(곧 편)’자에는 4성 권점이 없다.

대종언어연구소 소장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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