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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종 문화소통]훈민정음 해례본 ‘易°(쉬울 이)’와 ‘易(바꿀 역)’

등록 2020-05-06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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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종의 ‘문화소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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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사진1> 훈민정음 해례본에 보이는 두 종류의 ‘易’자. ‘어제훈민정음’ 편의 거성 권점 있는 ‘易’자는 입성이 아니므로 ‘이’로 읽히며 ‘쉽다’를 뜻한다.  ‘훈민정음해례’ 정인지 후서의 권점 없는 ‘易’은 ‘바꿀 역’자가 된다.
[서울=뉴시스]  2020년 4월8일자 <훈민정음 ‘해례본’은 ‘해석례의 번본’이다>의 사진에서처럼, 훈민정음 해례본은 ‘어제훈민정음’과 ‘훈민정음해례’ 편으로 구성돼 있다. 각각 서문이 있는데, ‘어제훈민정음’ 편에는 세종의 ‘어제서문(御製序文)’이 있고, ‘훈민정음해례’ 편 끝부분에는 8학자를 대표한 ‘정인지의 후서(後序)’가 있다.
 
이 두 서문에는 <사진1>에서처럼 각각 ‘易’자가 하나씩 들어 있으나, 서로 뜻도 다르고 음도 달라 주의를 요한다. ‘易’자는 ‘周易(주역)’이라는 말에서처럼 ‘바꾸다, 변하다’를 뜻할 때는 종성이 ‘ㄱ·ㄷ·ㅂ’인 입성 ‘역’으로 발음되고, ‘쉽다’를 뜻할 때는 높은 소리인 거성으로써 ‘이’로 발음한다.

2020년 4월29일자 <훈민정음 해례본에 보이는 두 종류의 ‘爲(위)’> 편에서 설명한 것처럼, 훈민정음 해례본을 제작 시 세종과 8학자들은 4성 권점의 유무로써 읽는 이가 한 글자가 갖는 다른 의미들을 변별하게끔 조치했다. 즉, 어떤 글자가 보편적 의미를 나타낼 때는 4성 권점을 찍지 않고, 주의해야 할 특수 의미일 경우엔 4성 권점을 찍어 읽는 이의 오해를 방지코자 했다. ‘易’자의 경우는 입성의 ‘바꿀 역’이 보편적 음의(音義)이고 거성의 ‘쉬울 이’가 특수한 음의이다.

그래서 <사진1>에서 보듯, “欲使人人易習便於日用耳(사람마다 쉽게 익혀 날로 씀에 편안케 하고자할 따름이니라)”의 ‘易(쉬울 이)’는 일반적이지 않은 의미이므로, 주의하라고 거성 권점을 붙여놓았다. 참고로, 해당 글자의 오른쪽 윗부분이 거성 권점의 위치이고(예: 易°), 권점은 글자에 붙여 단다. 정인지 후서의 “後世不能易也(후세인들이 바꿀 수 없다)”의 ‘易(바꿀 역)’은 보편적 의미여서 4성 권점을 찍지 않았다.

혼동을 방지하고 완전한 이해를 위해, ‘易’자의 자원을 세심히 살펴보자. <사진2>의 ‘易’에 대한 청동기 금문1(출처: 서주 조기의 德鼎)과 금문2(출처: 서주 조기의 叔德簋)의 글꼴은 생략되지 않은 본래의 자형이다. D자 모양의 손잡이가 달린 술그릇(皿: 명)의 술을 따르는 모습이다. 비록 완전하지는 않지만 ‘금문2’는 술그릇을 기울여 그림으로써 술을 따르는 모습을 표현했다. 그릇을 기울여 왕이 신하에게 술을 내려(=따라)주고 있는 모습을 보다 확실히 나타내기 위해, ‘갑골문’이나 ‘금문3(출처: 集成4280)’의 자형에선 아예 술그릇의 한쪽 부위를 생략하되, ‘술’의 방향을 아래쪽으로 기울여(彡)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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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易(바꿀 역, 쉬울 이)’의 자형 변천과 풀이. ‘易’은 왕이 신하에게 그릇을 기울여 술을 하사하는 모습으로, 물건이 옮겨가는 데서 ‘옮기다→바꾸다’ 및 부어 따라내면 그릇이 가벼워지는 데서 ‘가벼이(輕)=쉽게 여기다→쉽다’ 등을 뜻한다.(해석: 박대종)
‘易’의 자형 변화는 금문3에서 금문4(출처: 師酉簋)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한 번 더 이뤄진다. D자 모양 반원형 손잡이 안에 점(•)을 추가하여 ‘⊙’와 같은 모습이 된 바람에, 그것이 진(秦)나라를 거치면서 마치 ‘日(해 일)’자처럼 변했다. 하지만 ‘易’자는 자원 면에서 ‘日(일)’이나 ‘勿(기 물)’과는 전혀 무관하다. 따라서 ‘易’자를 ‘日(일)+勿(물)’의 합침으로 본 ‘깃발 설’이나, ‘日(일)+月(월)’의 구조로 본 ‘일월음양 설’은 모두 오해이다. ‘도마뱀 상형설’이나 ‘용의 상형설’, ‘새의 상형설’ 또한 모두 오해이다.

<사진2>에서 보듯, 생략되기 이전 본래의 금문 자형들에서 드러나는 ‘易’은 왕이 신하에게 그릇을 기울여 어주(御酒)를 부어주는 모습으로, ‘賜(하사할 사)’의 옛글자이다. 임금이 하사할 때 ‘술’을 비롯한 ‘재물, 금품, 청동기 제작을 위한 쇠’ 등의 물건이 다른 곳으로 옮겨가는 데서 ‘옮기다→바꾸다’를 뜻하고 이 경우 ‘역’으로 읽는다. 또한 부어서 따라내면 그릇이 가벼워지므로 ‘易’는 ‘가볍다(輕)→가벼이=쉽게 여기다→쉽다’ 등의 뜻도 나타내며, 이 경우 거성 ‘이’로 발음한다.(해석: 박대종)

대종언어연구소 소장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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