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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편견과 소외 느껴보셨다면...영화 '나는 보리'

등록 2020-05-17 06:00:00   최종수정 2020-05-25 10: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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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영화 '나는 보리' (사진=영화사 진진 제공) 2020.05.16.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신효령 기자 = 다같이 모여 있는데도 홀로 떨어진 듯한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남에게 따돌림을 당하여 멀어진 듯한 느낌. '소외감'의 사전적 정의다.

'나는 보리'는 누구나 한 번쯤 느껴본 소외감을 다채롭게 그려낸 영화다. 단편영화 '높이뛰기'(2014)를 연출한 김진유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농인(소리를 들을 수 없는 사람)에 대한 차별적 인식을 날카롭게 꼬집고, 장애에 대한 구분 없이 더불어 사는 삶도 논했다.

농인은 청인(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과 대응하는 개념이다. 과거에는 듣지 못하면 당연히 말도 못한다는 의미에서 '농아인'이라는 표현을 많이 사용했다.

하지만 수어를 활용해 얼마든지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농아인 대신 '농인'으로 지칭하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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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영화 '나는 보리' (사진=영화사 진진 제공) 2020.05.16. [email protected]
농부모를 둔 감독의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어릴 적 감독은 소리를 잃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한 행사에서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한 농인 수어통역사 현영옥씨의 발표를 듣고 시나리오를 쓰게 됐다.

주인공 '보리'는 바닷마을에 사는 11살 소녀다. 농인인 아빠·엄마·동생과 살고 있는 보리는 가족 중 유일하게 들을 수 있다.

초등학생이 된 보리는 말로 하는 대화가 점점 익숙해진다. 하지만 가족들과는 여전히 수어(손짓으로 표현하는 의사전달 방법)로 소통하고, 그 과정에서 소외감을 느낀다.

보리는 자신이 가족들과 다른 것 같다는 생각, 무리에 섞이지 못한다는 외로움때문에 급기야 소리를 잃고 싶어한다. 이른 사춘기가 오면서 외로움은 더욱 심해진다.

감독은 처음부터 끝까지 담담한 어조로 보리네 가족들에게 일어나는 크고 작은 사건들을 풀어냈다. 아주 극적인 이야기는 없다. 가족의 소소한 일상이 잔잔하게 펼쳐진다.

너무 뻔하게 전개되다보니 다소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 자체가 우리네 삶의 단면이다. 그래서인지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 한 구석이 짠해진다.

상대방을 바라보는 시선을 생각해보게 만드는 작품이다. 장애인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은 결국 사회 구성원들이 장애를 바라보는 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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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영화 '나는 보리' (사진=영화사 진진 제공) 2020.05.16. [email protected]
감독은 결코 장애인의 고충이나 시련을 나열하면서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하지 않는다. 비장애인이 장애인을 구원하는 식의 구조를 취하지 않았다. 작위적으로 느껴지는 설정도 없다.

인간의 보편적 심리에 초점을 맞추고 진중하게 접근했다. 보리의 시선을 통해 어른이 잃어버린 순수, 타인에 대한 배려심을 깨닫게 해준다.

배우들은 움직임을 최대한 절제하고 수어와 표정으로만 연기했다. 올해 13세인 김아송은 성인 못지 않은 연기력으로 보리 역을 완벽하게 소화했다.

실제 부부인 곽진석·허지나는 보리의 부모를 맡아 멋진 연기적 앙상블을 이뤄냈다.

보리의 동생 '정우' 역의 이린하, 보리의 친구 '은정' 역의 황유림도 섬세한 연기를 보여주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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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영화 '나는 보리' (사진=영화사 진진 제공) 2020.05.16. [email protected]
인생은 자기 자신과 환경으로 구성되어 있다. 본인 선택과 함께 주변 사람들의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 그 안에서 행복을 느끼고 때로는 고통스럽기도 하다.

비장애인인 보리가 혼란스러운 시간을 통과하는 이야기는 쓸쓸하거나 처연하지 않다. 세상의 때가 묻지 않은 모습이 따뜻한 위로를 안긴다.

장애에 대한 편견도 해소시켜주는 작품이다.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지지 않으면 본인의 삶은 없다. 보리네 가족이 만들어가는, 그들만의 또다른 세상이 아름다운 이유다.

김 감독은 '나는보리'로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감독조합상 감독상을 수상했다. 이 작품은 제20회 가치봄영화제 대상, 제21회 정동진독립영화제 땡그랑동전상 등을 받기도 했다.

21일 개봉, 110분, 전체 관람가.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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