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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종 문화소통]훈민정음 해례본에 쓰인 ‘深(심)’과 ‘淺(천)’

등록 2020-07-27 10:15:14   최종수정 2020-07-27 13:2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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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종의 ‘문화소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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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사진1> 淺(천)은 氵(물 수)와 ‘戔(작을 전)’의 합자로, 물의 깊이가 작은 모양에서 ‘①얕다, ②상하 또는 내외의 거리가 작다, ③정도가 약하다’ 등을 뜻함. 음운서인 훈민정음 해례본에서의 ‘淺’은 ②에서 발전된 ‘입안 앞쪽 소리’를 뜻함.(해석: 박대종)
[서울=뉴시스]  훈민정음 해례본에선 천지인의 기본 중성, ‘•, ㅡ, ㅣ’를 설명할 때 ‘深(심)’과 ‘淺(천)’자를 사용했다. 해례편 4~5장의 “•舌縮而聲深, ㅡ舌小縮而聲不深不淺, ㅣ舌不縮而聲淺”, 16장의 ”ㅣ於深淺闔闢之聲, 並能相隨者, 以其舌展聲淺而便於開口也”가 바로 그것이다. 목구멍소리를 설명하는 4장의 “盖以ㆆ聲深不爲之凝, ㅎ比ㆆ聲淺, 故凝而爲全濁也”에서도 사용했다.

‘深’과 ‘淺’은 기본적으로 ‘깊다’와 ‘얕다’의 뜻을 나타내는 글자이다. 그러나 ‘깊다’와 ‘얕다’로만 단순 번역할 경우, 해례본의 위 문장들이 나타내고자 하는 의미를 정확히 파악할 수 없게 된다. 올바른 이해를 위해 ‘深’과 ‘淺’자에 대해 심도 있는 인식이 필요한 이유다.

<사진①>에서 보듯, ‘淺(천)’은 ‘氵(물 수)’와 ‘戔(작을ㆍ적을 전)’의 합자이다. ‘戔(전)’의 갑골문형을 보면 ‘戈(창 과)’의 방향이 서로 다르다. 두 창이 격돌하여 상대를 뼈가 드러나도록 상해(傷害)하는 모습에서 ‘드러나다, 해치다→상하다→여위어 축나다(수나 양에서 모자람이 생기다)→적다ㆍ작다’ 등을 뜻한다.

‘淺(천)’에서의 ‘戔’은 위의 여러 뜻 중 ‘작다’의 뜻으로 쓰였으니, 淺은 물(氵)의 깊이가 작은(戔) 모양에서 ①물이 얕다, 나아가 ②상하 또는 내외의 거리가 작다=가깝다, ③정도가 약하다(심하지 않다) 등의 뜻을 나타낸다.

지금껏 필자는 해례본에 쓰인 ‘淺’을 ③과 결부된 ‘혀의 수축 정도가 약하다’로 보았다. 하지만 혀의 수축 여부와 거의 무관한 ‘ㅎ’를 고려할 때, 해례본에 쓰인 ‘淺’의 정확한 의미는 ②와 결부되고 발전된 ‘입안의 앞쪽’ 또는 ‘입안 앞쪽 소리’다. <사진①>에서처럼 ‘ㅇ’은 상하 입술을 연결한 입의 표면으로부터의 거리가 ‘ㆆ’ 보다 더 가까운 ‘입안 앞쪽’ 목소리다.

한편, <사진②>에서처럼 ‘深(심)’은 ‘氵(물 수)’와 ‘罙(깊이 들어갈 미)’자로 이루어져 있다. ‘罙(미)’는 穴(동굴 혈)과 朮(차조 출)이 각각 윗점이 생략된 채로 결합된 자형이다. 罙(미)에서 木(목)자처럼 변한 ‘朮(출)’은 본래 又(†: 손 우)와 주변 작은 점들(후에 긴 선들로 변함)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점들은 차조처럼 찰기가 있어 손에 찰싹 붙는 ‘출미(秫米: 차좁쌀)’들을 나타낸다. 

고로 ‘罙(미)’는 차조처럼 찰기=끈기 있게 굴속으로 점점 더 깊이 들어가는 모습에서 ‘깊이 들어가다, 점점’의 뜻을 나타낸다. 따라서 ‘深(심)’은 깊이 들어가는(罙) 물(氵)의 모양에서 ①물이 깊다, 나아가 ②위에서 밑까지 또는 겉에서 안까지의 거리가 멀다, ③심하다(정도가 지나치다) 등의 뜻을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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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사진2> ‘深(심)’은 깊이 들어가는(罙) 물(氵)의 모양에서 ①물이 깊다, ②위에서 밑까지 또는 겉에서 안까지의 거리가 멀다, ③심하다(정도가 지나치다) 등을 뜻한다. 훈민정음 해례본에 쓰인 ‘深(심)’의 의미는 ②에서 발전된 ‘입안 뒤쪽 소리’이다.(해석: 박대종)
훈민정음 해례본에 쓰인 ‘深(심)’의 의미는 ②와 결부된 ‘입안의 뒤쪽’ 또는 ‘입안 뒤쪽 소리’이다. <사진②>에서처럼 목소리 ‘ㆆ’은 입 표면으로부터의 거리가 ‘ㅇ’ 보다 더 먼 ‘입안 뒤쪽’ 목소리다. 따라서 관련 문장들은 다음과 같이 해석된다.

“•는 혀가 수축돼 그 소리가 입안 뒤쪽에서 나는 후설중성이고, ㅡ는 혀가 조금 수축돼 그 소리가 입안 뒤쪽도 앞쪽도 아닌 중간에서 나는 중설중성이며, ㅣ는 혀가 수축되지 않고 앞으로 펴져서 그 소리가 입안 앞쪽에서 나는 전설중성이다.(•舌縮而聲深, ㅡ舌小縮而聲不深不淺, ㅣ舌不縮而聲淺.)”

“ㅣ 중성이 (발성 준비상태의 위치가) 입안의 뒤쪽(深)ㆍ앞쪽(淺)ㆍ중간(不深不淺)인 후설ㆍ전설ㆍ중설 중성들, 개구도(발음할 때 입을 벌리는 정도)가 크고 작은 중성들 모두에 함께 서로 따를 수 있는 것은, (ㅣ는) 그 혀가 (앞으로) 펴져 입안의 앞쪽에서 나는 소리여서 (다른 중성들과 어울려) 입을 함께 여는 데 알맞기(짝이 맞기) 때문이다.(ㅣ於深淺闔闢之聲, 並能相隨者, 以其舌展聲淺而便於開口也.)”

대종언어연구소 소장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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