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대종 문화소통]훈민정음 해례본에 쓰인 ‘深(심)’과 ‘淺(천)’
박대종의 ‘문화소통’
‘深’과 ‘淺’은 기본적으로 ‘깊다’와 ‘얕다’의 뜻을 나타내는 글자이다. 그러나 ‘깊다’와 ‘얕다’로만 단순 번역할 경우, 해례본의 위 문장들이 나타내고자 하는 의미를 정확히 파악할 수 없게 된다. 올바른 이해를 위해 ‘深’과 ‘淺’자에 대해 심도 있는 인식이 필요한 이유다. <사진①>에서 보듯, ‘淺(천)’은 ‘氵(물 수)’와 ‘戔(작을ㆍ적을 전)’의 합자이다. ‘戔(전)’의 갑골문형을 보면 ‘戈(창 과)’의 방향이 서로 다르다. 두 창이 격돌하여 상대를 뼈가 드러나도록 상해(傷害)하는 모습에서 ‘드러나다, 해치다→상하다→여위어 축나다(수나 양에서 모자람이 생기다)→적다ㆍ작다’ 등을 뜻한다. ‘淺(천)’에서의 ‘戔’은 위의 여러 뜻 중 ‘작다’의 뜻으로 쓰였으니, 淺은 물(氵)의 깊이가 작은(戔) 모양에서 ①물이 얕다, 나아가 ②상하 또는 내외의 거리가 작다=가깝다, ③정도가 약하다(심하지 않다) 등의 뜻을 나타낸다. 지금껏 필자는 해례본에 쓰인 ‘淺’을 ③과 결부된 ‘혀의 수축 정도가 약하다’로 보았다. 하지만 혀의 수축 여부와 거의 무관한 ‘ㅎ’를 고려할 때, 해례본에 쓰인 ‘淺’의 정확한 의미는 ②와 결부되고 발전된 ‘입안의 앞쪽’ 또는 ‘입안 앞쪽 소리’다. <사진①>에서처럼 ‘ㅇ’은 상하 입술을 연결한 입의 표면으로부터의 거리가 ‘ㆆ’ 보다 더 가까운 ‘입안 앞쪽’ 목소리다. 한편, <사진②>에서처럼 ‘深(심)’은 ‘氵(물 수)’와 ‘罙(깊이 들어갈 미)’자로 이루어져 있다. ‘罙(미)’는 穴(동굴 혈)과 朮(차조 출)이 각각 윗점이 생략된 채로 결합된 자형이다. 罙(미)에서 木(목)자처럼 변한 ‘朮(출)’은 본래 又(†: 손 우)와 주변 작은 점들(후에 긴 선들로 변함)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점들은 차조처럼 찰기가 있어 손에 찰싹 붙는 ‘출미(秫米: 차좁쌀)’들을 나타낸다. 고로 ‘罙(미)’는 차조처럼 찰기=끈기 있게 굴속으로 점점 더 깊이 들어가는 모습에서 ‘깊이 들어가다, 점점’의 뜻을 나타낸다. 따라서 ‘深(심)’은 깊이 들어가는(罙) 물(氵)의 모양에서 ①물이 깊다, 나아가 ②위에서 밑까지 또는 겉에서 안까지의 거리가 멀다, ③심하다(정도가 지나치다) 등의 뜻을 나타낸다.
“•는 혀가 수축돼 그 소리가 입안 뒤쪽에서 나는 후설중성이고, ㅡ는 혀가 조금 수축돼 그 소리가 입안 뒤쪽도 앞쪽도 아닌 중간에서 나는 중설중성이며, ㅣ는 혀가 수축되지 않고 앞으로 펴져서 그 소리가 입안 앞쪽에서 나는 전설중성이다.(•舌縮而聲深, ㅡ舌小縮而聲不深不淺, ㅣ舌不縮而聲淺.)” “ㅣ 중성이 (발성 준비상태의 위치가) 입안의 뒤쪽(深)ㆍ앞쪽(淺)ㆍ중간(不深不淺)인 후설ㆍ전설ㆍ중설 중성들, 개구도(발음할 때 입을 벌리는 정도)가 크고 작은 중성들 모두에 함께 서로 따를 수 있는 것은, (ㅣ는) 그 혀가 (앞으로) 펴져 입안의 앞쪽에서 나는 소리여서 (다른 중성들과 어울려) 입을 함께 여는 데 알맞기(짝이 맞기) 때문이다.(ㅣ於深淺闔闢之聲, 並能相隨者, 以其舌展聲淺而便於開口也.)” 대종언어연구소 소장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