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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김사과의 '바깥은 불타는 늪 정신병원에 갇힘'

등록 2020-11-02 15:33:52   최종수정 2020-11-09 09:4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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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바깥은 불타는 늪 정신병원에 갇힘 (사진= 알마 제공) 2020.11.02.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이수지 기자 = 보잘것 없다고 알려진 뉴욕의 식문화에서도 텅 빈 소비문화의 단면이 발견된다.  

작가 김사과는 고급 백화점 지하에 푸드코드 대신 향수 가게가 들어찬 광경에 의아해한다. 도시문명의 모든 것이 총체적으로 진열되어 있어야 할 백화점의 지하에서 번듯한 음식을 먹을 수 없는 상황을 보고는 능청스럽게 "뉴욕에서 먹었던 모든 음식에서는 완곡한 왜곡이 느껴졌다는 힌트를 따라서. 그것은 혹시, 정치적 올바름의 맛이 아닐까?"라는 가설을 세운다.

작가가 거닌 곳들은 원본이 없는 땅, 그래서 완벽한 인공의 세계를 축조할 수 있는, 허공에 뜬 성채로서의 미국이다. 그곳에서 탄생의 순간부터 주도면밀하게 어떤 것들이 도려내진 것 같은 잘 자란 미국 중산층들의 매끈한 결여에서 미국의 미학을 본다.

앙상한 뼈대만 남은 채 절대 꺼지지 않는 불길에 휩싸인 집으로 뉴욕의 이미지를 규정하며 19세기 랭보가 쓴 착란과 절망의 시를 호출하는 첫 번째 글을 넘기자마자, 이야기는 시끌벅적한 대낮의 뉴욕 도서관과 패션 잡지를 한 장 한 장 찢어 만든 것 같은 거리 풍경으로 바뀐다.

 정키 소굴 로워이스트빌리지부터 진정한 도시남녀들의 전시장, 유행의 패싸움장인 첼시, 과거 마약중독자들의 치료소였던 이스트빌리지의 영기(靈氣) 가득한 집까지 거처를 옮겨 다녔던 경험을 풀어놓으며, 철저히 신분에 따라 살아야 할 동네를 정해놓은 뉴요커들의 동네 구획을 소개한다 .

자본의 최정점에 선 도시 뉴욕에서의 삶을 신랄하게 뜯어보고 성찰한 작가에게 뉴욕은 겉으로는 현란한 소비문화의 천국이지만 그곳에서의 삶은 ‘원본 없고, 실체 없이’ 비어 있다. 작가는 이를 '사방이 하얗고 부드러운, 창문 없는 방'인 정신병원의 독방으로 규정한다. 독방의 바깥은 랭보가 '지옥에서 보낸 한 철'에서 묘사한 화려하게 불타오르는 도시 파리와 같고, 그곳의 소시민들은 현혹된 채 절망과 환멸이 기다리는 도시의 늪으로 빠져든다. 228쪽, 알마, 1만4800원.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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