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 국제일반

[백신 전쟁]⑤죽음의 바이러스, 빈국은 못 피한다

등록 2021-01-04 05:00:00   최종수정 2021-01-11 09:37:22
  • 크게
  • 작게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이메일
  • 프린트

백신 '빈익빈 부익부'…빈국은 2024년까지 접종 난항

인도네시아·필리핀 등은 저렴한 중국산 백신 확보

아프리카는 '코백스'만 기다리는데…재정 확보 휘청

associate_pic
[뉴어크=AP/뉴시스] 조 바이든 미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달 21일 델라웨어주 뉴어크에 있는 크리스티애나 병원에서 화이자의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하고 있다. 백신전의 승자로 꼽히는 미국은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하는 제약사의 연구, 제조에 직접 투자하는 방식으로 백신을 먼저 손에 쥐었다. 2020.12.29.

[서울=뉴시스] 양소리 기자 = 전 세계 인구 1%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걸렸다. 지난 2019년 12월 중국 우한(武漢)에서 최초 발견된 바이러스가 1년이 넘는 기간 지구를 돌며 만들어낸 결과다.

코로나19 발발 이후의 세계 각국은 '정상 국가'라는 피니시 라인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백신은 정상 국가로 먼저 도달하기 위한 발돋움판이다. 안타깝게도 상당히 구하기 힘든 발돋움판이다.

백신 '빈익빈 부익부'…가난한 국가는 인구 20% 접종 가능
백신 확보전에서 각국의 재정은 총알이, 외교와 정보력은 방패가 됐다. 총알도, 방패도 갖추지 못한 국가는 더 긴 고통을 겪어야 한다.

재정에 여유가 있는 국가는 미국 화이자·독일 바이오엔테크, 미국 모더나, 영국 아스트라제네카·옥스퍼드 등 세계 주요 백신을 입도선매했다. 미국 존슨앤드존슨(J&J)의 제약부문 계열사인 얀센, 프랑스 제약사 발네바 등이 만든 백신도 확보 현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선매한 물량이 모두 확보된다면 캐나다는 인구 대비 6배 이상, 영국과 미국은 4배 이상, EU와 호주, 칠레는 2배 이상의 백신을 보유하게 된다.

associate_pic
[코벤트리(영국)=AP/뉴시스] 영국의 최초 코로나19 백신 접종자인 마거릿 키넌(90)이 지난 8일 코벤트리 대학병원에서 백신을 맞는 모습. 영국 정부는 전체 인구의 4배에 달하는 물량의 백신을 확보한 상태다. 2020.12.29.

특히 영국, 미국 등은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하는 제약사의 연구, 제조에 직접 투자하는 방식으로 백신을 먼저 손에 쥐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백신 개발 프로그램 '초고속 작전'에 수십억 달러를 투입해 가장 유망한 백신 후보 물질 5종의 연구, 개발, 제조를 지원했다. 미국에서 생산되는 물량을 미국이 선확보하는 조건이었다. 덕분에 미국은 화이자와 모더나, 존슨앤드존슨, 노바백스를 포함해 영국 아스트라제네카, 프랑스의 사노피 등의 백신 8억1000만 회분 선매에 성공했다. 계약을 확대한다면 미국은 총 15억 회분의 백신을 구매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영국 역시 자국 제약사인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의 대부분을 확보한 상황이다. 프랑스의 작은 제약사 발네바를 포함해 영국이 확보한 백신 물량은 총 3억5700만 회분이다. EU도 이들 제약사를 포함해 독일 큐어백으로부터 13억 회분을 확보했다.

반면 저소득 국가는 2024년 전까지 인구 전체에게 접종 가능한 물량을 확보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백신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해 백신의 공동 구매와 배포를 목적으로 한 '코백스 퍼실리티(COVAX facility)'가 구성돼 운영되고 있으나 현재 자금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이다.

뉴욕타임스(NYT)는 코백스가 충분한 재원을 얻어 목표한(10억 회분) 백신을 확보하더라도, 이는 소득 수준이 낮은 국가의 인구 20% 정도가 접종할 수 있는 분량에 불과하다고 전했다.


"눈 돌려 중국·러시아 백신 구매"…백신戰 승기 잡을까?
associate_pic
[반둥=AP/뉴시스] 지난달 7일(현지시간) 인도네시아 반둥에 위치한 국영 제약사 바이오파마 관계자들이 이날 도착한 중국 시노백의 코로나19 백신 상자들을 소독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중국 시노백 바이오테크가 개발한 120만 회 분량의 코로나19 백신이 6일 늦게 인도네시아에 도착했으며 1월 초에 더 많은 백신이 도착할 것이라고 밝혔다. 2020.12.07.

저렴하고 확보 경쟁률이 낮은 중국산과 러시아산 백신을 대량 구매한 국가들도 있다.

인도네시아는 중국 시노백(Sinovac·科興中維)과 시노팜(중국의약그룹)의 백신 도입을 빠르게 결정했다. 이미 지난달 7일 시노백 백신 120만 회분이 1차로 인도네시아에 도착한 상태다.

조코 위도도 대통령은 중국 백신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불식시키기 위해 자국 식약청이 시노백 백신의 사용을 승인하면 자신이 가장 먼저 백신을 맞겠다고 약속했다. 인도네시아는 동남아에서 코로나19 확산의 피해가 가장 심각한 국가다.

동남아에서 인도네시아 다음으로 많은 확진자가 나온 필리핀은 시노백 백신 2500만회분을 올 3월까지 구매할 계획이다. 그러나 여야 의원들은 정부의 결정에 반기를 들고 나선 상태다. 백신의 예방 효과를 신뢰할 수 없다면서다.

필리핀 국회는 시노백 백신의 3상 시험을 진행한 브라질 상파울루주 정부 산하 부탄탕 연구소가 "백신 예방 효과는 50%를 상회한다"고 지적한 점을 꼬집으며 "백신 접종 뒤에도 코로나19에 감염될 확률이 50 대 50이라는 건 웃기는 일"이라고 비난했다.

브라질과 터키 역시 시노백 백신을 확보한 상태다. 터키는 자국에서 실시한 시노백 백신의 3상 시험 결과 91.25%의 예방효과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번주 일반 접종을 실시할 예정이다. 

러시아가 만든 백신 '스푸트니크 V'도 세계 각국으로 판매되고 있다. 아르헨티나는 지난달 24일 스푸트니크 V 백신 사용을 승인하고 30만 회분의 백신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실어왔다. 벨라루스도 러시아 백신을 대량 구매한 상황이다.

브라질도 스푸트니크 V를 전역에서 배포할 예정이라고 앞서 밝혔다. 말레이시아도 스푸트니크 V' 640만 회를 추가 구매하기 위한 협상을 벌이고 있다.

만약 중국과 러시아에서 만든 백신이 기대 이상의 효과를 나타낸다면 더 싼 가격에, 빠르게 백신을 확보한 이들 정상의 판단 덕분에 각국 국민은 보다 빨리 집단 면역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가난한 국가에 백신 기증하라"…세계적 압박
associate_pic
[요하네스버그=AP/뉴시스] 지난달 26일(현지시간) 남아프리카공화국(남아공) 요하네스버그의 한 공동묘지에서 직원들이 시신을 묻기 위해 준비하는 모습. 코로나19 변이 바이러스가 확산되기 시작한 남아공은 12월 누적 확진자 수가 100만명을 넘어섰다. 2020.12.29.

문제는 이마저도 확보하지 못한 국가들이다.

코로나19 변이 바이러스가 확산되기 시작한 남아프리카공화국(남아공)은 지난 12월 누적 확진자 수가 100만명을 넘어섰다. 남아공이 확보한 백신은 '코백스'를 통한 분량이 전부다. 남아공 정부는 이를 통해 올해 초까지 전체 인구 6000만명 중 10%가 백신 접종 마칠 수 있다고 약속했다. 이는 코백스의 성과가 지지부진할 경우 장담할 수 있는 건 없다는 뜻이다.

아프리카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나이지리아 역시 코백스만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나이지리아 정부는 영하 70도에서 저장·유통되어야 하는 화이자·바이오엔테크 백신은 자국이 감당할 설비가 없다고 밝히기도 했다.

백신 확보 상황에 국가별 양극화가 드러나며 부유한 국가들이 백신 물량을 기증하라는 압력도 커지고 있다. 최근 세계적인 비정부기구(NGO)들은 부국에 "빈국의 백신 확보를 위해 백신 조달 일정을 연기해달라"는 요청을 보내기도 했다.

전체 인구의 6배 물량의 백신을 확보한 캐나다의 경우 이미 해외 백신 기증 논의를 시작했다. 호주, 영국, EU도 코백스에 재정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부유국이 백신을 기부해도 세계 나머지 국가들이 올해 말까지 필요한 물량을 확보하기는 힘들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전 세계에 충분한 백신이 확보될 수 있는 시기를 2024년으로 전망하고 있다.

듀크 의대의 크리슈나 우다야쿠다르 박사는 "만약 코로나19 백신이 독감 예방주사처럼 매년 접종이 필요하다면, 모든 예상치는 뒤집힐 것"이라고 암울한 관측을 내놨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Copyright © NEWSIS.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이메일
  • 프린트
  • 리플
위클리뉴시스 정기구독 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