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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지휘봉 든 피아니스트 김선욱 '교감+절제' 빛났다

등록 2021-01-13 10:09:42   최종수정 2021-01-18 10:4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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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피아니스트 김선욱이 12일 오후 롯데콘스터홀에서 KBS교향악단과 함께 지휘자 데뷔무대를 열었다.(사진=빈체로 제공)2021.01.13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남정현 기자 = 13일 롯데콘서트홀 오후 9시, 김선욱은 인터미션(쉬는 시간)이 끝나고 베토벤 교향곡 7번 지휘를 위해 포디엄(지휘대)에 올랐다.

지휘봉을 휘저으며 KBS교향악단의 연주를 시작하는 '지휘자' 김선욱은 피아니스트 김선욱과는 다른 페르소나였다.

전날 열린 독주회에서 보여주었듯이, 피아니스트 김선욱은이 연주를 할 때면 작품에 한껏 취해 몸을 한쪽으로 기울이기도 하고 머리를 흔들기도 하면서 마치 연기자가 연기에 흠뻑 빠져 몰입하듯이 한 편의 음악으로된 이야기를 들려주는 화자에 가깝다.

전날 열린 독주회에서는 베토벤의 후기소나타 30~32번을 70여 분 동안 쉬는 시간없이 격정적으로 끌고 나갔다. 그의 머릿속에 이미 악보가 입력돼 있었기에 악보도 갖고 나오지 않아 격정의 무대를 선보였다. 땀이 송골송골 맺힌 머리를 손으로 쓸어넘길 겨를도 없이 70여 분동안 베토벤에 빠져 온 집중을 쏟는 모습을 보여줬다.

13일 지휘자 김선욱으로서 보여준 집중력은 이와는 결이 달랐다. 포디엄에 오른 그는 신중하게 박자를 세고 연주자들과 교감했다. 왼손으로 누르고 짚어주고, 오른손으로는 띄우고 연주를 주도했다.

하지만 지휘자로서 그의 동작은 과하지 않고, 오버스럽지 않았다. 이마에 맺히는 땀방울은 같았지만, 지휘자로서의 김선욱은 내적으로 열정은 가득차되 겉으로는 절제미가 돋보였다.

경험이 적은 젊은 지휘자들이 자칫 흥분해 박자를 앞설 때가 있다. 또 오케스트라와의 연습 부족, 혹은 이들과의 기싸움으로 지휘와 연주가 따로 노는 경우를 볼 때가 있다.

김선욱은 이를 경계하기라도하듯 데뷔 무대라는 벅차는 마음을 최대한 누르고 딱 필요한 만큼만의 움직임을 그려내려는 듯 보였다.  

특히 2악장에서의 지휘가 인상적이었는데, 2악장은 알레그레토(조금 빠르게)의 템포지만 이 작품에서 가장 느린 악장이다. 첼로와 콘트라베이스 저음부의 처연한 도입이 인상적인 이 악장에서 그의 지휘봉은 바닷속에서 고기가 유영하듯 부드럽고 유연하게 공기 사이를 활공했다.

4악장의 연주가 채 끝나기 직전에 관객의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표는 매진됐지만 두 칸 띄어앉기로 빈 좌석이 굉장히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이 만족감과 놀라움에 내는 작은 탄성은 하나 하나 모여 2000여 석 규모의 대형 공연장인 롯데콘서트홀을 가득채웠다.

김선욱은 전매특허인 풍성한 생머리를 휘날리며 무대 앞뒤로 90도 인사를 한 뒤 이례적으로 "눈도 많이 왔는데 이렇게 와주셔서 감사하다. 이렇게 지휘를 시작을 하네요"라고 관객에게 벅찬 마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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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피아니스트 김선욱이 12일 오후 롯데콘스터홀에서 KBS교향악단과 함께 지휘자 데뷔무대를 열었다.(사진=빈체로 제공)2021.01.13 [email protected] 
어릴 적부터 마에스트로 정명훈의 팬으로 유명한 그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지휘자를 선망했다. 중학교 이후엔 피아노 악보보다 오케스트라 총보를 훨씬 많이 샀다는 그는 2010년 영국 왕립 음악원에서 지휘 공부를 시작했다.

하지만 그의 정식 지휘 데뷔 무대는 11년이 지난 어제 이루어졌다. 2015년에 영국 본머스 심포니와 라흐마니노프를 협연한 후 이벤트 형식으로 앙코르곡으로 차이콥스키 '호두까기 인형' 중 파드되를 지휘하기는 했지만 하나의 작품 전체를 지휘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무대에 앞선 인터뷰에서 "10대 떄 독주회를 앞둔 기분"이라며 "기대도 많고 두려운 것도 많다"고 했던 그, 이제는 두려움보다 앞으로 남은 지휘 여정의 기대가 더 크리라.

피아노로 명성을 키우고 뒤이어 지휘자로도 성공한 음악가들이 많이 있다. 크리스토프 에센바흐, 다니엘 바렌보임, 앙드레, 프레빈, 게오르그 솔티…머지않아 그 목록에 김선욱의 이름이 더해질 날을 기대해 본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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