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 문화일반

'그림같지 않은 그림'의 진면목...정상화 화백, 국립현대미술관서 개인전

등록 2021-05-21 12:00:00   최종수정 2021-05-31 10:14:16
  • 크게
  • 작게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이메일
  • 프린트

서울관서 22일 개막...회화·자료등 100여점 전시

'뜯어내고 메우기'…'단색조 거장' 60년 작업 한눈

associate_pic
[서울=뉴시스] 정상화, 무제 74-F6-B, 1974, 캔버스에 유채, 226×181.5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2021.5.21.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그림 같지 않은 그림'이다.

#1979년 파리에 살던 그가 서울 전시를 위해 잠시 귀국했을 때다. 뭉쳐온 그림을 풀어보던 김포 공항 세관이 "그림이 어디 있느냐"고 물었다. 전시장에서도 마찬가지. 관람객들은 "그런데, 그림은 어디 있느냐"고 되묻곤 했다.

#처음 그림이 팔린 것은 그의 나이 55세 때다.

"그림이 돈으로 바뀐다는 것이 이상했다"는 그는 "그 돈으로 최고급 물감과 재료를 샀다"고 했다.

아무것도 없는 그려지지 않은 그림, 그의 그림은 40여년이 지난 현재 억대 작품으로 치솟아 미술시장 '블루칩'이 됐다.

일명 '벽지같은 그림'으로 유명한 정상화(94)화백이다. 박서보·이우환·하종현·정창섭 등과 함께 '단색화 어벤저스'로 통한다. 2014년 스위스 아트바젤에서 떠올랐다. 당시 "웃돈을 얹어 주겠다"는 컬렉터도 생길 만큼 그의 단색화는 해외 경매와 해외 아트페어에서 팔려나갔다.

 현재 그의 최고 낙찰가는 11억3032만원으로 2015년 서울옥션 홍콩경매에서 낙찰된2005년 작 '무제 05-3-252005'다.

#작업은 '뜯어내기'와 '메우기'가 특징이다.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는 대신 이 독자적인 작업 방식을 40여년간 고수해오고 있다.

정상화 화백은 "단색으로 보이지만 단색이 아니다"라는 입장이다. "단색 속에도 보이지 않는 여러가지 색을 사용한다"는 정 화백은 "다 같은 흰색이 아니라 흰색 속에 여러 색을 혼합해가며 사용하며, 보이는 걸 그리는 게 아니라 보이지 않는 걸 그리는 것"이라고 했다.

작품 제목은 '무제'. "그림은 말이 많으면 못쓴다"는게 그의 철학이다. 정상화의 작품에는 지난한 노동의 행위가 집약되어 있다. 적게는 수개월에서 많게는 1년의 시간이 걸리는 이러한 노동 집약적인 행위는 고도의 정신적 인내심과 육체적 몰입을 요구한다.

#지금까지 조수를 한 번도 둔 적이 없다는 그는 작품 제작의 모든 과정을 온전히 본인 스스로 해나간다.

자신의 작업을 '과정'으로 정의 내린 화백은 자신의 작품을 "되풀이 되는 나의 일상에 대한 기록"이라고 했다.

"지금 작업을 하는데도 늘 긍정과 부정이 따른다"면서 시간을 화면속에 차곡차곡 쌓고 있는 화백은 "예술은 일 자체가 끝이 없고 끝없는 일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associate_pic
[서울=뉴시스] 국립현대미술관 정상화 개인전 포스터
associate_pic
[서울=뉴시스]김형수 기자 = 단색화로 유명한 정상화 작가의 개인전이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5월 22일부터 9월26일까지 열린다. 정 작가가 자신의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2021.05.21. [email protected]

'정상화'...국립현대미술관 정상화 대규모 개인전
'그림같지 않은 그림'의 진면목을 볼수 있는 전시가 마련됐다.

정상화 화백의 대규모 개인전이 국립현대미술관(MMCA, 관장 윤범모)서울에서 22일 개막한다.

'정상화' 이름 그대로 단 전시 제목처럼 어느 수식어도 필요치 않는 독창적인 정상화 화백의 화업을 총망라하고 재조명하한다. 회화 및 자료 100여 점을 전시한다.
 
정상화는 회화를 근간으로 판화, 드로잉, 데콜라주(décollage), 프로타주(frottage) 등 다양한 기법을 실험하며 평면작업의 가능성을 탐색해왔다.1990년대 이후에는 작가 특유의 수행(修行)적 방법론을 창안하여 독보적인 단색조 작품을 보여주고 있다.

이번 전시는 정상화의 작품이 지닌 미술사적 의미를 재조명하고 동시대적 맥락을 살펴볼수 있다.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정상화의 60여 년 화업을 총망라한 이번 전시는 한국 추상미술의 위상을 높이는데 기여한 작가의 진면목을 살펴볼 수 있는 기회”라며 “한국 미술사의 맥락에서 작가의 독보적인 작품세계를 재조명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associate_pic
[서울=뉴시스] 정상화, 무제 95-9-10, 1995, 캔버스에 아크릴릭, 228×182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2021.5.21. [email protected]
associate_pic
[서울=뉴시스]김형수 기자 = 단색화로 유명한 정상화 화백의 개인전이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5월 22일부터 9월26일까지 열린다. 정 작가가 자신의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2021.05.21. [email protected]

정상화만의 추상실험...'뜯어내고 메우기'
정상화는 다양한 기법과 매체 실험을 통해 캔버스 위에 물감을 '뜯어내고 메우기'를 바탕으로 한 자신만의 독특한 조형방법론을 발견해냈다.

정상화만의 추상실험의 결실인 격자 구조 화면은 치밀하게 계획된 정신적 공력의 결과인 동시에 고된 육체적 수고의 결정체다.

단조롭고 수고스러운 반복을 축적하는 과정을 통해 정상화는 독자적인 조형세계를 만들어냈다. 

우선 캔버스 윗면 전체에 붓을 사용하여 고령토 약 3-5mm를 덮어 바르는데, 이를 일주일 이상 작업하고 난 다음, 캔버스 뒷면에 미리 그은 수직 수평의 실선 또는 대각선을 따라 주름잡듯이 접는다.

과정에서 화면의 균열이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는다. 조각이나 공예 작업에서 볼 법한 도구와 재료, 그리고 행위를 통해 정상화는 자신의 화면을 직조해나간다.

꺾어 접거나 칼로 그어 만든 균열은 작가의 '뜯어내고 메우는' 독특한 행위를 통해 깊이를 더하게 된다.
작은 사각형들에서 고령토를 떼어내고 그 자리에 아크릴 물감 메우기를 수차례 반복함으로써 화면은 서로 다른 운율을 가진 격자들의 합이 된다.

associate_pic
[서울=뉴시스] 정상화, 무제 07-09-15, 2007, 캔버스에 아크릴릭, 259×194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2021.5.21. [email protected]

단색조 추상~격자화의 완성~모노크롬을 넘어서
"이번 전시에서는 작가가 머물며 작업했던 여러 공간(서울, 고베, 파리, 여주)과 시간을 잇고 연대기적 흐름을 큰 축으로 하여 그의 독특한 조형 체계가 정립된 과정을 추적했다"

국립현대미술관 김형미 학예연구사는 "이와 동시에 종이와 프로타주 작업 등 국내에서 자주 소개되지 않은 작품들과 미발표작들을 통해 작가의 조형 연구와 매체 실험을 조명한다"고 소개했다.

전시는 ▲추상실험,▲단색조 추상으로의 전환 ▲격자화의 완성▲모노크롬을 넘어서 등 4개의 주제와 특별 주제공간인 ‘종이와 프로타주’와 함께 작가의 작업 세계를 보다 다각적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영상자료와 기록물을 비롯해 작가의 초기 종이 작업을 소개하는 아카이브 공간으로 펼쳤다.
associate_pic
[서울=뉴시스]김형수 기자 = 단색화로 유명한 정상화 작가의 개인전이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5월 22일부터 9월26일까지 열린다. 정 작가가 자신의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2021.05.21. [email protected]

associate_pic
[서울=뉴시스] 정상화, 작품 64-7, 1964, 캔버스에 유채, 162×130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첫 번째 ‘추상실험’은 1953년부터 1968년까지 학업과 작품 활동이 이어지는 시기이다. 서울에서 활동하며 재현적 구상회화에서 벗어나 전후 1세대 청년작가로서 시대적 상실과 불안을 반영한 표현주의적 추상 작품 '작품 64-7'(1964), '작품 65-B'(1965) 등을 선보인다.

두 번째 ‘단색조 추상으로의 전환’에서는 작가가 일본 고베에서 활동한 1969년부터 1977년까지의 작품을 볼 수 있다.  표현주의적 추상에서 벗어나 단색조 추상 작업을 전개하기 시작했던 시기로 '작품 G-3'(1972), '무제 74-F6-B'(1974) 등이 소개된다.

세 번째 특별 주제공간인 ‘종이와 프로타주’는 1970년대와 1980년대 캔버스보다 비교적 다루기 쉬웠던 종이를 이용해 재료와 기법을 탐구하기 시작했던 시기로, 국내에서는 비교적 덜 알려진 당시의 종이 작업과 프로타주 작업 등을 선보인다.

네 번째 ‘격자화의 완성’에서는 1977년부터 1992년까지, 즉 일본 고베 시기 이후 이어진 파리 시기 작품들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시기 작가는 고베에서 발견해낸 “뜯어내고 메우기” 방법을 통한 단색조 추상의 완성도를 높이고 다양한 변주를 드러낸다.

다섯 번째 ‘모노크롬을 넘어서’에서는 한국으로 영구 귀국한 1993년부터 현재까지의 작품을 소개한다. '무제 95-9-10'(1995), '무제 07-09-15'(2007) 등의 작품을 통해 그의 단색조 추상의 정수, 균열과 지층의 깊이를 통한 작가의 예술적 성취를 확인할 수 있다. 전시는 9월 26일까지.

associate_pic
[서울=뉴시스] 정상화 화백.사진=이만홍,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2021.5.21. [email protected]
정상화 화백은 누구?
1932년 경상북도 영덕에서 출생했다. 1953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에 입학했다. 1957년 졸업 이후 한국현대미술가협회(1956–1961)와 악뛰엘(1962~1964)의 멤버로 한국 전위미술 단체에서 활동했다.

1967년 프랑스 파리로 1년간 떠나있었던 정상화는 1969년부터 8년간 일본 고베에서 체류하며 활동했고, 1977년부터 13년간 다시 파리에 머물며 작업을 이어나갔다.

1992년 11월 파리에서 영구 귀국하여 1996년 경기도 여주에 작업실을 마련한 후 줄곧 한국에서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여주에 완전히 정착한 이후 백색 단색조 회화를 주로 제작하며 작품의 완숙미를 극대화해나갔다. 매일같이 생활 속에서 묵묵히 예술을 실천하며 과정 자체를 반복하고 있다.

2011년 프랑스 생테티엔 현대미술관에서 대규모 개인전을 가진 바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삼성미술관 리움, 도쿄현대미술관, 구겐하임 아부다비 등 국내외 유수의 미술관에서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Copyright © NEWSIS.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이메일
  • 프린트
  • 리플
관련기사
위클리뉴시스 정기구독 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