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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언의 책과 사람들]'호박꽃 초롱'과 맞바꾼 '유랑'

등록 2021-06-05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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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유랑' 표지(사진=한상언 제공)2021.06.01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1926년 나운규가 만든 '아리랑'이 공전의 성공을 거둔 후 조선에서는 영화제작에 대한 관심이 크게 늘었다. 1924년 부산에서 조직된 조선키네마주식회사에서 나운규와 함께 영화제작에 참여했던 안종화는 회사가 문을 닫은 후 지방을 떠돌다 서울로 올라와 나운규의 전성기를 목도하게 된다.

1927년 4월, 우미관 앞에서 사진관을 하던 청년 이우는 안종화에게 영화필름을 제공해 주겠다고 약속하고 영화제작을 권했다. 안종화는 이번 기회를 이용해 영화도 제작하고 후배들도 양성할 부푼 꿈을 갖고 조선영화예술협회를 만들었다.

그해 여름 무렵, 조선영화협회는 영화인과 영화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을 망라해 '영화인회'라는 범영화인 단체를 조직하고 후진을 양성하기 위해 연구생을 뽑아 영화교육을 시작했다. 영화인회의 야심찬 시작에도 불구하고 신문사 영화기자들은 이곳을 탈퇴해 '찬영회'라는 별도의 단체를 만들었고, 그 외 영화상영·배급·제작에 종사하는 영화인들은 분망한 활동으로 영화인회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자연 유명무실한 영화인회는 문을 닫았으며 연구생들을 지도하는 일은 오로지 안종화의 몫이었다.

윤기정, 이종명, 김영팔, 임화, 강호 등 안종화를 옆에서 돕던 인물들과 연구생으로 참여한 인물들은 카프와 관련되어 있었다. 이중 카프의 지도자였던 윤기정은 김유영, 서광제, 추민 등을 새롭게 카프에 가입시켰다.

1927년 연말이 되었다. 연구생들의 연구기간이 끝나자 안종화는 예정대로 영화제작을 준비했다. 연구생들은 안종화가 쓴 '고향'이라는 제목의 시나리오를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 연구생들의 의견을 받아드린 그는 좀 더 진보적인 내용의 시나리오를 쓰겠다고 약속하고 새로운 시나리오 작성에 나섰다.

시나리오가 완성되어 합평이 열리는 날이 되었다. 윤기정의 주도하에 열린 합평회는 안종화에 대한 성토대회로 바뀌었다. 안종화는 연구생들에 의해 제명되었고 이우가 제공한 필름은 연구생들의 손에 넘어갔다.

연구생들은 자체적으로 영화를 제작하기로 했다. 윤기정과 서광제가 돈을 내서 제작비를 충당했다. 이종명 원작의 '유랑'은 김영팔이 각색을, 김유영이 연출을 담당했으며 모든 배역은 연구생들이 나눠 맡았다. 제작비를 아끼기 위해 추민의 본가가 있는 남한산성의 산성마을에서 로케이션이 이루어졌다. 비참한 농민들의 생활을 소재로 한 영화 '유랑'은 그렇게 완성되었다.

영화가 완성된 1928년 박문서관에서는 이종명의 영화소설 '유랑'이 발간된다. 이 책은 시인으로 유명한 임화가 장정을 맡았다. 그는 영화에서 주인공 역을 맡기도 했다.

내가 소장하고 있는 이 책은 근대서지학회 회장인 오영식 선생이 소장한 것을 내가 가지고 있던 강소천의 시집 '호박꽃 초롱'과 맞바꾼 것이다. 처음 책을 모으기 시작하면 귀하다는 것을 만져보는 재미로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수집한다. 그러다가 얼마간의 책이 모이게 되면 선택과 집중을 하게 마련이다. 나의 주요 수집 대상은 1960년대 이전 북한 책들이지만 내 전공과 관련된 영화관련 고서들도 수집하고 있기에 오 선생님의 교환 요청에 흔쾌히 응했다.

'유랑'은 카프영화인들이 만든 첫 번째 영화로 1920년대 후반 프롤레타리아 영화운동의 시작을 알린 작품이다. 영화소설 '유랑'은 필름으로 남아 있지 않은 이 영화의 모습을 유추케 하는 중요한 자료이다. 더불어 이종명, 임화, 김유영 등 한때 프롤레타리아 영화운동의 한복판에서 활동하던 인물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책이다.


▲한상언영화연구소대표·영화학 박사·영화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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