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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가 흔들린다②]반복되는 軍 성폭력…솜방망이 처벌이 문제 키워

등록 2021-06-04 07:00:00   최종수정 2021-06-15 08:4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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軍 성폭력 사건 지속 발생…처벌은 지지부진

"가해자 중심논리, 군 위계 속에 박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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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전진환 기자 = 극단적인 선택을 한 공군 여성 부사관을 성추행한 혐의를 받는 사건의 피의자 장모 중사가 2일 오후 서울 용산구 국방부 보통군사법원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국방부 제공) 2021.06.02.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박대로 기자 = 지난달 공군 제20전투비행단에서 여군 이모 중사가 상급자인 남군 장모 중사에게 성추행을 당한 뒤 극단적 선택을 했다.

장 중사는 회식 후 귀가하는 차량에 이 중사와 동승한 뒤 강제추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사건 후 장 중사와 동료 부사관들은 이 중사를 회유하고 협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이 중사는 혼인신고 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중사는 마지막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어 가족에게 보냈다.

최근에는 공군 제19전투비행단 남군 간부가 여군 숙소에 침입해 신체와 속옷을 불법 촬영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 간부는 여군을 불법 촬영한 뒤 여군 이름 별로 사진을 저장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과정에서 해당 간부에 대한 처벌과 인사조치가 신속히 이뤄지지 않았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군인권센터는 "공군 도처에서 성범죄가 연일 폭로되고 있다. 공통점은 가장 기본적인 피해자 보호 조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라며 "곳곳에서 피해자들이 두려움을 느끼고, 죽음에 이르기까지 한다. 총체적인 피해자 보호 실패"라고 지적했다.

군 내 성폭력 사건은 매년 반복되고 있고 사건 발생 후 가해자 처벌은 지지부진하다.

2013년 스스로 목숨을 끊은 육군 15사단 여군 오모 대위는 직속상관인 노모 소령의 성추행과 구타, 가혹행위로 우울증 등 정신질환을 겪었다. 오 대위의 일기장과 유서에는 '내가 사라졌으면 좋겠다', '내 안의 어둠이 커지는 게 보인다'는 등 괴로운 심경이 담겨 있었다.

해군본부 소속 모 여군 대위는 2017년 5월24일 자신의 원룸에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숨진 대위 주변에는 '빈손으로 이렇게 가는가 보다', '내일쯤이면 난 이 세상 사람이 아니겠지' 등이 적힌 메모지들이 흩어져 있었다. 성폭행 피의자로 지목된 모 대령은 부서 회식 후 성관계를 맺은 사실은 인정했지만 "술에 취해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2018년에는 장군들의 성폭력 사건이 잇따랐다.

7월9일 육군 모 준장이 부하 여군 성추행 혐의로 보직해임됐고 같은달 24일 육군 모 소장이 부하 여군에 부적절한 신체접촉을 한 혐의로 보직해임됐다. 같은달 해군 모 준장 역시 부하 여군이 만취하자 성폭행을 시도한 혐의로 긴급 체포됐다.

군 성폭력 증가세는 통계로 입증된다. 국방통계연보에 따르면 2007년 발생한 전체 범죄유형별 심판사건 현황 2918건 중 성범죄는 73건으로 전체의 약 2.51%였지만 2016년에는 3185건 중 성범죄가 288건으로 9.04%를 차지했다. 국방부는 2017년 중앙부처 중 1000명당 성범죄 건수가 가장 많은 기관으로 선정되는 불명예를 안기도 했다.

군 내 성폭력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이 군 성범죄가 줄어들지 않는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2014~2016년 국내 성범죄 판결의 연도별 실형선고 비율은 2014년 18.6%, 2015년 20.4%, 2016년 22.8%로 평균 20.6%인 반면 같은 기간 군 내 성범죄 실형 선고 비율은 2014년 15.9%, 2015년 11.6%, 2016년 11.0%로 평균 12.8%에 그쳤다.

군 내 성범죄자에 대한 재산형, 집행유예, 선고유예 판결이 높은 점 역시 문제다. 군 내 성범죄를 저지른 가해자 중 상당수가 교정기관에 수용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교정·교화 효과를 기대할 수 없는 측면이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박희균 전주대 강사는 '군 내 성범죄 예방 및 대응방안에 관한 연구­미국 SAPRO를 중심으로' 논문에서 "양형 기준 적정화 및 명확한 법 적용을 위해 사법부의 '성범죄 양형기준'과 같이 명확한 기준을 설정해 관대한 처벌이 이뤄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 강사는 또 "명확한 법 적용을 위해 군 검사 및 군 판사에 대한 형량 구형 및 선고의 모니터링 활동을 강화하고 징계조치 강화를 통해 자의적인 법 적용을 하지 못하도록 할 것을 제안한다"며 "군 자체 해결이 어려울 경우 별도의 민간조직을 통한 조사 및 처리를 위탁하는 방안을 제안한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남성 중심적 군 문화가 한계에 봉착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서동광(한양대 석사)은 '군대 내 성폭력 피해 병사들의 경험에 관한 질적 연구' 논문에서 "성폭력을 친밀감이나 장난 등으로 미화시키는 가해자 중심논리가 군 위계의 엄격함 속에 뿌리 깊게 박혀 있다"며 "군에서는 피해자의 신고내용에 대한 보안이 철저하지 않으며, 가해자에 대한 온정주의나 부대 내 응집력을 강조하는 군의 문화가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는 "성폭력 피해를 '별 것 아닌 일'로 치부하게 만드는 폐쇄적인 남성 중심의 군대 문화를 뜯어 고쳐야 한다"며 "이미 한참이나 늦은 군대 내 성평등 정의 실현을 더 지연시켜선 안 된다"고 촉구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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