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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연희의 타로 에세이] 낙타는 두 번 무릎 꿇는다

등록 2021-06-19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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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로 8번 카드 ‘힘’.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그해 여름은 기상 관측 사상 손에 꼽힐 정도로 무더웠다. 난 8차선 정도 되는 건널목에 있었다. 가만히 서 있는데도 땀이 주르륵 흘렀으며 발밑에서도 지열이 후끈후끈 올라왔다. 횡단보도에는 아무도 없었다. 반대편에 늙수그레한 노인 한 명만이 서 있을 뿐이었다. 

사막을 건너는 법
이윽고 신호등이 바뀌었다. 질주하던 자동차는 홍해가 갈라지듯 건널목을 사이에 두고 멈췄다. 노인과 나는 길을 건너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노인의 고개와  어깨는 한쪽으로 지나치게 기울어 있었다. 오른손은 가슴에 꼭 붙인 채 왼발을 질질 끌며 걷고 있었다. 횡단보도가 긴 탓도 있었지만 노인이 채 절반도 오지 않았는데 신호등이 바뀌었다. 성질 급한 차들이 먼저 클랙슨을 울려댔다. 그러자 한 마리 짖으면 영문도 모르고 일제히 따라 짖는 개들처럼 여기저기서 클랙슨을 울러댔다. 아스팔트에서는 뜨거운 열기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고 한껏 달궈진 자동차 상판에서는 금속성 햇빛이 흐물거렸다. 여기저기 울려대는 클랙슨 소리와 폭염이 뒤엉킨 횡단보도는 흡사 열사의 사막 같았다.

그런데도 노인은 아랑곳 않고 처음 보폭 그대로 정성스럽게 발자국을 떼놓고 있었다. 아니 속도를 낼 수 없었을지 모른다. 온 정신을 집중해 발길을 한 땀 한 땀 옮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 장면을 목격하고 난 ‘낙타는 방향이다’라는 시를 썼다. 노인의 모습에서 느릿느릿 사막을 종주하는 낙타의 모습이 얼핏 오버랩되었기 때문이다.

태양을 응시하는 법
낙타는 길게 잘 뻗은 다리만큼 잘 달릴 수 있는 동물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왜 달리는 것을 포기했을까. 낙타의 고향은 원래 북아메리카 사바나 초원이었다. 180만년 전 빙하기가 오면서 낙타는 초원을 버리고 사막으로 이주했다. 어떤 이는 낙타가 평화를 사랑하는 동물이어서라고 한다. 약육강식이 없는 세상. 더는 싸우기 싫어서 모든 동물이 버린 가장 척박한 사막에서 살기로 결심한 것이라고 말이다.

사막으로 간 낙타는 체질을 개선했다. 하루 200ℓ의 물을 마셔 위에 저장했고, 등에 혹을 키워 지치면 혹의 지방을 분해해 사용했다. 물 없이 3일 동안 300㎞를 걸을 수 있도록 오줌도 농축해서 누고, 41도까지는 땀도 흘리지 않았다.

그러나 낙타가 사막에서 가장 먼저 한 것은 태양을 마주하는 법이었다. 작열하는 태양을 피하지 않고 정면 응시했다. 그러자 당장 얼굴은 뜨겁지만 몸에 그늘을 만들어 더위를 어느 정도 피할 수 있었다.

강렬한 햇볕과 뜨거운 모래 태풍, 밤낮의 뜨거운 기온 차와 혹독한 갈증. 사막을 횡단하기 위해서는 빠른 질주보다는 오래 견디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낙타는 알았던 것이다. 

시간을 길들이는 법
이렇게 참을성 많은 낙타도 두 번 무릎을 꿇는다. 한 번은 강한 모래바람이 휘몰아칠 때 무릎을 꿇은 채 모래폭풍이 지나길 기다리고, 나머지 한 번은 죽을 때라고 한다. 내색도 않은 채 뚜벅뚜벅 걷다가 갑자기 무릎을 꿇은 채 숨을 거둔다고 한다.

타로 8번 카드의 이름은 ‘힘(Strength)’이다. 그런데 ‘Power’가 아니라 ‘Strength’라고 했을까? 영어 사전을 찾아보니 ‘Power’는 통제나 권력 등의 외부적인 의미가, ‘Strength’는 내구력, 견고성, 용기 등의 내부적 의미가 강했다.

8번 카드를 굳이 Strength라고 한 것은 힘 중에서도 내면의 힘을 말하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8번 카드의 키워드 중 인내가 포함돼 있다. 인내란 힘을 발산하는 것이 아니라 안으로 응축하는 것이기에 시간이 필요함, 부드러운 카리스마 등으로도 해석한다.

그런데 여신이 쓰다듬고 있는 사자가 내겐 상처나 트라우마의 상징처럼 보였다. 잠복해 있다 언제든 나를 해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야수로 표현한 것이 아닐까. 내 안의 야수를 통제하고 컨트롤 할 수 있는 것은 완력이나 강압이 아닌 바로 내면의 힘이라고. 또한 여신의 머리 위에 떠 있는 뫼비우스 띠처럼 내면의 야수성을 어떻게 길들이냐에 따라 그 힘은 무한대로 표출될 수 있다고 말이다.  

사바나에서 살 때, 낙타는 미처 몰랐을 것이다. 자신이 물 없이 3일 동안 무려 300㎞나 걷고, 작열하는 태양을 정면으로 마주 볼 수 있게 될 줄은. 등에 혹을 달게 될 줄은. 자신에게 그런 능력이 잠재해 있음을 미처 몰랐을 것이다.  

이처럼 내면의 힘이란 시간을 길들이는 일이기도 하다. 내 안의 야수를 길들이는 일, 내 안의 공격성과 화해하는 일. 느리게 걸어도, 다리가 말을 안 들어도, 때로 무릎이 깨져도 나를 미워하지 않는 일…

▲조연희 '야매 미장원에서' 시인 [email protected]

※이 글은 점술학에서 사용하는 타로 해석법과 다를 수 있으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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