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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언의 책과 사람들]영화여 침을 뱉어라

등록 2021-09-11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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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영화여 침을 뱉어라'(사진=한상언 제공)2021.09.06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2007년부터 해오던 대학 강의를 이번 학기 들어 그만두었다. 내 마지막 강의는 지난 학기 경희대학교 연극영화학과에서 강의한 한국영화연구 수업이었다.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발간하는 친일인명사전 영화분과 편찬위원으로 함께 있었던 이효인 교수의 추천으로 시작한 강의였다. 10년 넘게 학생들과 만나 한국영화사에 대해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 참으로 감사한 시간이었다.

강의를 그만두고 꼭 해야 할 일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막연히 마흔 다섯 정도에는 다른 일을 해보자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 뿐, 특별히 대단한 계획을 갖고 있진 않았다. 생각해보면 몇 년 전부터 개인 연구소를 내고 몇 권의 책을 출판하고 작은 규모의 전시를 열었던 것이 내 나름의 준비였는지 모르겠다.

한동안 공부하는 마음으로 유튜브를 열심히 봤다. 그리고 나선 그동안 내가 강의했던 수업 내용을 유튜브 콘텐츠로 만들어 올리기로 마음먹었다. 우선 ‘비밀 탐사대-비탐인’이라는 채널을 만들어 첫 번째 촬영을 했다. 영화감독 조경덕 선배가 촬영을 도와줬고 한국영화사 연구자인 남기웅 박사가 함께 출연해줬다. 20년 만에 다루게 된 편집 프로그램을 며칠 사용해 보니 간단한 기능은 금방 익숙해졌다. 그렇게 첫 번째 콘텐츠로 초창기 여배우 이월화에 대한 영상을 만들어 유튜브에 올렸다.

페이스북에 유튜브 개통 소식을 올리자 여러 페친들이 새로운 출발을 축하해줬다. 그중 이효인 교수는 참고할 만한 콘텐츠를 링크해주는 것은 물론 향후 발전방안까지도 고민해 몇 가지 계획안을 간단히 정리해 보내주기까지 했다.

이 교수의 이러한 계획성은 남달리 치밀하고 예민한 성격에서 온 것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 에세이 책이기도 한 ‘영화여 침을 뱉어라’(영화언어, 1995)는 날카롭고 뾰족한 이효인의 송곳 같은 언어가 돋보이는 책이다. 당시 평론가로서 누구보다 예리한 필봉을 한창 휘두르던 그의 이면에 여리고 약한 눈으로 다양한 욕망에 휩싸여 발버둥 치고 있는 한 인간이 웅크리고 있음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있기도 하다. 어떤 면에서 일기장을 훔쳐보는 것과 같은 관음증적 매력이 있다.

어느 해인가 한양대학교에서 한국영화사 강의를 하면서 학생들에게 이 책을 읽고 감상문을 제출하는 과제를 낸 적이 있었다. 영화를 전공하는 20대의 젊은 학생들에게 영화에 대해 고민하던 1990년대 30대 나이의 평론가의 솔직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이 책을 읽은 대부분의 학생들은 20여 년이 지난 지금 이 책의 저자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해했다. 어떤 학생은 그가 되고 싶어 하던 교수가 되어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는 점을 들어 다행이라고 표현하기도 했고, 다른 학생은 영상자료원장이 된 그가 그렇게나 신랄하게 비판하던 위선적이고 타락한 기성세대의 대열에 선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을 전하기도 했다.

이 책을 영화를 전공하는 대학생들에게 읽어보게 한 내 나름의 이유는 1990년대 30대 나이의 한 영화평론가가 지닌 고민의 무게와 크기를 지금의 젊은이들의 그것과 비교해 보고자 하는 것이 아니었다. 어느 시대나 크건 작건 그 나이에 맞는 고민을 이고 살기 마련이고 고민과 투쟁하는 하루하루의 삶을 통해 나날이 성장한다는 메시지를 이 책을 통해 전달해 주고 싶어서였다. 나의 이러한 의도가 학생들에게 제대로 전달됐는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내가 책을 읽으며 책 속의 그와 마찬가지로 아이들의 유치원 등하교를 책임지고 있었던 당시에 느꼈던 공감 같은 것을 학생들이 느꼈다면 그것으로 됐다. 공감이야 말로 에세이가 지닌 최대의 미덕일 테니 말이다.

▲한상언영화연구소대표·영화학 박사·영화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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