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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언의 책과 사람들] 그는 왜 월북한 미술사가를 주목했나

등록 2021-10-09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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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남정현 기자 = 얼마 전 내가 운영하고 있는 유튜브 채널에서 미술사가인 홍지석 선생을 초대해 조각가 문석오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

문석오는 석공이나 목공이 아닌 근대적 의미의 조각을 시작한 우리나라 초창기 조각가 중 한 명으로, 만경대 혁명유가족 학원에 세워진 북한 최초의 김일성 동상을 제작하는 등 북한 정권 수립 당시 국가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 인물이다.

비록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조각가이자 식민지 조선 해방운동에 온 몸을 바친 혁명가 김복진에 가려져 제대로 주목받지 못하고 있지만, 문석오는 우리나라 조각가 최초로 동상(평양의 사회사업가 백선행 동상)을 제작하는 등 근대적 의미의 기념비 제작에 있어 뛰어난 업적을 가지고 있다. 그가 북한에서 활동하지 않았다면 그에 대한 평가는 지금보다 훨씬 높았을 것은 자명하다.

초기 북한 미술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자연스럽게 홍 선생의 저서 '북으로 간 미술사가와 미술비평가들'로 화제가 옮겨 갔다. 이 책은 김용준, 리여성, 김주경, 한상진, 정현웅, 강호, 박문원, 조양규 등 총 8명의 미술사가와 미술비평가들의 행적과 주요한 활동 내역들을 살핀 한국 근대 미술사 연구의 필수적인 책이다.

평소 이 책에 대해 궁금했던 점을 가지고 있던 나는 홍 선생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첫 번째는 '왜 미술가가 아닌 미술사가와 미술비평가들에 주목했느냐'하는 물음이었다. 세상에는 유명하든 그렇지 않든 미술가나 미술사를 다룬 글과 책이 넘친다. 미술 연구자들의 경우 대부분 미술작품이나 미술사, 중요 인물들에 대해 탐구한다. 미술사가나 미술비평가에 주목한 책은 찾기 쉽지 않다. 그렇기에 이 책은 아주 독특한 책이자 낯선 책이기도 하다.

홍 선생은 남북 교류가 원만하게 이루어지지 않는 가운데 접하기 어려운 북한 미술을 연구하기 위한 방편으로 미술사가와 미술비평가들의 글을 연구의 재료로 삼았다는 대답을 줬다. 그러고보니 책에 수록된 미술사가들과 미술비평가들은 당대의 이름 난 미술가이기도 했다.

또 그들의 글을 통해 지금은 사라졌거나 북한에 있어 우리가 볼 수 없는 당대의 미술 작품을 간접적으로 이해할 수 있기에, 공백이 많은 북한의 문예 연구에 대한 연구방법으론 꽤 유용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번째는 '북으로 간 미술가와 미술비평가들에 견줄만한 남한의 인물들이 있느냐'는 질문이었다. 홍 선생과 나는 국내 주요 대학에서 미술사를 가르쳤던 여러 인물들의 이름을 꺼냈다. 홍 선생은 이 미술사가들이 북으로 떠난 1950년대에 남한의 미술사 연구는 한동안 학문적 단절을 이야기 할 정도의 손실이 컸다는 말로 그 평가를 대신했다.

북으로 간 미술가들에는 분단 과정에서 혹은 한국전쟁 중에 남한에서 북한으로 간 인물들 말고도 재일조선인들이나 중국·소련에서 활동하다가 북한으로 간 인물들도 포함시켜야 한다는 홍 선생의 말엔 고개가 끄덕여졌다.

이 책에선 1950년대 말부터 1960년대 사이에 일본에서 북한으로 건너 간 인물 중 화가 조양규도 다루고 있다. 조양규는 경남 진주 출신으로 해방 직후 좌익 인사에 대한 탄압을 피하기 위해 일본으로 간 그는 그곳에서 활동하면서 나름 중요한 족적을 남겼으며 북한의 미술계를 형성하는 데 한축을 담당했다.

몇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들으며 아직 많은 부분 빈 공간으로 남은 북으로 간 미술가의 활동을 복원하는데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홍지석 선생의 헌신과 노고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대화가 끝나고 언젠가 그가 정리해 발표할 북한미술사 책을 빨리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상언영화연구소대표·영화학 박사·영화사가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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