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한 글로벌 경제, '안전자산'에 자금 몰린다

등록 2015-01-13 10:11:59   최종수정 2016-12-28 14:2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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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최현 기자 = 전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국제 유가가 하락세를 거듭하고 있는 가운데 글로벌 투자자금이 안전 자산인 채권, 달러, 금 등으로 몰리고 있다.

 7일(현지시간) 유로(EUR), 일본 엔(JPT), 영국 파운드(GBP), 캐나다 달러(CAD), 스웨덴 크로네(SEK), 스위스프랑(CHF) 등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ICE달러 인덱스는 전날보다 0.3% 오른 91.890으로 9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달러는 지난해 16개 주요국 통화보다 가치가 상승했다. 이는 2000년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불확실성 증가로 안전자산 선호 현상이 커짐에 따라 글로벌 투자금이 달러로 모이고 있는 추세인 것이다.

 달러 강세 요인은 곳곳에 포진한 상태다. 우선 양적완화(QE) 정책을 종료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는 제로에 가까운 기준금리를 인상할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다.

 이코노미스트들은 Fed가 기준금리를 올해 중반부터 인상하기 시작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지만 세계 경제 약세와 시장 혼란, 인플레이션 하락 등으로 시기가 더 늦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데이비드 코스틴 골드만삭스 전략가는 “예상(내년 6월)보다 늦은 시기인 내년 말부터 금리가 인상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며 “상당수의 고객들은 연준이 내년에 금리를 인상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월 스트리트 ‘채권왕’ 빌 그로스도 “달러 강세와 유가 하락으로 연준이 적어도 연말까지는 금리를 인상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미국 경제가 순항하고 있지만 현재 상황들을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QE 정책으로 2008년 금융위기의 여파에서 벗어난 미국은 글로벌 경제에서 안정적인 투자처로 선호되고 있다. 결국 달러에 자금이 몰리며 상승세를 이어가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전 세계 경제는 이제 하나의 거대한 몸통으로 봐도 무방할 만큼 서로 엉키고 설켜 있다. 경제 규모에 따라 미치는 여파가 차이는 있지만 한 국가의 경제에 문제가 생기면 이는 타 국가로, 더 나아가서는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9년 만에 최저치 기록한 유로화

 이날 뉴욕외환시장에서 유로화는 1.1894달러에 거래돼 전 거래일의 1.1933달러보다 하락했다. 이는 2006년 3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오는 25일로 예정된 그리스 조기 총선에선 구제금융 재협상 및 유로존 탈퇴를 내건 급진좌파연합(시리자)의 집권 가능성이 농후한 상황이다.

 집권 여당과는 달리 긴축 재정에 반대하는 제1 야당 시리자는 수년간 경기침체와 25%에 달하는 높은 실업률로 신음하는 국민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지난해 12월29일 그리스에서 긴축정책을 펼쳐왔던 집권연정(신민당 및 사회당)이 대통령 선출에 실패하자 알렉시스 치프라스 시리자 대표는 “국민 다수가 긴축 정책을 끝내기를 원한다”며 “조만간 긴축 정책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시리자는 2840억 유로에 달하는 구제금융 재협상과 국채 탕감 등 포퓰리즘 정책을 주장하고 있어 그리스가 다시 부도의 수렁에 빠질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베렌버그은행에서 이코노미스트 총괄 자리를 맡고 있는 홀거 슈미딩은 “시리자가 그리스 경제를 심각한 상태로 끌고 갈 수 있는 가능성은 55%”라며 “유로존 내에서건 밖에서건 그렇게 할 수 있는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지적했다.

 그리스가 구제금융의 조건으로 유로존이 요구한 긴축 정책을 폐지하면 결국 남은 선택은 부채를 탕감해 주거나 그리스를 유로존에서 내보내는 방안밖에 없다.

 어떻게 보면 유로존의 경제 질서 자체를 흔드는 행위이기 때문에 디플레이션(물가 하락)으로 인한 저성장 늪에 빠진 유럽연합(EU)의 입장에서는 또 다른 경제 위기가 올 수 있다는 우려를 하고 있다. 최근 유로존의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0.3%까지 떨어졌다. 스페인·키프로스 등 일부 국가는 이미 마이너스 물가를 경험하고 있다.

 유럽안정화기구(ESM), 유로존 은행연합 등이 생겨나면서 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안전장치가 마련됐다고는 하지만 유로존의 경제 체력은 남유럽 재정 위기가 한창이던 2012년에 비해 더 약해진 상태다. 문제는 유로존의 붕괴다. 유로존에서 언제든지 나갈 수 있다는 선례가 생기면 스페인, 포르투갈, 이탈리아 등 유로존 국가 내부의 반(反) 유로존 세력들의 ‘유로존 탈퇴’ 주장이 힘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마틴 펠드스타인 하버드대학교 교수는 세계 경제를 위협할 최대 변수로 유럽 경제 침체를 꼽았다. 그는 “그리스 정부가 유로존 탈퇴를 결정할 경우 금융시장은 지난 2008년 리먼브러더스 사태 때보다 더 심각한 혼란에 빠질 수 있다”며 “미국의 최대 교역국이자 중국의 최대 수출국인 유럽의 침체는 미국과 중국의 성장세를 둔화시켜 세계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자금, 더 안전한 곳으로 몰려

 지난해 하반기부터 경기가 둔화되고 있는 유럽은 경기 부진에 유가 급락이 더해지면서 앞으로 한두 달 내에 디플레이션이 현실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한 상황이다. 그나마 사정이 낫다는 독일도 지난해 12월 물가상승률이 0.1%로 최근 5년 새 최저치로 떨어졌다.

 투자자 입장에선 수익을 포기하더라도 유동성을 안전한 곳으로 피신시킬 수밖에 없다. 빌 그로스는 “올해 자산 가격 하락과 글로벌 경제 성장 둔화 등으로 인해 투자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며 “좋은 시절은 끝났다”고 진단했다.

 월 스트리트 저널(WSJ)은 “투자 심리가 불안해진 투자자들이 미국 국채로 일제히 피신하고 있다”며 위험자산인 주식시장에서 돈을 빼내 미국 등 선진국 국채로 자금을 옮기는 추세가 지속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뉴욕 다우 지수는 연일 급락세를 지속해 올 들어 2.5% 가량 급락했다. 반면 6일 기준 미 국채 금리는 2012년 7월 이후 최저치인 2.5%로 하락했다. 10년 만기물도 지난해 10월 이후 처음으로 2% 아래로 떨어졌고, 독일·일본 10년물 국채 금리도 각각 사상 최저치인 0.446%, 0.293%로 하락했다.

 금값도 사흘째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이날 뉴욕상품거래소에서 2월물 금 가격은 전날보다 15.40달러(1.3%) 오른 온스 당 1219.40달러에 거래됐다. 투기적 순매수 포지션은 최근 1주일 동안 6% 늘어났다.

 하이리지퓨처스 데이비드 미거 이사는 “유가 하락 등 글로벌 경기가 불안한 가운데 주식보다는 안전자산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질 것”이라며 “특히 그렉시트와 그리스의 디폴트 우려가 보수적이고 안정적인 곳으로의 자산 이동 움직임을 일으키고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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