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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용성 "중요한 건 '진짜 상상'…결국 상상조차 저"

등록 2021-07-03 05:30:00   최종수정 2021-07-03 17: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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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계 진중한 이야기꾼…정규 2집 '수몰'로 호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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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천용성. 2021.05.31. (사진= 오소리웍스 제공)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천용성(34)은 자신의 이야기로 음악을 버텨내는 싱어송라이터인 줄 알았다.

지난해 '제17회 한국대중음악상'에서 그에게 2관왕을 안긴 정규 1집 '김일성이 죽던 해'(2019년)가 그런 믿음을 줬다. 이야기와 멜로디 그리고 자신의 기억과 사유가 한몸처럼 범벅이 돼 더 온전한 곡들.

최근 발매된 천용성의 2집 '수몰'에선 본인의 감각을 좀 더 보편적인 감정으로 승화시키는 '문학적 상상력'을 보여준다. 무거운 통찰이지만, 침잠하지는 않는 성찰. 삶의 극악함을 다 알지만, 그럼에도 '뭉근한 희망'을 뿜어내는 숙성된 이야기.

이번 앨범 후반 작업을 위한, 텀블벅 크라우드 펀딩이 하루 만에 목표금액 200%를 달성하는 등 그에 대한 음악 팬들의 관심은 늘었다. 하지만 함께 펴낸 앨범 제작 과정 에세이 '내역서 Ⅱ'가 증명하듯, 작업 환경은 여전히 넉넉하지 않았고 그는 지금도 묵묵했다.

최근 서면으로 만난 천용성의 글들은 선율 위에 놓여 있지 않아도, 한편의 노래처럼 읽혔다. 그런데 정작 그는 "노래라는 형식이 아니었다면, 진작 밑천이 드러났을 것"이라고 말했다.

-'수몰'은 다시 한번 용성 씨가 이야기꾼임을 증명하는 앨범입니다. 이번 앨범에서 가장 중점을 둔 이야기는 무엇인가요? 이야기꾼, 스토리텔러라는 수식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특별히 중점을 둔 이야기는 없습니다. 그때 그때 가능한 가장 좋은 이야기를 쓰려고 노력했을 뿐이에요. 어떤 이야기에 더 힘을 싣거나 하지도 않았고요. 이야기꾼이나 스토리텔러라는 말은 부끄럽습니다. 훨씬 좋은 이야기를 잘 쓰시는 분이 많으니까요. 제 재주는 별로 대단치 않아서 아주 제한적인 시간 속에서만 발휘할 수 있습니다. 가사 반 장 쓰는 일과 소설 몇 백장 쓰는 일은 차원이 다른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엄마, 나 죽어?" "아니 우리 애기가 왜 죽어. …"라는 소름이 끼치지만 애잔한 내레이션으로 시작하는 수록곡 '어떡해'는 그런 이야기꾼의 면모가 드러나는 곡 구성처럼 들립니다. 이 노래의 형식은 어떻게 착상한 겁니까?
 
"포크 음악을 만들고 싶은 바람이 있었습니다. 포크 뮤지션으로 분류되긴 하지만 딱히 포크를 만들지는 않는 편인데, 이번엔 진짜 포크를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어릴 때 듣던 그런 종류의 포크, 누가 들어도 포크인 포크. 초등학교 때 담임선생님이 저한테 기타를 가르치려고 하셨었는데 그때 들려주셨던 곡이 '모닥불'이었어요. 그런 정서가 있었으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기타 하나에, 흔한 패턴이 반복되는. 이정선 기타교실에 나오는 그런 기본 패턴. 앞에 있는 연기들은 김민기 씨의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김민기 씨가 만들었던 뮤지컬 노래들을 좋아하는데 연기 사이 사이 노래가 나오는 구성으로 돼 있어요. 그런 것에서 착안한 것입니다. 좀 더 확실하고 명확하게 장면을 제시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중학생은 정말 중학생의 시점으로 노래하는 '전지적 작가 시점'처럼 읽힙니다. 어떻게 떠올린 곡인가요?

"대학교 4학년 때 매우 우울했습니다. 밥 맛도 없고 친구들이랑 노는 것도 재미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첫 소절 '요즘 나는 밥맛도 없고 친구들도 그냥 그래요'가 나왔습니다. 그 뒤로는, 왠지 '영심이' 같은 아이가 부르면 어울릴 것 같은 노래라는 생각이 들어, 고민 많은 여학생을 생각하며 썼습니다. 주변 여자친구들에게 어린 시절 고민을 물어가며 가사를 썼어요. 물론 제가 했던 고민들도 녹아 있고요."

-'국 끓이다 냄새나서 문을 열어놓았는데'로 시작해서 이단과 길 잃은 강아지가 찾아와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설'은 지극한 일상의 이야기도 노래가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줍니다. 마치 '노래는 도처에 있다'를 증명하는 거 같아요. 노래는 어느 일상에서나 길어올릴 수 있는 건가요?

"노래가 될 수 있는 소재가 따로 정해져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매일 스치던 사소한 것들이 어느 날 의미를 가질 수도 있고, 모두가 소중하다 생각하는 것들이 사실 아무 의미 없는 것일 수도 있으니까. 그저, 그때 그때 재밌고 좋았던 것들을 적어 두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붉은 밤'은 곡 구성이 특이합니다. 마지막에 나지막히 들려오는 '눈오는 새벽' 음성 전까지 후주가 정말 길더라고요. 그연주 구간이 마치 긴 밤처럼 느껴지기도 했는데 이런 곡 구성을 취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 부분은 프로듀서의 제안으로 들어간 부분입니다. 원래는 2절이 있는 곡이었는데 과감히 지우고 피아노와 바이올린으로 채웠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눈오는 새벽의 고요한 풍경과 그것을 바라보는 이의 감정들을 표현하려고 노력했어요. 프로듀서는 편곡 할 때 말이 되는지 여부를 중요시 합니다. 붉은 밤 역시 '말이 되는' 편곡이라며 만족스러워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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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천용성 2집 '수몰' 커버. 2021.07.03. (사진 = 오소리웍스 제공) [email protected]

-자신의 경험과 감각과 상상을 섞어서 노랫말을 지으시는 것으로 아는데요. 물론 곡마다 다르겠지만 혹시 그 혼란의 황금비율이 있을까요?

"레시피는 비밀이라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진짜 상상을 하는 거예요. 거짓 상상이 아니라. 제가 상상할 수 있는 것의 한계는 제가 경험하고 감각한 것에 의해 정해지기 때문에, 결국은 상상조차 저입니다."

-다양하고 개성 있는 피처링 진(시옷과 바람·이설아·강말금·임주연·정우)도 눈길을 끕니다. 피처링 뮤지션을 선정하실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무엇인가요?

"좋아하는 마음, 존경하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그런 마음 없이는 부탁할 수 없어요. 녹음하고 음반을 제작하는 것은 분명 일이지만, 일인 것만은 아니기 때문에. 사사로운 마음이 많이 개입됩니다.

-앨범 '수몰'은 사운드, 보컬, 내용 등이 전체적으로 상반된 느낌의 곡들이 많아요. '보리차'가 대표적이고요. 그런 감정이 느껴지는 곡들을 모아 놓은 앨범인가요? 모아 보니 그런 곡들 위주가 된 건가요?
 
"후자에 가깝습니다. 먼저 컨셉을 잡고 곡을 쓰거나 모은 것은 아니에요. 프로듀서와 함께 좋은 곡들을 추린 후, 서로 어울리게, 좋은 흐름이 느껴지게 배치했습니다."

-'수몰'이 좋은 앨범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그럼에도 수몰되거나 침잠되기보다 '뭉근한 희망'이 배어 있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먼저 떠나간 자들에 대한 예의, 살아남은 자들에 대한 동정이 아닌 연민 또 거창하지 않지만 양껏 내는 의지가 느껴져서입니다. 이런 해석에 동의를 하시나요? 아니면, 다른 부분이 있습니까?

"저는 모든 해석에 동의합니다. 사실 동의한다는 말도 조금은 건방지다고 생각해요. 제 노래 앞에서 저도 한 사람의 해석자일 뿐이니까요. 다만, 말씀하신 것들을 표현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노력하거나 한 적은 없습니다. 모든 것은 자연스레 이뤄집니다. 흘러나오는 대로 정신없이 주어담을 뿐이기 때문에, 무엇이 흘러나왔는지 저도 모를 때가 많습니다. 희망이 배어 있다니, 다행인 것 같습니다."

-'한국대중음악상'을 받으신 뒤 외적 환경이나 내적 태도에서 달라진 측면이 있나요?

"외적환경에는 거의 차이가 없습니다. 상 받기 전과 별 차이 없는 사이클로 지내고 있어요. 일이 조금 많아지긴 했지만, 사이클이 바뀔 정도로 많은 일이 생기지는 않았습니다. 여전히 생계는 어렵고요. 마음가짐은 조금 바뀌었습니다. 예전에는 '나는 너무 못해'와 '내가 제일 잘해' 사이를 자주 오가곤 했는데, 요새는 그래도 '잘해' 쪽에 보통 머무르는 것 같습니다. 정서적으로 안정이 됐습니다. 스스로를 덜 의심하게 됐어요."

-마지막 질문입니다. 수록곡 '싶어요'의 노랫말을 인용합니다. 음악이 '하루에 일 밀리라도' 본인 또는 세상을 나아지게 만들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저를 나아지게 만드는 것은 주변 사람들입니다. 선물 받은 꽃을 잘 꽂아 두라고 일러주는 사람. 물은 컵에 따라 마시라고 혼 내는 사람. 음악이 세상을 낫게 하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낫게 할 수 있다면 망칠 수도 있는 것이니까, 결국은 0에 수렴하지 않을까요."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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