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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이강백 "신데렐라 유리구두는 맞지 않는 구두였어요"

등록 2021-07-16 06: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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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단 50년 '한국 창작 희곡의 거장'

신작 연극 '신데렐라' 공연

"오직 여성만 등장 파격적인 희곡"

9월 2일 대학로 아트원씨어터서 개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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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이강백. 2021.07.16. (사진 = 뉴시스 DB) [email protected] 재판매 금지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한국 창작 희곡의 거장' 극작가 이강백(74)이 신작 연극 '신데렐라'(9월 2~12일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3관)를 선보인다.

지난 2018년 예술의전당에서 공연한 '어둠상자' 이후 세상에 처음 내놓는 작품. 하지만 이 작가는 '신데렐라'를 '어둠상자' 보다 먼저 썼다. 하지만 '임자'를 만나지 못해 잠 들어 있었던 작품이다.

프랑스의 동화작가 샤를 페로의 동화 '신데렐라' 속 구두 이야기다. 유리로 만든 구두를 신고 춤은 커녕 몇 발자국 걸을 수도 없는 신데렐라의 유리 구두가 사실 '빨간색 가죽 구두'였다는 상상에서 출발한다.

이 작가는 '알레고리의 대가'로 통한다. '파수꾼', '결혼', '북어대가리', '봄날' 등의 연극에서 상징화된 인물과 이야기로 현실을 풍자했다. 이번 작품도 각종 은유와 상징이 넘칠 것으로 보인다.

이 작가는 급히 궁전을 떠날 때 계단에서 구두가 벗겨졌다는 건, 그녀의 발에 구두가 꼭 맞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가설을 설정한다. 주인을 찾기 위해 온 세상을 돌아다니고 있는 빨간 구두에 얽힌 여러 가지 에피소드를 풀어낸다.

무엇보다 여성 인물이 드물었던 이 작가의 극에 여성 캐릭터만 등장한다는 점이 신선하다. 최근 이 작가와 서면을 통해 이번 신작과 코로나19 시대의 연극 등에 대해 들었다.

-'신데렐라'는 맨 처음에 어떻게 구상을 하신 건가요?

"'신데렐라'를 쓴 때는 '어둠상자'보다 먼저였지요. 그러니까 공연이 늦어진 것입니다. 이미 연극계에서는 '신데렐라' 희곡이 있다는 것을 알고 계신 분들이 있었는데, 실제로 공연하려면 소위 임자가 나타나야 합니다. 마치 구두에 발이 맞는 신데렐라가 나타나야 하듯이요. 김화영 선생님이 그렇게 나타나 지원금 없이 제작비를 부담하고, 관객들이 가장 선호하는 배우 강애심 씨도 동참해 '신데렐라'는 마침내 공연하게 됐습니다. '신데렐라'의 발상은 오직 여성 인물만이 등장하는 파격적인 희곡을 써보자는 것이었어요. 제 희곡들은 여성 인물이 매우 드뭅니다. 그래서 여성을 싫어하거나 모른다는 오해도 받았습니다. '신데렐라'에는 스물다섯 명이 넘는 여성들이 등장합니다. 그 많은 여성들이 등장하려면 신데렐라가 가장 적합한 소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신데렐라는 정말 유리 구두를 신었을까 하는 의문점을 갖게 되셨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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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이강백. 2021.07.16. (사진 = 뉴시스 DB) [email protected] 재판매 금지
"유리 구두를 신고는 단 한 걸음도 걸을 수 없거든요. 왕자와 춤을 추려면 유리 구두 아닌 다른 구두를 신어야 합니다. 구두 중에는 빨간색 가죽 구두가 가장 예뻐요. 하지만 그런 발상만으로는 작품이 되지 않습니다. '신데렐라'의 핵심은 구두가 발에 맞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신데렐라는 맞지 않는 구두를 신고 왕자와 춤추느라 무척 고통스러웠고, 더 이상 참지 못해 자정이 되기 전에 궁전을 나갔으며, 궁전 계단을 내려오다가 구두가 벗겨지자 그냥 둔 채 떠났습니다."

-신데렐라의 구두가 '맞지 않는 구두'였다는 상상은 어떻게 하신 겁니까?

"신데렐라 하면 금방 '신데렐라 콤프렉스'가 떠오릅니다. 그 말은 처음 누가 만들었을까요? 아마 왕자가 만들었을 것입니다. 왕자는 계단에 벗겨진 빨간 구두가 발에 맞는 사람이 신데렐라다 믿습니다. 그래서 세상 모든 여자들에게 구두를 신겨보지요. 하지만 맞는 여자가 없습니다. 사실 신데렐라의 구두는 신데렐라가 신어도 맞지 않아요. 그것이 신데렐라 구두의 모순입니다."

-김화영, 강애심, 박소영 3명의 여배우가 출연합니다. 특히 박소영 배우는 오디션 과정에서 275명을 제친 신인인데요, 어떤 기대감을 갖고 계신가요?

"275명요? 오디션을 했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만, 그렇게 많은 지원자가 오신 줄은 몰랐습니다. 박소영 씨 어깨가 무척 무겁겠군요! '신데렐라'가 새로운 명배우의 탄생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아울러 선생님의 제자분인 극작가 겸 연출가 정범철 연출님이 연출하시는데 어떤 기대감을 가지고 있습니까?

"정범철 씨는 오태석, 윤대성, 이강백 등 3명이 함께 재직했던 서울예대 극작과에서 수학한 경력이 있습니다. 셋이 서로 겹친 시기가 길지 않는 절호의 좋은 기회였지요. 그러나 예술가란 공부로써 되는 것은 아닙니다. 타고난 자질이랄까, 천성적인 그 무엇이 예술가를 만들어요. 정범철 씨는 독특한 개성과 능력을 보여 줌으로서 이미 연극계에서 자신의 확고한  영역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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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이강백 신작 '신데렐라' 포스터. 2021.06.28. (사진 = 공연배달 탄탄 제공) [email protected]
-197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희곡 부문에 '다섯'이 당선되면서 등단, 올해 등단 50주년을 맞이하셨습니다. 소회가 남다를 것으로 보입니다. 극작가로서 살아온 50년의 소회는 어떠십니까? 한국에서 극작가로 살아가는 것이 어려운 일인가요? 아니면 해볼 만한 일이신가요?

"한마디로 행복한 인생이었습니다. 그리고 어렵지만 해볼 만한 일입니다."

-코로나 19는 선생님도 못 겪으신 일일 텐데요. 이 코로나 사태가 연극계에 어떤 영향을 끼쳤다고 보시나요? 극작가인 선생님에겐 어떤 고민거리를 안겼습니까?

"잘 알고 계시듯이 연극의 3대 요소는 극장, 배우, 관객입니다. 즉 극장에서 배우와 관객들이 대면하는 것이 연극이지요. 우리나라 연극의 중심지인 소극장들이 거의 지하층에 자리하고 있어서 코로나에는 열약한 환경입니다. 배우가 목숨을 걸고 공연하고, 관객 역시 목숨 걸고 공연을 봅니다. 이런 절박한 위기 상황에서 괜찮다고 안심하는 극작가가 있다면 벨기에 대사 부인한테 뺨을 맞을 것입니다." 

-온라인 공연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신지요?

"글쎄요. 온라인 공연은 코로나가 창궐한 상황에서 임시적 방법이 될 수 있어도 영상으로 보는 연극은 '살아있는 연극'이 아닙니다."

-거의 50편에 달하는 작품을 써오셨는데요. 혹시 딱 한 작품을 개작해서 올려야 한다면, 고르고 싶은 작품이 있나요?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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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이강백. 2021.07.16. (사진 = 뉴시스 DB) [email protected] 재판매 금지
"'신데렐라' 공연이 실패하면, 스물다섯 명의 여성 등장인물을 모두 남성 등장인물로 완전히 바꿔 개작할 것입니다. 그 이유는 실패의 원인이 여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작품을 쓴 저 때문일 테니까요."

-혹시 준비 중인 신작 작업이 있나요? 혹시 귀띔이 가능하시다면, 소재는 무엇입니까?

"물론 지금 신작을 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끝나기 전에는 끝난 것이 아니라고 하지요. 그 말은 야구 경기나 농구 경기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희곡 쓰기도 마찬가지입니다. 다 쓰고나면, 처음 시작할 때와 전혀 다른 작품이 되기도 하거든요. 그래서 지금 어떤 소재라고 말한 것이 나중엔 본의 아닌 거짓말이 될 수 있기에, 차라리 침묵이 낫겠습니다."

-마지막 질문입니다. 선생님에게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알레고리의 극작가'라는 수식은 마음에 드십니까? 혹시 지겹지는 않으세요?

"아니요. 전혀 지겹지 않습니다. 현대 연극에서 비사실적 연극은 알레고리가 흔한 현상입니다. 그런데 저를 '알레고리 극작가'라고 특별하게 불러주셔서, 제가 혼자 알레고리를 독차지한 것 같아 다른 극작가들에게 미안하군요."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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