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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리나 박세은 금의환향..."'프랑스 열려...에투알도 타이밍"

등록 2021-07-19 17:01:09   최종수정 2021-07-19 17: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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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오페라발레'(BOP) 아시아 출신 첫 수석무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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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프랑스 파리오페라발레단(BOP) 에투알(수석무용수) 박세은이 19일 서울 강남구 마리아칼라스홀에서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BOP 정단원은 카드리유(Quadrille_군무), 코리페(Coryphees_군무 리더), 쉬제(Sujet_솔리스트), 프리미에 당쇠르(Premier danseur_제1무용수), 에투알(Etoile_수석무용수) 등 5단계로 구분된다. 박세은은 지난 6월 10일(현지시간) ‘에투알(Etoile)’ 자리에 올랐다. 에투알은 별을 뜻한다. 2021.07.19.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굉장히 떨리네요. 공연할 때는 안 떨리는데, (간담회는) 제가 잘 할줄 모르는 거라, 더 떨리는 거 같아요."

'파리의 여왕' 발레리나 박세은(32)이 19일 오후 강남구 마리아칼라스홀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수줍어했다.

지난 6월 352년 역사를 자랑하는 세계적 명문 발레단 '파리오페라발레'(BOP)에서 아시아 출신 중 처음으로 에투알(수석무용수)가 됐다.

1669년 설립된 파리오페라발레는 세계 최고(最古) 발레단이다. 영국 로열발레단, 미국 아메리칸발레시어터, 러시아 마린스키발레단·볼쇼이 발레단과 함께 세계 발레계를 호령하고 있다.

이 발레단에서 수석무용수가 된 건, 피겨계의 김연아, 대중음악계에 '방탄소년단'(BTS)의 세계 제패와 비견되는 발레계에 큰 성과다. 박세은은 지난 2018년엔 '발레의 아카데미'로 불리는 '브누아 드 라 당스' 최고 무용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에투알은 프랑스어로 '별'을 뜻한다. 그만큼 뽑히기 힘든 영광의 자리다. 감독과 이사회 등의 논의를 거쳐 실력뿐만 아니라 인성 등 다양한 방면을 본다. 현재 파리오페라발레 에투알은 150명의 무용수 중 남녀를 합해 16명(여성 10명·남성 6명)에 불과하다. 특히 외국인 수석무용수는 드물다. 박세은 이전까지 남미(아르헨티나) 출신 루드밀라 파글리에로 정도였다.

2017년 1월 제1무용수로 통하는 프르미에르 당쇠즈가 된 박세은이 에투알이 되는 건 초읽기였다. 하지만 프랑스 현지 연금 개혁 반대 동조 파업, 코로나19 등으로 인해 미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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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프랑스 파리오페라발레단(BOP) 에투알(수석무용수) 박세은이 19일 서울 강남구 마리아칼라스홀에서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BOP 정단원은 카드리유(Quadrille_군무), 코리페(Coryphees_군무 리더), 쉬제(Sujet_솔리스트), 프리미에 당쇠르(Premier danseur_제1무용수), 에투알(Etoile_수석무용수) 등 5단계로 구분된다. 박세은은 지난 6월 10일(현지시간) ‘에투알(Etoile)’ 자리에 올랐다. 에투알은 별을 뜻한다. 2021.07.19. [email protected]

에투알로 승급된 지 한달여 만에 박세은이 금의환향했다. 백신을 맞고 지난 15일 귀국한 박세은은 코로나19 음성 판정을 받고, 법적으로 자가 격리 면제를 받았다. 1년에 한번씩 보는 한국 가족들과 '진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했다.

다음은 기자 간담회 일문일답

-에투알이 된 것이 실감이 나나요? 오는 9월24일엔 '데필레(defile)'(9월마다 발레학교 학생부터 파리오페라발레의 에투알까지 200여명의 무용수가 향해 퍼레이드를 펼치는 행사)에서 왕관을 쓰게 되는데 기분이 어떠세요?

"6월23일 '로미오와 줄리엣' 마지막 공연을 끝으로, 지난 제 시즌이 끝났어요. 한국 오기 전까지 행정적인 부분을 처리했죠. 제 개인 탈의실이 생겨서 이사했고, 전담 어시스턴트가 생겼어요. 아직 신나 있는 상태예요. 9월 데필레에서 왕관을 쓸 때 더 실감이 날 거 같아요. 구스타보 두다멜이 프랑스 파리 국립오페라단 감독으로서 데필레도 지휘하시거든요. 그래서 더 특별하고 기대가 됩니다. 데필레 이후 새로운 에투왈을 소개하는 갈라 공연 무대에도 올라요."

-승급 발표한 날 상황을 다시 한번 떠올리시면 어떠세요. 에투왈이 본인에게 어떤 의미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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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박세은. 2021.06.11. (사진 = 파리오페라발레 제공) [email protected]
"우선 승급날은 정말 들뜨지 않고 굉장히 차분했어요. 사실 떨리는 순간을 없애기 위해 연습을 많이 하거든요. 공연날엔 빨리 무대에 오르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 기대가 큽니다. 관객들에게 준비해온 줄리엣의 이야기를 잘 전달하고 싶다는 심경 하나로 임했죠. 그날 저 빼고 모두 에투알 노미네이션 이야기를 했다고 했어요."

-2011년 한국 발레리나로는 처음으로 준단원 입단 이후 어려움이 많았을 거 같습니다. 

"많았죠. 우선 언어적으로 답답했어요. 또 한국 발레가 러시아 바가노바 메소드에 익숙하다는 점도 어려운 점이었죠. 프랑스 춤을 새로 배워야 했거든요. 처음엔 프랑스 춤을 배우는 것이 재밌고, 흥미로웠어요. 그런데 처음엔 평이 둘로 나뉘었죠. 감정 표현이 없고 기술만 뛰어나다, 프랑스인들을 제치고 큰 무용수가 될 거다. 프랑스인들이 자부심이 세잖아요. 저 역시 춤을 추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기술적인 것이 아니에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고, 추구하고자 하는 예술 방향이죠. 그런데 어렸을 때부터 쭉 발레를 해왔는데 '이게 맞나' '나는 지금 어디 있지'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지게 되니까 힘들더라요. 스스로 답을 찾는데 시간이 걸렸어요. 프르미에르 당쇠즈가 된 이후 자신감이 붙기 시작했죠. 그 때부터 제 춤을 의심하지 않고 마음껏 표현했어요. 시간이 많이 걸렸지만 많은 분들이 그런 점에 대해 박수를 보내주시는 거 같아요. 저한테 에투알이라는 의미는 간절함과 인내심이에요."

-춤이 언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고 생각하셨나요?

"코로나19로 인해 느꼈어요. (대면 공연 대신) 라이브 촬영을 많이 해야 했잖아요. 작은 카메라를 두고 관객 없이 춤을 춰야 했는데, 관객이 없으면 의미가 없다는 걸 느꼈어요. '로미와와 줄리엣'을 공연할 때 저 혼자 힘들면 안 됩니다. 제가 힘든 것도 객석에 전달이 돼야 해요. 슬프다고 관객분들이 돌려주면서 대화가 돼야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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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박세은. 2021.06.11. (사진 = 파리오페라발레 제공) [email protected]

-에투알이 된 후 눈물을 흘리셨어요.

"음…. 제게도 '이런 날이 오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에투알이 언제가는 될 거라는 생각은 했어요. 2017년 프르미에르 당쇠즈가 된 이후 주요 작품에 캐스팅이 됐거든요. 그런데 프랑스 현지 파업 등으로 인해 공연 설 기회조차 없어지니까, 공연 기회가 빨리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역할은 나오는데 공연은 못하고, 기회가 없어지니까 나름 쌓여 있던 것이 에투알이 됐을 때 빵 터진 거 같아요."

-오렐리 뒤퐁(Aurélie Dupont) 감독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을 거 같아요.

"'너를 에투알로 만드는데 1년 반을 기다렸다'는 말씀을 해주셨어요. 저를 에투알로 생각해주기시는 것에 대해 놀라고 감사했죠. 제 춤의 장점, 단점에 대해 모두 말씀 해주셨어요. 뒤퐁 감독님은 제 롤모델이에요. 이야기해주시는 것이 정확해서 놀랍고 그 덕분에 더욱 발전을 하기 위해 노력을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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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박세은. 2021.06.14. (사진 = 파리오페라발레 소셜미디어 캡처) [email protected]
-아시아인 첫 에투알이라는 점도 큰 화제가 됐습니다.

"그걸 크게 생각하지는 않았어요. '시대가 변하고 있구나' '프랑스가 열렸구나'라는 생각은 들죠. 제가 예전 시대에 춤을 췄다면 불가능했을 겁니다. 에투알이 되는 건 타이밍도 중요해요."

-에투알이 되려면 또 인성도 중요하잖아요. 평소 인성 좋기로 소문 났는데, 이번에 수많은 축하 메시지도 일일이 다 답장을 해주셨다고요.

"제가 인성이 좋은가요?(웃음). 답을 드리는데 일주일 넘게 걸렸어요. 이렇게 인생에서 많은 축하 메시지를 받은 건 처음이에요. 연예인들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하하. 제가 꾸준히 관심를 많이 받는 연예인이 아니니 다행이지요. 그럼에도 답장을 놓친 부분이 많더라고요. 많이 축하해주셔서 감사하고 또 감사할 따름입니다."

-많은 후배들이 롤모델로 삼고 있어요. 조언을 해주자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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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프랑스 파리오페라발레단(BOP) 에투알(수석무용수) 박세은이 19일 서울 강남구 마리아칼라스홀에서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BOP 정단원은 카드리유(Quadrille_군무), 코리페(Coryphees_군무 리더), 쉬제(Sujet_솔리스트), 프리미에 당쇠르(Premier danseur_제1무용수), 에투알(Etoile_수석무용수) 등 5단계로 구분된다. 박세은은 지난 6월 10일(현지시간) ‘에투알(Etoile)’ 자리에 올랐다. 에투알은 별을 뜻한다. 2021.07.19. [email protected]
"요즘 후배들이 너무 잘해서 별로 해줄 이야기는 없어요. 다만 예술이라는 것은 자기와의 싸움이거든요. 근데 후배와 가끔 고민 상담을 하면, 나와의 싸움으로 생각하지 않고 경쟁자와의 싸움이라고 생각하는 후배들이 있어요. 남과 비교를 하기 시작하면 본인이 더 심적으로 힘들거든요. 좀 더 스스로에게 질문을 많이 하고, 예술을 해나갔으면 해요."

-2011년 파리오페라발레에 입단하셨을 때 어떤 생각을 하셨나요?

"그 때 발레 가치관이 아예 바뀌었죠. 객석에서 프랑스 무용수들을 보는데 너무 예쁘고 아름다운 거예요. 특히 아무것도 안 하고 숨만 쉬는데 너무 아름다워 그 아름다움을 갖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이번에 감독님과 면담을 하는데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제일 좋았던 부분이 무릎을 꿇고 잠드는 약을 신부에게 받아 가만히 있을 때라고 하시더라고요. 그 부분이 가슴에 남고 울렸다고요. 그 순간 성공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빛나는 아름다움이 아무것도 안 할 때 전해진 거잖아요. 그런 디테일한 부분에서 보여주고 싶었던 아우라가 제게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됐을 때 너무 좋았습니다."

-프랑스에서 어떤 일상을 보내세요?

"매일 아침에 클래스를 꼭 해요. 무용수 컨디션을 좋게 만드는데 필요한 절차죠. 프르미에르 당쇠즈가 된 이후 (단체) 연습시간이 많지 않아 개인 연습을 꼭 해요. 저녁엔 아내로서 역할에 충실해요. 요리를 하고 집안일을 하죠. 주말엔 교회도 가고요. 단조롭지만 싫증 나지는 않는 루틴입니다. 앞으로 더 좋은 공연, 작품들을 찾아다니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솔리스트 된 이후에는 제 춤 추느라 바빠서 그런 쪽을 경험하기 힘들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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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프랑스 파리오페라발레단(BOP) 에투알(수석무용수) 박세은이 19일 서울 강남구 마리아칼라스홀에서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BOP 정단원은 카드리유(Quadrille_군무), 코리페(Coryphees_군무 리더), 쉬제(Sujet_솔리스트), 프리미에 당쇠르(Premier danseur_제1무용수), 에투알(Etoile_수석무용수) 등 5단계로 구분된다. 박세은은 지난 6월 10일(현지시간) ‘에투알(Etoile)’ 자리에 올랐다. 에투알은 별을 뜻한다. 2021.07.19. [email protected]
-케이크를 굽는 취미가 있다고 들었는데 먹는 것도 즐기시나요?

"사실 케이크는 굽고 남편이 다 먹어요. 단 것을 좋아하는데 (발레를 해야 하니) 만들어주는 것에 의미를 둡니다. 하하. 프랑스에 시어머니가 계신데 제가 만들어드리는 케이크를 좋아해주세요. 그러데 좋아하는 분들에게 케이크를 만들어드리는 것이 좋아요."

-앞으로 출연하고 싶은 작품이 있다면요?

"하고 싶은 작품이 너무 많아요. 춤을 안 춘 작품이 훨씬 많거든요. 가능하면 다 하고 싶은데요. 나이 들기 전에 '돈키호테'를 하고 싶고, 제게 특별한 역인 '라 바야데르'의 '니키아' 역을 한번 더 하고 싶어요. '마농'도 하고 싶은 작품이에요."

-에투알 이후에 목표가 궁금합니다.

"이력서 상으로는 최고를 찍었죠. 갈 곳까지 다 간 거죠. 하지만 보여드려야 할 춤이 많아요. 그래서 '지금부터가 시작'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내년 여름께 갈라 공연으로 한국 팬들과 만날 계획도 세우고 있고요. 프랑스에 온 이후 춤에 감동을 받았다며 손 편지를 보내주시는 분들이 점점 많아지는데, 그런 분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다른 생각 안 하고 춤을 출 때 춤에만 집중해서 프랑스 발레계 에투알 사이에서도 '큰 에투알'이 되고 싶어요."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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