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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분장실' 손지윤·우정원 "더블 캐스팅...여배우 경쟁보다 연대"

등록 2021-07-26 13:3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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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7일부터 9월12일까지 대학로 자유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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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김선웅 기자 = 연극 '분장실'에 출연하는 배우 손지윤(왼쪽)과 우정원이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대학로 스튜디오 '일상적'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1.07.26.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여성 배우들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선망하는 배역이 있다. 러시아 문호 안톤 체홉의 희곡 '갈매기' 속 '니나'다.

작가 지망생 '트레플레프'의 사랑을 받지만 작가 '트리고린'에게 마음을 빼앗긴 니나는 배우의 꿈을 이루기 위해 첫사랑을 버린다. 첫사랑을 다시 만났을 때, 그녀는 3류 배우로 전락해 있다. 여성 배우의 흥망성쇠와 우여곡절을 압축한 캐릭터다. 니나를 연기한다는 건 배우로서 존재를 투영하는 일이다.

이런 니나의 성향을 극대화한 작품이 일본 '현대 연극의 거장' 극작가 시미즈 구니오의 연극 '분장실'(8월7일부터 9월12일까지 대학로 자유극장)이다.

'갈매기'가 공연 중인 어느 극장의 분장실이 배경. 무대에 대한 배우들의 열정과 배역에 대한 갈망, 삶에 대한 회한을 그린 희비극이다.

거울과 분장만 존재하는 공간인 분장실에서 죽은 자들 간의 대화, 산 자를 지켜보는 시선을 오가며 무대와 삶의 아이러니는 동시에 보여준다. 귀신 배우 A와 B, 니나 역을 연기하는 C 그리고 C의 프롬프터(관객이 볼 수 없는 곳에서 배우에게 대사·동작을 일러 주는 사람)를 맡고 있는 'D'만 출연한다.

연극계 허리들인 배우 손지윤(38)과 우정원(38)이 C 역에 더블 캐스팅됐다.

손지윤은 주체적('와이프')이고 젠더 프리('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로 호평을 들었다. 우정원은 유연한 몸놀림('인형의 집')과 세밀한 감정 연기('배신')으로 주목 받아왔다. '여배우'에 대한 선입견을 덜어내고, 배우 자체로서 고민하는 것으로 공감대를 형성하는 배우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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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김선웅 기자 = 연극 '분장실'에 출연하는 배우 손지윤(왼쪽)과 우정원이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대학로 스튜디오 '일상적'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1.07.26. [email protected]
이 동갑내기 두 배우는 이번에 처음 만나 단짝이 됐다. 최근 대학로 연습실에서 만난 두 배우는 같은 역을 번갈아 연기하지만, 경쟁하기보다 연대하고 있었다.

▲우정원(우)='갈매기' 속 '니나'는 순수한 욕망 덩어리 같아요. 트리고린를 선망하는 이유도 그를 남자로 보기보다 그의 명성 때문이죠. 물론 니나 혼자 그런 건 아니지요.

▲손지윤(손)=원래 '갈매기'에서 (트레플레프를 짝사랑하는) '마샤'를 맡고 싶어했어요. 니나는 제 선망의 대상이 아니었거든요. 공감이 힘들고요. '분장실' C 역엔 니나 캐릭터가 많이 인용돼 있는데, 배우들이 왜 연기하고 싶어하는지 생각하게 됐어요. 배우를 향한 꿈과 열정, 여성으로서 삶이나 사랑이 조화롭게 녹아들어가 있더라고요.

▲우='분장실'은 "어려울 거 같아서" 선택한 작품이에요. C성격은 정확하게 구축돼 있는데, 개인적으로 배우로서 접점이 있는 건 아니에요. 마음적으로 부딪히는 부분이 많았죠. 의문스러웠던 점은 관객분들이 과연 '배우의 분장실을 궁금해하실까'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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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김선웅 기자 = 연극 '분장실'에 출연하는 배우 손지윤(왼쪽)과 우정원이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대학로 스튜디오 '일상적'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1.07.26. [email protected]
▲손=저 역시 정원이처럼 관객분들이 흥미로워하는 소재일까에 대한 궁금증이 있었어요. 일본(1977년 현지에서 초연)에서 오랫동안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에 대해서도 생각했죠. 배우가 읽기에 불편한 지점들이 있어요. 그것을 걷어냈을 때 발견할 수 있는 인간의 외로움은 모두가 느낄 수 있는 부분이 아닐까 생각했죠. 또 누구나 꿈을 이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점도 공감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우=극에서 배우들이 배역을 위한 쟁탈전을 벌이고, 시기와 질투를 하는 것이 불편했어요. 그런 (강한) 성향이 있는 사람들만 배우를 하는 건 아니거든요. 배우들 삶도 고단한데, 결과적인 모습만 보여주니까요. 대사 중엔 '배우가 화려해서 선택한 건 아니야'라는 말에 가장 공감했죠. 제가 하고 싶은 말이었어요. 인기를 얻거나 박수를 받고 싶어서 연기를 시작한 건 아니거든요.

▲손=어쩔 수 없는 지점이 있지만 '여배우'라는 말에 대해 사회가 만들어낸 이미지나 편견, 선입견이 반영돼 있는 지점을 봤을 때 불편했죠. 그런데 인간 대 인간으로서 외로움이나 처연함을 느끼게 됐을 때, 공감이 됐어요. 작품 안에서 C 혼자 분장실에서 넋두리를 하는 부분이 있어요. 감정을 해소하고 한바탕 춤을 추죠. 얼마 전에 이 장면을 연습하는데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흐르는 거예요. 그 때 C가 안쓰럽고 가엾고 외로웠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배우는 선택 받는 직업이라 외로워요. 특히 여성 배우들이 나이가 들수록 역할을 맡기가 어렵죠. 어쩌다 배역이 생기더라도, 경쟁률도 높고요.

▲우=다양한 세대의 배우들(서이숙·정재은·배종옥·황영희·이상아·지우)이 출연하니, 좋은 의미에서 '세대차이'가 느껴져요. 지내온 환경에 따라 달라진 성격과 생각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배우는 것이 많죠. 특히 저희는 중간자 입장이라 더 많은 영향을 받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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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김선웅 기자 = 연극 '분장실'에 출연하는 배우 손지윤(왼쪽)과 우정원이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대학로 스튜디오 '일상적'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1.07.26. [email protected]
▲손=후배들의 젊은 생각과 가치관을 공유할 수 있고, 선배들의 연륜 덕에 어려움을 돌파할 수 있죠. 다양한 세대의 배우들이 모여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고, 작품에 긍정적인 영향을 줘요.

▲우=('스카이캐슬' '화양연화 : 삶이 꽃이 되는 순간' 등을 통해 경험한) TV드라마는 연극과 기술적으로 다르더라고요. 공연은 제 전체를 쓰는데 드라마는 카메라를 통해 제 연기의 특정 부분을 선택하니까요. 여러 부위를 얼굴로 쏟거나 자유 자재로 능력이 더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손=(드라마 '미씽 : 그들이 있었다', '비밀의 숲2' 등에 출연했는데) 너무나 다른 장르더라고요. 이 다른 장르를 자유자재로 오가는 배우들이 잘하는 배우가 아닐까 생각해요. 앞으로 대중매체 경험을 더 쌓고 재미를 느끼고 싶어요.

▲우=춤을 배우는 걸 좋아해요. 제 여러 몸동작을 보게 되면, 말초신경까지 깨달음이 와요. 배우로서 유용하죠. 무대에서 어떤 몸짓을 해도 관객이 볼 때, 부끄럽거나 추하지 않을 거라는 자신감이 생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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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김선웅 기자 = 연극 '분장실'에 출연하는 배우 손지윤(왼쪽)과 우정원이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대학로 스튜디오 '일상적'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1.07.26. [email protected]
▲손=전 작품을 통해 배우는 걸 좋아해요. '인간 손지윤'은 불완전해서, 좀 더 주체적인 역할에 끌리죠. 이번 C 역할은 그런데 결이 달라요. 위태롭고 불안하죠. 제 내면 깊숙한 곳에 자리잡아, 보여주고 싶지 않은 속내가 까발려지는 느낌이에요. 그걸 막기 위해 방어적인 모습을 보이는 C가 처연하게 느껴지고 그래서 위로를 받아요. 누구나 이런 모습이 있잖아요. 여배우라는 껍데기를 벗겨내 인간 대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것에 대해 질문을 던지죠.

▲우=코로나19는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것에 대한 중요성을 새삼 깨닫게 했어요. 거기에 대해 모두가 갈증을 느끼고 있다는 걸 알게 했죠. 그래서 연극은 쇠퇴하지 않고, 오히려 더 가치를 인정받을 거라 생각해요.

▲손=무관중 생중계 촬영을 한 적이 있는데 커튼콜 때 한 없이 울었어요. 연극은 현장에 대한 생명력을 갖고 있죠.

▲우=더블 캐스팅이 처음이에요. 그래서 처음엔 긴장을 많이 했어요. 지윤이가 만나자마자 친근하게 대해줘 고마웠어요. 배우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서 경계가 허물어졌죠. 성격이 너무 좋아요.
 
▲손=정원이는 너무 잘해서 평소부터 관심이 있던 배우예요. 제가 계속 집요하게 먼저 연락했어요. 하하. 정원이를 보고 있으면, 경쟁과 견제는 쓰잘머리가 없다는 걸 새삼 깨달아요. 우리 또래 여성 배우들이 드문데 서로 존중하고 발전하면서 연대하고 있습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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