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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만에 돌아온 조드윅…'헤드윅'이 조승우를 연기하네

등록 2021-08-01 09:48:03   최종수정 2021-08-04 07:2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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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시국 녹여낸 입담…다양한 장르에 맞는 보컬색

오는 10월31일까지 충무아트센터 대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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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뮤지컬 '헤드윅' 조승우. 2021.08.03. (사진 = 쇼노트 제공)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객석 첫줄에 오페라글래스를 사용하는 관객을 발견한 뒤) 왜 여기서까지, 그렇게 보고 그래? 눈 안 좋아? 너, 매크로를 뚫고 여기 앉아 있는 거 아니야?! 앞에 앉아 있는 사람들 다 변태들이야. 하루종일 이지랄(마우스 버튼을 클릭하는 동작을 흉내내며) 하는 사람들이야!"

지난달 30일 오후 7시 충무아트센터 대극장. 뮤지컬 '헤드윅' 전통대로, '조드윅'(조승우+헤드윅)이 오른쪽 객석 통로에서 나타났다. 마스크를 쓴 조승우(40)는 검지손가락을 마스크 앞에 가져가 '쉿', 자세를 취했다.

"언니 왔다." 5년 만에 '헤드윅' 무대 위에 오른 그가 말했다. 조승우 공연인데, 환호 없이 박수만 이어지는 아스트랄(뭔가 신기한 것을 봤을 때, 4차원 세계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을 표현할 때 쓰는 말)한 장면이 이어졌다. 코로나19 시국이 만든 낯선 풍경이었다. 

그럼에도 조승우의 '헤드윅'은 시대를 관통하는 기념비적 캐릭터였다. 천재적인 연기력과 발군의 순발력이 배인 유머 감각 그리고 이 시대 청춘의 아픔을 아로새겨왔다.

'헤드윅'은 영화배우 겸 감독 존 캐머런 미철이 극본과 가사를 쓰고 기타리스트 스티븐 트래스크가 곡을 붙인 뮤지컬이다. 동독 출신 실패한 트랜스젠더 록 가수 '한셀'이 주인공.

그는 어릴 적 미군 병사 루터에게 결혼을 제의받는다. 여자가 되는 조건이다. "자유엔 희생이 따른다"는 어머니의 말에 따라 중요 부위를 거세한다. 이름도 어머니의 이름인 헤드윅으로 바꾼다. 하지만, 싸구려 수술은 온전하지 않다. 1인치가량의 살덩어리가, 성기가 있던 곳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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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2013년 뮤지컬 '헤드윅' 조승우. 2021.08.01. (사진 = 뉴시스 DB) [email protected]
우여곡절 끝에 성전환수술을 받고 첫 남편과 함께 미국으로 가지만 이내 버려진다. 이후 진짜 자신의 반쪽으로 여기게 되는 토미를 만나지만 그와의 사랑도 끝내 이뤄지지 못한다. 수많은 청춘들이 그(또는 그녀)를 보고 해방감을 느끼는 동시에 공감하며 아파했다.

2005년 초연 이후 매진 사례를 기록한 이유다. 조승우는 초연부터 2016년까지 여섯 시즌에 출연했다. 무엇보다 '헤드윅'의 변곡점에 항상 그가 있었다.

소극장인 대학로 라이브극장과 클럽에스에이치(SH), 중극장인 백암아트홀, 중대극장인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때도 그가 함께 했다. 처음 대극장으로 옮긴 이번 충무아트센터 대극장 무대의 첫날인 이날도 그가 책임졌다. 

역대 '헤드윅' 중 가장 큰 공연장인 충무아트센터 대극장의 객석은 1250석. 하지만 코로나19 4단계에선 65% (저녁공연)~70%(낮공연)만 오픈해 좌석은 710~750석이다. 중대극장인 홍익대 아트센터 대극장 700석과 비슷하다. 매크로 공격 속에 피케팅(피 튀기는 예매 전쟁)이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무엇이 변했나…코로나19 시국 내용 한가득
앞서 '헤드윅'은 지난 2016년 '뉴 메이크업'이라는 부제를 달고 무대 등에서 변화를 꾀했다. 이번에 크게 달라진 내용은 없으나 극장이 커진 만큼, 영상이 시각적으로 보기 좋아졌다.

코로나19 관련 애드리브(무대에 오르기 전 설정해놓은 내용이 상당 부분이다)가 꽤 된다. 조승우는 최근 출연한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에서 암호 화폐와 관련, 테슬라 최고 경영자(CEO)인 일론 머스크를 저격하며 입담을 뽐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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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2014년 뮤지컬 '헤드윅' 조승우. 2021.08.01. (사진 = 쇼노트 제공) [email protected]
'헤드윅'은 그의 입담 천국이다. 이번에 더 능수능란해졌다. 방역 수칙으로 인해, 객석에 내려가지 못하는 아쉬움을 표할 때 그랬다. '헤드윅'이 관객들과 호흡을 주고 받고, 객석 속으로 뛰어들어가는 것이 이 작품 매력 중 하나다. 하지만 이번에 엄격하게 금지됐다. 헤드윅의 얼굴 모양이 찍힌 손수건을 맨 앞줄 관객에게 건네는 풍습도 금지였다.

헤드윅이 '슈가 대디'를 부르는 도중 객석 의자를 밟고 엉덩이를 흔드는 '카워시(Car Wash)' 장면도 당연히 못했다. 조승우가 양봉용 방충 모자를 쓴 채 하려다, 제지당했다고 토로하는 장면은 '웃픈 현실'이었다.

코로나19라는 특수한 상황을 엄숙하거나 불편하지 않게 극에 녹여낼 수 있었던 건 조승우의 저력이었다. 이밖에도 맥주, 가발 회사 등과 관련 다양한 입답이 쏟아졌다.
다양해진 보컬색…'돌은 자'의 관능적 퇴폐미
'헤드윅' 인기 비결 중 하나는 앵그리인치 밴드와 함께 들려주는 다양한 록 기반의 넘버다. '티어 미 다운' '디 오리진 오브 러브' '미드나이트 라디오' 등 명곡이 다수 포함됐다.

이번에도 기존 팝 등을 비롯 다양한 장르의 곡들이 조금씩 인용됐는데, 조승우의 보컬은 해당 장르에 맞춰 천변만화했다.

극 중 배경인 뉴욕에 맞는 제이지·앨리샤 키스의 '엠파이어 스테이트 오브 마인드(Empire State of Mind)'를 부를 때는 랩을 하는 조승우를 볼 수 있다. "요즘은 힙합이 대세"라며 목걸이를 비롯 랩 경연 프로그램 '쇼미더머니'를 패러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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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2016년 뮤지컬 '헤드윅' 조승우. 2021.08.01. (사진 = 쇼노트 제공) [email protected]
이밖에도 R&B 솔, CM송 등 곡의 특성에 맞게 조승우의 목소리는 변했다. 이날 하이라이트 중 하나는 한셀이 헤드윅으로 변하기 전, 미군 루터가 '구미 베어' 젤리를 그에게 건네는 장면.

스크린에서 수많은 곰 젤리가 낙하했고 배경음악으로 이날치의 '범 내려온다'가 울려퍼졌다. 조승우는 '곰 내려온다'를 외치며,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의 기상천외한 몸 동작을 그대로 따라했다. 나이가 드니 수염이 계속 자란다며, 공연 중 전기면도기로 수염을 깎기도 했다. 

'돌은 자'의 진면목은 수위가 높은 성적 농담에서 폭포수럼 분출됐다. 조드윅의 몇몇 대사나 행동은 다른 배우의 헤드윅보다 질펀하다. 맥주 등을 이용해 성적 묘사를 하는 등 과감하다. 남성 호르몬 냄새에 비유되는 '밤꽃향'도 여러번 언급한다. 그런데 그런 면들이 헤드윅의 '관능적 퇴폐미'를 절정에 달하게 한다.

조승우의 '헤드윅'이 더욱 대단한 건 이후의 '무서운 슬픔'에 극도로 몰입한다는 것이다. 헤드윅은 인간의 근원적 외로움의 정수다.

욕설을 섞어가며 괴팍하게 소리 지르거나, 미친 것처럼 웃어젖히던 조드윅은 막판에 침묵으로 헤드윅의 아픔을 표현해낸다. '소리 없는 아우성'이란 이런 것이다. 갑작스러운 감정의 변화가 아니라, 여러 감정의 파편들이 처음부터 정교하게 설계됐다고 느끼는 관객들이 한두명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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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조승우 뮤지컬 '헤드윅' 콘셉트 사진. 2021.08.01. (사진 = 쇼노트 제공) [email protected]
헤드윅이 자신의 반쪽이라 믿었던 토미에게 "그냥 울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객석도 눈물로 차올랐다. 이날 유독 조승우의 눈가도 눈물로 반짝였다.

'헤드윅'의 매력은 비정상의 근처에서 아슬아슬하게 묶인 감정들에 있다. 거기엔 사회에 대한 황량한 분노, 인간에 대한 격렬한 슬픔이 뒤엉켜 있다.

조승우의 헤드윅은 이 분노와 감정의 실험을 하는 모험가다. 그의 '헤드윅' 무대엔 삶이 아닌 것들을 뽑아내는 '야성의 본능'이 숨어 있고, 삶이 아닌 것들을 삶이 될 때까지 '밀고 나가는 뚝심'이 있다. 그가 한국 뮤지컬계 '전진기지'로 자리매김하는 이유다. 같은 뮤지컬에 여러 번 출연해도, 새로울 수밖에 없다.

방역수칙에 따라 커튼콜에서 관객들은 기립을 하지 못했다. 커튼콜에서 '환호와 기립 박수가 없는' 조승우 공연이 새로웠지만, 그만큼 감정은 더 차올랐다. 

이번에 조승우는 헤드윅을 연기하지 않는다는 걸 증명했다. 헤드윅이 조승우를 연기한다. 매크로와 코로나19를 뚫지 않으면 조승우를 못 보는 것이 아니라, 헤드윅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최근 조승우 온라인 기사엔 이런 댓글이 달렸다. "조승우가 직접 티케팅 해보게 시켜야합니다!" "'헤드윅', 고척돔서 하시면 안 될까요?"

한편, 이번 시즌 '헤드윅'은 조승우 외에 오만석, 이규형, 고은성, 그룹 '뉴이스트' 멤버 렌(최민기)도 연기한다. 헤드윅의 남편 '이츠학'은 이영미, 김려원, 제이민, 유리아가 번갈아 연기한다. 오는 10월31일까지.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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