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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계 이단아' 원일 "창작뮤지컬로 대중성 도전"

등록 2021-08-11 12:5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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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 예술감독

18일~29일 경기아트센터 대극장, '금악:禁樂' 초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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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뉴시스] 박진희 기자 = 원일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 예술감독이 지난 6일 경기 용인시 경기국악원 국악당에서 뉴시스와 인터뷰 하고 있다. 원 감독은 오는 18일 공연 예정인 뮤지컬 '금악(禁樂)' 연출을 맡고 있다. 2021.08.11. [email protected]
[용인=뉴시스]이재훈 기자 =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는 '국악계의 이단아'로 불리는 원일(55) 중요무형문화재 제46호 대취타 및 피리정악 이수자를 만난 뒤 환골탈태했다.

지난 2019년 말 원일이 예술감독으로 부임한 이후 경기도립국악단이라는 기존 이름부터 내던졌다. 이후 게임 스트리밍 플랫폼을 통해 생중계한 '메타 퍼포먼스:미래극장', 전자음악가들과 협업한 '시나위 일렉트로니카' 등 평범한 국악단체라면 감히 시도하지 못할 성질의 무대들을 선보였다.

1980년대부터 국악의 변신의 선두주자엔 항상 원일 감독이 있었다. 사물놀이와 함께 국악의 대중화를 성공적으로 이끈 '신국악운동'의 선두주자였던 국악 실내악 그룹 '슬기둥'의 젊은피였다.

1994년엔 '이날치' 장영규, 현재 배우와 화가 일을 겸업하는 백현진과 함께 독특한 음악세계로 유명한 '어어부 프로젝트'를 결성했다. 1997년 내놓은 괴작인 1집 '손익분기점' 이후 원일은 팀에서 빠졌다.

대신 앞서 1993년 결성한 창작타악그룹 '푸리' 활동에 매진했다. 푸리는 전통음악을 바탕으로 실험적인 음악을 모색했고, 해외 뮤지션들과 활발하게 협업했다. 2003년 원일이 결성한 연주 단체 '바람곶'은 국악 기반의 창작음악 터전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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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뉴시스] 박진희 기자 = 원일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 예술감독이 지난 6일 경기 용인시 경기국악원 국악당 대연습실에서 뮤지컬 '금악(禁樂)'  공연 연습을 하고 있다. 2021.08.11. [email protected]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교수, 국립국악관현악단 예술감독, 2018 평창동계올림픽 개·폐회식 음악감독, 제100회 전국체전 개폐회식 총감독 등도 맡아 음악계 전방위로 활약했다.

그런 원 감독이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와 또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창작 뮤지컬 '금악:禁樂' 초연(18일~29일 경기아트센터 대극장)이다. 국악 기반의 단체가 본격적으로 뮤지컬을 작업하는 건 드문 일이다. 원 감독은 아이디어를 낸 것뿐만 아니라 연출을 맡았고, 공동 작곡가로도 참여한다. 

통일신라로부터 비밀스럽게 전해져 온 금지된 악보인 '금악'을 둘러싼 이야기. 조선 순조 재위 말기 효명세자가 대리청정을 하던 시기를 배경으로 장악원(掌樂院)에서 펼쳐지는 기묘한 사건을 담은 '판타지 사극 뮤지컬'이다.

장악원은 조선시대 궁중에서 연주하는 음악과 무용에 관한 일을 담당한 관청이다. 전통음악을 기반으로 삼는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는 전문성을 살리되 대중문화의 흐름에 맞춰 새로운 스타일의 창작 뮤지컬 제작에 나선다. 최근 용인 경기국악원에서 원 감독을 만나 뮤지컬 작업의 이유에 대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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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뉴시스] 박진희 기자 = 원일(왼쪽 두번째)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 예술감독이 지난 6일 경기 용인시 경기국악원 국악당에서 뮤지컬 '금악(禁樂)' 출연 배우들과 공연 연습을 하고 있다. 2021.08.11. [email protected]
-'금악'은 언제 어떻게 떠올리신 작품인가요?

"옛날부터 음악이 넘치면 안 된다는 얘기가 있었죠. 중국의 '예기'나 '시경', 조선시대 '악학궤범'에 그런 이론이 있었습니다. 동양에서는 중요하죠. 금악의 반대편에 있는 것이 예악(禮樂)이에요. 음악이 윤리적으로 사람을 성장시킬 수 있다는 거죠. 이런 내용들이 기본적인 아이디어가 됐어요."

-금지된 악보를 놓고 천부적 재능의 악공 '성율'(유주혜·고은영), 왕세자 '이영'(효명세자)(조풍래·황건하), 핵심 권력자 '김조순'(한범희)의 관계를 다룹니다. 사람들의 욕망을 먹고 자라나는 '갈'(추다혜·윤진웅) 등 음악을 통해 인간 내면을 다루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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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뉴시스] 박진희 기자 = 원일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 예술감독이 지난 6일 경기 용인시 경기국악원 국악당에서 뉴시스 인터뷰를 마치고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원 감독은 오는 18일 공연 예정인 뮤지컬 '금악(禁樂)' 연출을 맡고 있다. 2021.08.11. [email protected]
"'소리가 악령을 부른다'가 주요 콘셉트예요. 뮤지컬 '니진스키'의 김정민 작가를 만나면서 구체화됐죠. 효명세자는 예술적인 것에 천재적인 재능을 지녔어요. 종합예술인 정재(궁중무용)를 만들고, 시를 썼죠. 그 시대를 배경으로 한 판타지인데 금지된 음악이 인물의 비극적 이야기와 만나면서 '현대적인 빌런'(갈)이 탄생하게 됩니다. '반지의 제왕' 골룸처럼 분노와 욕망이 너무 커지면 존재가 변하잖아요. 성율의 분노부터 괴물이 현현하는데, 그건 일종의 아바타 같아요. 이런 아바타적 소재는 '해변의 카프카' 등 문학에도 꾸준히 등장한 소재죠."

-뮤지컬 '니진스키'의 작곡가 성찬경, 창극 '패왕별희'의 작곡가 손다혜와 공동 작곡을 하셨다는 점도 눈길을 끕니다. 이미 영화 '꽃잎' '아름다운 시절' '이재수의 난'의 음악을 작곡해 호평을 듣기도 하셨죠.

"내면의 괴물을 표현한 부분은 성찬경 작곡가가 맡고, 효명의 꿈 부분은 손다혜 작곡가가 맡고, 전통음악의 장악원 부분은 제가 맡는 식으로 나눴어요. 처음부터 세 작곡가의 특징을 배합하고자 했죠. 현대적 정신분석학에 기반한 캐릭터로부터 음악적인 요소도 나오는데 그런 부분은 (재즈 드러머인) 한웅원 음악감독이 잘 조율을 해주고 있습니다. 이질적인 요소를 조합하는데 탁월해요."

-전통음악 기반 단체가 뮤지컬에 도전을 하게 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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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뉴시스] 박진희 기자 = 원일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 예술감독이 지난 6일 경기 용인시 경기국악원 국악당에서 뮤지컬 '금악(禁樂)' 출연 배우 남경주와 공연 연습을 하고 있다. 2021.08.11. [email protected]
"전통 단체는 항상 두 가지 딜레마를 갖고 있어요. 전통과 현대, 대중성과 예술성 사이에서 고민하죠. 뮤지컬은 공연 장르 중에서 가장 확실한 팬층이 있죠. 저희가 뮤지컬 작품으로 승부를 보지 못하면, 대중성을 획득한 증거가 없다고 봤어요. '시나위 일렉트로니카' 같은 공연은 좋지만 많은 사람은 보기 힘들죠. 뮤지컬을 통해 우리 판을 키우고, 뮤지컬시장을 통해 우리가 기존에 갖지 못한 영역과 가능성에 도전하기를 바랐습니다."

-최근 전통음악이 다양한 방식으로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예전부터 그 중심축에 계셨고요.

"문화는 한 사람이 반짝한다고 해서 빛을 보는 게 아니에요. 오랜시간 축적돼야죠. 트렌드와 시대가 바뀌면, 문화 역시 돌고 돌아요. (전통음악에 대한 주목은) 거기서 오는 현상 중에 하나라고 생각해요. 국립국악원 같은 기관이 전통을 계승한다면,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 같은 조직은 다양한 방식으로 해체하고 재창작해야죠."

-본래 '시나위'는 무속음악에 뿌리를 둔 즉흥 기악합주곡을 가리킵니다. 감독님은 이 양식을 단순히 음악뿐만 아니라 예술 전체를 대하는 태도로 만들고 계십니다. 경기도립국악단이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로 변신한 것처럼요.

"그간 시나위는 제대로 규정되거나 논의된 적이 없어요. 시나위라는 기질 안에는 '반복해서 놀 줄 아는' 신명 같은 것이 들어 있어요. 그런데 그 신명이 단지 발산되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예술적인 합일로 나갑니다. 즉 시나위는 신(神)과 아(我·나)와 위(爲)의 만남, '신아위'(神我爲)가 되는 거죠. 결국 시나위는 우리나라 전통음악의 한 장르로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예술가가 영적인 것과 소통한다는 걸 뜻합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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